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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Nov 28. 2023

1979년의 하나회와 2023년의 검사들

누가 더 악마인가?

10여 년 전 영화 ‘26년’을 본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조조영화를 봤다. 와이프와 극장 정 중간에 앉았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넓은 객석에 우리를 포함해 10명 남짓한 사람만 있었다.


영화 ‘26년’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잔뜩 입힌 스토리다. 전라도 출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상상해 봤을 전두환을 단죄하는 내용인데 결국 미수에 그치고 만다.


10년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나의 눈물이다. 극중에서 한혜진이 전두환 집 건너편에서 저격에 실패하자 기관총을 연사 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었다. 저 수많은 총알들 중에서 단 한 발만 맞았다면… 제발 맞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총을 쏘는 여주인공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서 너무 슬펐다.

텅 빈 극장에서 나만 울고 있다는 생각에… 이런 영화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더 슬퍼서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와이프의 질문은 날 허무하게 했다.


“5.18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지어낸 거야? 저런 일이 정말 있었던 거야? 너무 과장이 심한 거 아닌가?“


경북에서 태어나, 나와 결혼할 때까지 전라도 땅을 밟아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80년 광주의 일은 ‘같은 나라에서 설마 그랬을까?‘ 믿지 않는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TV에서도 어떤 누구도 80년 광주의 일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기억해 보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에도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난다. 5살 때였지만 너무나 강열해서 그 한 장면은 뇌리에 남아 있다.


나의 부모는 둘 다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광주까지는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했던 두 분이었는데, 그때도 아마 처갓집에 내려가 있는 엄마를 찾으러 갔던 길이었을 것이다. 시골길을 택시 타고 가는데 총을 든 두 군인들이 택시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 한참을 택시안과 트렁크를 확인했다. 물론 그게 다였다. 그 후로 내가 철이 들면서 혼자 시골집에 가거나 할 때, 광주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식당 아줌마부터 점원, 택시기사, 친척들… 길게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지만 정권에 대한 적대감은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난다. 이루진 못했지만 정치부기자의 꿈은 그때부터 조금씩 커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역사를 찾아보고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이 날짜를 순서에 맞게 나열할 수 있을까…


‘0419, 0516, 1026, 1212, 0518, 0629’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들이다. 독재자를 끌어내리거나 죽인 날, 권력의 공백을 노려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킨 날, 저항하는 국민들을 죽여서 진압한 날들이다.


‘서울의 봄’은 이중 1212를 역사적 팩트에 기반해서 극화시켰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1212는 쿠데타가 아니었다. 무력충돌도 없었고 그저 당시의 권력 구조가 자연스럽게 전두환을 향해 있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518 영화를 보며 대성통곡을 하고 전두환을 악마처럼 생각하는 나 조차도 1212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너무나 짧았다.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1212는 확실한 무력 쿠데타였고 당시 한국 군대가 얼마나 썩었는지, 전두환이 얼마나 악마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쿠데타 초기 단계에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았지만 막지 못했다. 그 덕분에 대규모 시가전과 유혈사태를 피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죽게 됐고 대한민국으로서는 민주화의 시기가 15년이나 늦춰지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뻔한 구성과 억지 감동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보길 잘했다.


성공만을 쫒는 전두환의 광기를 황정민은 적절하게 연기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쿠데타를 진압하려는 세력의 인물 표현이 좀 과하지 않나 싶은 느낌은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을 보면 크게 거부감 없이 연기한 것 같다. 무능력한 대통령과 도망 다니는 국방부장관에 대한 묘사는 풍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소를 머금게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실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 영화들은 약간이라도 있었던 일을 다루면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고 홍보하지만,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을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어필한다. 아마도 이야기와 연관된 자들의 소송을 피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감독은 실명을 쓰고 싶었을 텐데 제작사, 배급사 등과의 관계 때문에 예명을 썼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하지만 이름의 글자수로 현실 속 인물과 극중 인물의 싱크로율을 어필한 듯하다. 성씨를 똑같이 쓴 인물이 있는가 하면 성을 바꾼 인물도 있고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꾼 사람도 있다. 특히 전두환의 이름은 전두광으로 해서 인물 그대로임을 강조하고 장태완 수방사령관은 이태신으로 성과 이름 한 글자를 바꿔서 현실 속 인물과는 차이가 있음을 드러냈다.


'서울의 봄’의 압권은 아무래도 영화 끝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일당이 단체 사진을 찍고 그 인물들 하나하나가 훗날 어떤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표시해 준다.

하나회를 조직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들이 정권을 잡은 후 국회의원, 장관을 해 먹고 또다시 대통령을 하고 각종 기관의 장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곳에서 모두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 그 조직이 군대에서 검찰로 바뀌었다 뿐이지 패턴이 똑같다.


정권 창출에 눈이 먼 보수 세력들을 이용해서 우연찮게 정권을 획득한 검사들이 장관은 물론 공기업과 국가기관의 장 자리를 모두 해 먹으면서 나라를 좀먹고 있다.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장이 되고,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이권을 챙기고 재산을 불리고 있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그때보다 먹을게 더 많은 대한민국이 됐기에 그들은 더 큰 이권과 부를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시대는 629 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진정한 서울의 봄을 만들어낸 건 시민들의 힘이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선진화된 정치, 경제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로의 회기는 순식간이다. 합법적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검사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한국사회를 그들의 손에 넣고 있다. 1212 때는 특정인을 악마라고 부르며 원망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국민의 손으로 뽑았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전두환 일당들이 대한민국의 15년을 낭비시켰다면, 지금의 검사들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몇 년 뒤로 되돌릴지 너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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