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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r 05. 2024

나는 무취한 사람이고 싶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기다란 좌석 끄트머리에 앉을 때가 있다. 


왼쪽에는 한껏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앉고 오른쪽에는 등산복을 입은 나이 많은 남자가 서 있다. 열차가 출발할 때는 왼쪽 편에 앉은 여자의 향수냄새가 진하게 났다가, 열차가 멈추려고 할 때 즈음엔 오른편에서 찌든 담배냄새와 홀아비 냄새가 난다. 한두 번 반복되자 빨리 열차가 출발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렇게 10분을 앉아 있다가 결국엔 일어나서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간의 후각은 알려진 것보다 더 예민하고 기능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개보다는 못하지만 원숭이, 쥐, 박쥐, 돼지, 고슴도치 그리고 토끼보다 더 확실하게 냄새분자를 잘 맡는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이성적인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동물적인 감각인 후각을 무시해 왔다. 그래서 다른 감각에 비해 후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고 소홀하다. 


과학적으로 우리가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색은 5백만 개 정도인데 반해, 냄새의 종류는 무려 약 1조 개가 넘는다. 후각은 본능적이다. 우리가 맡는 냄새는 뇌의 경험과 직결되어 어떤 판단과 처리 절차 없이 그 자체로 명령을 내린다. 거기에는 사랑이나 공포도 포함이 된다. 사람들이 한창 싸우고 있는 공간에 들어갔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이나 두려움은 후각 정보에 의한 본능적 판단이다. 흔히 눈치라고 하는 것이 알고 보면 냄새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뇌회전이 빠르고 눈치가 빠른 인간은 후각이 매우 민감하고 발달해 있다. 


다른 감각들의 정보는 뇌에 들어가 거기서 정보를 처리하는 단계를 거치지만, 후각은 뇌의 판단을 건너뛰어서 의도나 해석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후각은 즉각적으로 정서와 본능에 연결되어 있다. 


‘베티나 파우제’라는 독일의 심리학박사가 쓴 ‘냄새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냄새가 갖고 있는 특징을 이용해, 사람의 질병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개들을 훈련시켜서 사람의 숨이나 소변 냄새로 암 종류를 판별하는 것인데, 훈련을 마친 개들은 유방암, 방광암, 폐암, 난소암, 전립선암, 피부암 등을 정확하게 구분해 낸다고 하는데, 거의 100%에 이른다고 한다.


나는 냄새에 민감한 인간인데 도시에는 온갖 냄새들로 넘쳐난다.

생선구이집에 갔을 때 물컵에서 생선비린내가 나면 먹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담배를 끊은 지 15년 가까이 되다 보니 길을 가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멀리 돌아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음식냄새나 담배냄새의 여운이 남아있으면 숨을 참는다.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내 몸은 본능적으로 비위생적인 냄새를 알아차린다. 


지하철에서 나는 수만 가지 냄새들은 수만 가지 삶을 드러낸다.

아침식사로 두부조림과 김치찌개를 먹고 나온 학생부터 어젯밤 술이 덜 깬 50대 가장까지 화장품을 바르다 말고 좌석에 앉아 화장하고 있는 여성, 온몸에 가난을 휘감은 노인까지…

코로나 시국에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냄새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또다시 갖가지 냄새가 난다. 


그런데 타인에게 나는 어떤 냄새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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