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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Oct 25. 2023

#11. 두 개의 리틀보이

그 남자는 한 시간쯤, 나무아래 벤치에서 잠을 잤다.   

전기자전거지만 페달을 밟고 핸들을 잡은 상태로 거의 5시간을 달려와서 온몸이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딱딱하고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 벤치지만 눕자마자 잠든 게 이상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곳에 땅을 사고 농막을 지은 지는 벌써 5년이 지나고 있다. 부모님은 돈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어느 해에는 담장을 하고 어느 해엔 지하수를 뚫었다. 한참있다 와보면 느티나무가 심겨져 있고 어떤 날은 정원 가운데에 큰 이팝나무 세 그루가 심겨져 있어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그렇게 가꾼 소중한 땅을 전쟁이 터지고 낯선 남자와 들어와 있다니…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부재가 겹치며 하루 만에 인생이 혼돈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농막에는 전기와 물이 잘 나오고 있다. 샤워를 하고 팬트리를 살펴봤다. 왕뚜껑 컵라면이 10개, 쌀 3kg, 싹이 핀 고구마와 감자 몇 개, 과자와 오렌지주스, 커피원두, 두유 한 박스, 김이 있었다. 이 정도면 두 명이서 1주일 정도는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를 말리면서 창밖을 봤다. 초록색 잔디밭에 하얀 꽃이 핀 이팝나무가 있고 바로 아래 벤치에 그 사람이 누워 자고 있다. 무슨 인연으로 저 사람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하늘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남자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농막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왔다. 나는 농막 문을 열고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저거, 저거 지금 핵인 거죠?”  

“그러게요. 그런거 같아요. 일단 창문 다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시죠. 테이프 같은 거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문틈이나 이런 데는 막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청테이프를 찾아서 남자에게 건넸다. 잠시 후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바로 옆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에 농막이 또 크게 흔들렸다. 창밖을 보기가 무서웠지만 이미 하늘높이 피어난 버섯구름을 봐버렸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쐈나 봐요”  

”우리 이제 어쩌죠? 다 죽는 건가요? “  

”아마 서울에 있었다면 바로 죽었을 거예요. 핵이 폭발하면 짧은 순간에 1억 도가 넘는 열 폭풍이 발생한데요. 주변에 모든 물체는 흔적도 안 남을 거예요. “  

”여긴 안전할까요?“  

”여기서 용산까지 최소한 50km는 떨어져 있을 거예요. 물론 북한 놈들이 용산에 정확히 떨어트렸다면 말이죠… 얼마나 큰 핵을 떨어트렸는지가 중요한데,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게 15 킬로톤 짜리라고 했는데 그거 기준으로 아마 반경 5km 까지는 영향을 받을 텐데 대충 강남역까지 영향이 있을거에요.“  

”만약에 더 큰 폭탄을 썼다면요?“  

”글쎄요. 만약에 50 킬로톤 짜리라고 하면 15km는 될 테고 그럼 양재역 청계산 신내동 이런데도 영향권에 드는 거죠. 그리고 방사능 피해는 아마 양수리 정도까지도 미칠 수도 있어요.“


드디어 떨어졌다. 이 남자의 말을 믿고 하루를 달려 서울을 벗어났는데, 만 하루가 되지 않아 북한에서 핵을 쐈다. 서울에서 50km나 떨어진 이곳에서도 굉음과 지진이 느껴질 정도의 충격이다. 서울에 있었다면 분명 생지옥을 체험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식당에서 만난 그 부모는 분명 서울로 들어갔을텐데 무사할까? 나와 인연이 있던 많은 사람들은 살아 있을까?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한편으로 서울을 벗어나게 해 준 이 남자가 고맙게 느껴지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제 느낌에 30km까지는 영향이 있을 거예요. 여기는 더 멀리 떨어져 있긴 해서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거 같은데…  하지만 서울 중심부에 떨어졌다면 기관시설들 거의 파괴되었을텐데, 아 전기! 전기 들어오나요?”


냉장고를 열어봤다. 다행히 작동하고 있다. 실내 불을 켰는데 3개 중에 1개는 안 켜진다. 아무래도 방금 폭발의 진동으로 필라멘트가 끊어진 것 같다.


