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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Oct 30. 2023

한국은 조선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조선시대를 ‘실증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사를 배우면서도 제3자의 입장에서 무덤덤하게 외울 뿐이지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사를 공부할 때 다른 나라들은 이런 역사를 갖고 있구나 감탄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마도 고려와 조선을 지나고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 역사가 단절된 사건을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이전시대와는 철저히 분리된 역사가 시작됐다. 어찌 보면 그런 기형적이고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어서 지금과 같은 빠른 경제발전을 이뤘을 수도 있겠다.


조선시대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태어나면서 내 신분이 정해져 버린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해도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노비로 살아야 한다. 반대로 아무리 멍청하고 의지박약에 몸까지 유약한 사람이라도 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왕이 됐다. 이를 어길 경우, 강상죄로 다스렸다. 강상죄는 중범죄에 해당해 보통 사형이었다. 강상은 삼강오상의 줄임말인데 삼강오륜으로도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삼강은 군신,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며 오상은 인, 의, 예, 지, 신으로 세상에 변하지 않는 이치라는 내용이다. 지금 시대에 봐도 필요한 내용이다 싶지만 해석에 따라 사람의 행동에 딱지를 붙여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었다. 노비가 주인을 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부인이 남편의 명을 어기는 경우 등에 이 법을 적용했다.   

법령이 추상적일수록 독재에 활용하기 좋았을 것이다. 왕권시대의 기본 통치 방식은 독재다. 때로 백성과 나라가 운이 좋아 성군을 얻어 태평성대를 누릴 때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아들의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이 매번 똑똑하고 어진사람이 나올 수 없는 노릇이다.


신분, 계급 사회는 참 편하다. 고민 없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순응하고 살아가게 된다. 간혹 순응하지 않는 인간들은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죽이면 그만이다. 사람을 부리는 이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부림을 당하는 이도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 살아가게 만드는 시스템. 비극적 역사지만 그렇게라도 단절되지 않았다면 그런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은 지금까지 이어져왔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와는 달리 신분과 계급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 199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전쟁으로 모든 사람이 뒤섞여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된 사회. 최소한 태어나보니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난하고, 양반인지 상놈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회. 개인의 자질과 노력에 의해 더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회로 제로세팅됐다.   

이런 사회의 특징은 효율이 큰 가치이고 경쟁이 미덕이다. 이제부터 노력한 만큼 가져간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기자, 남보다 먼저, 한발 더, 더 일찍, 더 빨리, 더 많이,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더’의 기준이 남이라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항상 타인과 비교해서 월등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해한다.  

시험점수가 60점이어도 1등이면 잘한 것이고 90점을 받아도 1등이 아니면 혼이 난다.  

경쟁은 사회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의 치열한 경쟁은 해외로 향하게 되고 나라별 경쟁을 하며 국가주의, 전체주의 문화가 생겨났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며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의 경기력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승리와 패배, 메달집계에 집착했다. 그래서 금메달이 몇 개야? 세계순위가 몇 위야? 과정보다는 결과를, 스토리보다는 단상대 위에 걸린 태극기에 환호했다.   

어찌 됐든 효율과 경쟁을 뿌리 삼아 한국은 전쟁 후 빠르게 재건에 성공했고 사람들도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사람과 ‘운’이 좋았던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능력이 없거나 운이 나빴던 사람들은 현대적으로 가난하다.  

2000년에서 2010년을 지나면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의 수비는 더 공고해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 사람들은 대체로 더 가질 수 없음에 절망했다. 가진 자는 지키기 위해 불행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없어서 불행하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우리는 다시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어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한국 사람들의 DNA에 그대로 유전되어 새롭게 재탄생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신분의 절대적 기준은 재산이다. 신분, 계급사회의 특징은 앞서 말한 데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다는데 있다. 따라서 전쟁 후 50여 년 동안 부를 많이 축적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서로 다른 계급을 갖게 된다.   

과거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재산으로 인해 생긴 그 계급의 장벽을… 사는 곳, 입는 옷, 타는 차, 직장과 직업, 학력 모두 나의 노력보다 타고 난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신분 계급사회의 척도는 그 등급의 차이를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의 여부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나의 눈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한다한들,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긴 힘들다.


30~40년 전에는 일부 가능했지만 2023년에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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