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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r 26. 2024

AI가 그린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일까?

며칠 전 회사에서 임직원 대상 AI 공모전을 하겠다고 사내방송으로 홍보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AI를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기획안이나 아이디어를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담당자에게 AI로 그린 그림을 공모한다는 말을 듣고 작은 충격에 빠졌다.


모든 분야에는 매뉴얼이 있고 공식화된 루틴이 있다.   

창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작곡, 영화제작, 글쓰기 등을 할 때도 대략 정해진 공식에 의해 작업을 한다. 미술도 연습을 통해 그 공식을 익히고 숙련이 되면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감각은 타고나야 한다. 연습과 공식만으로 예술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림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이프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경외감을 갖고 바라봤다. 한자리에서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그릴 때, 점점 형상화되는 캔버스 위의 작품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림이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두귀를 잘라가며 누군가는 거대한 정원을 꾸며가며 누군가는 세계를 돌면서 누군가는 성별을 속여가며 열정을 갖고 스스로 즐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 그림이었다.   

그런데 AI를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공모전이라니... 특히 AI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림은 연필이나 물감으로 그리는 것이지 AI로 어떻게 그린 다는 걸까…


기대반 의심반으로 공모전 예시를 따라 해봤다.   

가장 먼저 Microsoft Copilot이라는 앱을 깔고 로그인을 했다.   

흔히 봤던 ChatGPT 화면 같은 레이아웃에 검색 명령어를 입력하는 창이 나타났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쓰여있는 창에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 1위 기업의 이미지를 그려줘’라고 입력해 봤다.   

어디선가 한 번은 봤을법한 대도시에 우뚝 선 빌딩 이미지가 4장 떴다. 검색어 입력창에 좀 더 자세히 부가설명을 덧붙여서 입력해 봤다. 따뜻함, 친숙함, 친밀함, 미래등의 단어를 입력하자 곰인형등이 추가되고 우주의 이미지도 나타났다. 그렇게 이것저것 한참 입력해 보고 나타난 그림을 확인했는데, 이걸 과연 내가 그렸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현타가 왔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면 그 그림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선 내가 제시한 단어와 의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조영남이 대신 그려주는 화가를 고용해서 그림을 그린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었다. 그림의 전체 콘셉트와 느낌 등을 본인이 잡고 세부적인 그림은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본인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가 쟁점이었는데, 법은 본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판결 내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AI를 통해 만들어낸 그림도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걸 내 그림이라고 떳떳하게 내놓을 수가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아직 나의 가치관은 녹여 들지 못한 것 같다. 삐뚤빼뚤 선이라도 어색한 색조합이라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일그러진 얼굴이라도 내 손으로 그려야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공모전의 타이틀을 바꾸라고 하고 싶다.


‘AI 명령어 입력 그림 공모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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