“전기는 들어와요. 전등만 하나 나갔네요.“  

”혹시 옷들도 많이 있나요?“  

”꽤 있을거에요.“


엄마는 집에서 안 입는 옷들을 잘 빨아서 이곳에 갖다 놨다. 의류 재활용통에 넣지 왜 그걸 모아놓냐고 핀잔을 준 적이 있는데, 농사를 짓다 보면 긴팔옷이나 두꺼운 옷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먹을 게 있는 팬트리 아래쪽을 보니 여름옷부터 겨울옷까지 내가 버렸다고 생각한 옷들도 있었다.


“혹시 양초 같은 것도 있나요? 그리고 성냥이나 라이터랑…”


질문을 하면서 그 남자는 농막 안을 훑어봤다.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라고 이런 상황에 태연하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화목난로 주변을 보더니 안도를 하는 것 같다. 난로 주변에는 지난겨울에 사다 놓은 펠릿 20kg짜리 두 포대와 부탄가스 4개, 캠핑용 가스 점화기가 있었다. 장작도 한쪽벽면에 차곡 쌓여 있었다.


“여긴 없는 게 없네요. 부모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하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뭐가 많아요.”  

“그러게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보죠. 일단 언제 전기가 끊길지 모르니 충전할 수 있는 건 지금 다 충전해놓으세요. 핸드폰이며 보조배터리 이런 거 싹 다”


우리는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충전했다. 그 남자는 카메라 배터리와 드론 배터리를 꺼내 충전시켰다. 그리고 가방 깊숙한 곳에서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충전기에 연결했다. 나는 여기저기 서랍을 열어 보조배터리가 있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북한에서 군인들이 내려오진 않을까요?”  

“아마 그러긴 쉽지 않을 거예요. 핵을 뺀 재래식 무기로는 우리랑은 상대가 안돼서 내려오는 건 불가능할거에요.”  

“핵이 여러 개 있다면 그걸로 휴전선 근처에 부대에 쏘고 내려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휴전선에 쏘긴 핵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인구밀도도 높고 기관시설도 많은 곳에 써야 효과적일 텐데… 하지만 알 수 없죠. 어디다 쏠지는 미친놈 마음이니까… 그런데 미영씨 저도 좀 씻어도 될까요? 오늘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럼요. 말씀하신데로 언제 물이 안 나올지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씻으시는게 낫겠네요.”  

“아 맞다. 지하수는 전기가 없으면 못쓰는 거죠? 일단 씻기 전에 물을 좀 받아놓는게 좋겠네요.”


농막에 있는 그릇과 통을 꺼내 물을 받았다. 농막 뒤편에 빗물받이 밑에 두 개의 큰 고무통이 있었는데 아마 빗물을 받아 나무와 텃밭에 물을 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남자는 고무통을 들고 안쪽을 헹군 뒤 가득 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남자가 씻는 동안 정원을 둘러봤다. 방금 전에 버섯구름과 진동으로 핵 공격을 받은 것치곤 너무 조용하다. 밑에 집들은 모두 피신을 간 건지, 겁에 질려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건지 온 동네가 조용하다.   

텃밭에는 고추와 파프리카가 먹기 좋은 크기로 달려있다. 혹시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싹 따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농막에서 큰 쇼핑백을 갖고 나와 손에 잡히는 데로 따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와 가지, 고추, 파프리카, 오이 등 대형 쇼핑백이 터질 만큼 따고도 아직 텃밭은 그대로인 것 같다.   

외부 수돗가에서 농작물을 씻었다. 붉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었다. 씹자마자 토마토 과육이 톡 터진다. 신맛이 나는가 싶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진한 단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우리 가족은 매운 고추를 싫어해서 전혀 안 매운 오이고추와 롱그린이라는 품종의 고추만 심었다고 했었다. 깨끗하게 씻은 텃밭 채소들을 한가득 들고 농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털고 있었다. 채소 꾸러미를 보더니 오이 하나를 집고는 와그작 씹어 먹었다.


“너무 달아요. 농사 잘 지셨네요. 이거 하나면 하루 종일 물 안 마셔도 되겠는데요.”  

“양이 꽤 많아서 한동안 먹을 거 걱정은 없겠어요. 평소에도 주말마다 따오시면 다 못 먹고 이웃이나 지인들 막 나눠주셨거든요.”  

“잘됐네요. 텃밭이 있어서 든든하네요.”


2초간 정적이 흘렀다. 6평 남짓한 밀폐된 공간 안에서 샤워를 마친 남자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다, 이야기 흐름이 끊긴 것이다. 2초가 2시간 같이 느껴졌다. 남자도 정적을 느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능청스럽게 내가 딴 채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2시간 같은 2초의 시간이 지난 직후, 또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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