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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Sep 12. 2023

#10. 농막이 있는 삶

농막이 있는 땅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칼국수집에서 나와 5분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지만, 그 후로는 너무 가팔라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길 양옆으로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었고 하나같이 정원은 잘 가꿔져 있었다. 한동안 비가 안 와서 그런지 정원에 물을 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몇 명은 미영씨와 눈이 마주쳤고 가볍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여긴 완전 딴 세상이네요.”  

“그러게요. 다들 소식을 들었을 텐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여기, 들어와서 사시는 분들도 있고 주말만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오늘 주말이니까 모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다 이야기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러다 서울이라도 올라가시면 큰일 날 텐데…”  

“인성씨가 집집마다 돌면서 전해드릴거면 그러시던가요.”  

“아무래도 오지랖이겠죠?”


사실을 알려준들 뭐 딱히 달라질 게 있겠나 싶기도 했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편이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옆으로 개울이 있고 집들도 많고 나무도 많고 새소리에 공기도 맑았다. 이래서 여유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개발을 하고 집을 짓고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긴 물도 많고 나무도 많고 사람들도 적당히 있어서 밤에 무섭지도 않겠어요. 심지어 가로등도 있어요.”  

“맞아요. 인구밀도가 적당해서 안 무서워요. 뭐 키우면 엄청 잘 자라기도 하고 높아서 경치도 좋아요. 맑은 날에는 좀만 더 올라가면 서울도 보인다니까요.“  

”사실 양평이면 서울이랑 그리 멀지도 않죠.“


동네구경하면서 15분쯤 올라가자, 집들이 뜸해졌다. 토목공사만 되어 있는 땅들이 여러 필지가 보이고 그중에 한 곳이 눈에 확 들어왔다.   

측백과 편백 나무를 땅 경계에 두르고 나무로 된 담장까지 있는 땅이었다. 한 필지가 크게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위쪽땅은 전체땅의 1/3, 아래쪽 땅이 2/3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농막은 위쪽에 놓여 있었고 5미터쯤 되는 느티나무들로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어 맞다. 열쇠가 없지…”


나무담장 중간에 문이 있었는데,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빠차키에 열쇠가 붙어 있었는데… 일단 담을 타 넘어가야겠네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미영씨는 낮아 보이는 담 쪽으로 타 넘어가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집안에 열쇠도 있고, 농막이지만 이래 봬도 번호키도 달려 있는 집이라니까요.”


농막에 들어가서 나온 그녀는 담장너머로 열쇠를 건넸다.   

문을 연 후 자전거를 끌고 땅으로 들어섰다. 땅의 가운데 부분에 넓게 잔디가 깔려 있었고 수많은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아래쪽땅 끝엔 방부목으로 사각틀을 짜서 만든 텃밭이 보였다.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깻잎, 고추, 파프리카… 규모가 크진 않지만 종류가 다양했다. 윗단의 농막이 있는 땅으로 향하는 길에는 철도침목으로 만든 5개의 계단이 있었다. 누군가의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 땅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는 농막이라고 해서 그냥 빈 땅에 컨테이너 같은 거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엄청 잘 가꾸셨네요.”  

“그러게요. 부모님이 돈 생길 때마다 뭘 그렇게 사서 심고 꾸미고 하시더니 이렇게 됐네요. 주말에 몇 번 올 때는 몰랐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되니까 이만한 피난처가 있을까 싶네요. 농막 안은 보시면 더 놀라실걸요.“


농막 옆 창고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넣어놓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배터리만 빼들고 농막 안으로 들어갔다.   

  

농막은 오래전에 TvN에서 방송한 ‘숲속의 작은집’에 나오는 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나영석 PD가 만든 작품 중에 몇 안 되는 폭망 한 프로그램이다. 무려 소지섭, 박신혜가 각각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며칠씩 혼자 지내는 것이 주제였다. 그중 박신혜가 지냈던 집이 6평 남짓 되는 농막이었는데, 나무로 된 외벽에 지붕은 징크로 되어 있었고 한쪽벽면에 커다란 고정 유리창이 있었다. 이곳의 외관이 그때 박신혜의 집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 집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피디님이시니까 아실 거 같기도 한데…”  

“맞아요. 나영석 피디가 만들었던 숲 속 작은집에 나온 집 같은데 맞아요?”  

“네, 100% 똑같지는 않은데, 부모님이 그 프로그램 보시고는 그 집에 푹 빠지셨어요. 그래서 그거랑 똑같이 만드는 업체를 찾아다니시다가, 전라도 함평까지 갔다 오셔서는 찾았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함평이요? 거기 거의 땅끝인데.”  

“농막만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 사장님이 본인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는 영감을 얻어서 거의 똑같이 집을 만들어서 파시더라고요. 물론 내부는 훨씬 업그레이드하셨지만.”


농막 안 내벽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되어 있었다. 바닥은 멀바우 마루에 한쪽엔 싱크대와 1단짜리 냉장고가 있었고, 커다란 고정유리창 앞엔 펠릿과 장작을 함께 태울 수 있는 화목난로가 있었다. 농막 안쪽 끝에 문이 있었는데, 문을 열면 왼쪽엔 1평 남짓의 샤워커튼이 달린 작은 샤워실과 오른쪽엔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농막은 복층이어서 계단형태의 책장을 타고 올라가면 2층 침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우와 어지간한 호텔보다 훨씬 나은데요? 전기랑 물도 나오나요?”  

“전기도 연결되어 있고 물은 지하수라서 전기만 되면 모터로 끌어올리는 거라 나올 거예요.”


그녀가 두꺼비집에 메인 전원을 켜자 벽에 걸린 냉난방기에 불이 들어왔다.


“에어컨도 있는 거예요?”  

“냉난방기예요. 여름은 괜찮은데, 겨울에는 엄청 춥거든요. 화목난로가 뜨거워질 때까지 난방기가 필수라서.”


전원생활이 인기가 많아 5도2촌(5일은 도시, 2일은 농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지만 캠핑 몇 번 가본 게 전부인 나에게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기했다.


”일단 밖에서 땅 한번 둘러보고 계시면, 제가 먼저 씻고 좀 정리할께요.“  

”아 네, 편하게 씻으세요. 아참 이거 배터리 충전만 꽂아놓고요.“


배터리를 충전해 놓고 농막에서 나왔다. 아파트 현관문 닫히듯 삐리리 소리를 내며 농막문이 잠겼다.   

아래쪽 땅에는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이팝나무 세 그루가 심겨 있었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도 보였다. 잘 생긴 이팝나무 밑에는 누군가 대강 만든 것 같은 엉성한 나무 벤치가 있었다. 벤치에 누워 양손을 머리밑에 받치고 하늘을 봤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라 하늘이 파란색부터 주황색까지 알록달록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아침만 해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지구에서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나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정한 콘텐츠의 방향은 생존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건지를 고민하는 거였는데… 삶이 생존 다큐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이곳에서 오래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가족도 아니고 친구나 연인도 아닌 아무 관계가 아닌데 같은 곳에서 오래 지내는 건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는 며칠을 여기에 머물러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벤치 밑으로 경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몸을 살짝 움츠리더니 이마를 들이댄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이다. 벤치 다리에 이마를 비비고는 벤치로 올라왔다.

 

‘아, 여기가 니 자리구나. 오늘은 나도 좀 쉬자, 오늘 많은 일이 있었거든…’


그렇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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