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MBTI는 INTJ이다.
I와 N은 거의 중간에 있지만 T와 J는 90% 이상으로 극단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은 상황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내 삶 혹은 나의 행동은 스스로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학과 철학 그 중간 어디쯤에 ‘공시성‘ 혹은 ‘동시성‘이라는 이론이 있다.
칼 융에 따르면 모든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공간과 시간이 다르지만 심리적 유사현상들이 있으며 이런 관계는 본질적으로 상대적 공시성이라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
정신과 신체가 무의식을 통해 공시적 현상의 배경을 공유하고 결국 시간과 공간적인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융은 시간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연속체이기 때문에 공시적, 동시적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시간이라는 연속체는 상대적 공시성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유사점을 지닌다.
즉, 동일한 생각과 상징, 심리적 상태들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왠 정신 나간 소리인가 싶다. 인간과 인간이 텔레파시를 쓰며 연결이라도 되어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삶은 순간순간 섬뜩한 ‘선물’을 준다.
그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 사람을 곤란하게도, 더없이 기쁘게도 만든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나의 부모는 어릴 때 이혼을 했다. 나는 줄곧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고 내 나이가 거의 마흔이 다 되었을 때 우연과 호기심 그 사이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보험회사 사내방송 피디로 일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가족관계증명서를 뗄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봤다.
호기심에 회사 시스템에 주민번호를 넣고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우리 회사’ 보험설계사임을 알아냈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던 본사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지점이었다.
내가 만든 영상을 어머니는 몇 년 동안 봤을 것이고 본사 근처 식당이나 술집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 많은 보험회사 중에 이곳에 입사를 할 가능성, 그곳이 어머니가 수십 년을 일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지만 결국 만났다.
그렇게 연락을 드렸고 40여 년 만에 몇 번 식사를 같이 했다.
그뿐이 아니다.
20년이 넘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헤어졌던 전 여자 친구를, 어느 날 자주 가는 카페에서 봤던 기억.
각자의 가족이 있어서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좋고 싫고의 영역이 아니다. 도대체 그런 확률은 계산조차 가능하긴 할까…
칼 융도 살아가면서 그런 놀라운 상황을 종종 겪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납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공시성이란 이론을 알아냈다. 그리고 칼 융의 ‘싱크로니시티‘라는 책을 주문했다.
물론 100%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결과에 대한 분석을 내놨을 뿐, 그것이 결과에 대한 원인을 명쾌하게 풀진 못한 것 같다.
하나 마음에 드는 건 믿음과 종교의 영역으로 넘기지 않은 점이다.
칼 융은 최선을 다해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현상을 ‘확증편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연은 그저 우연이다. 대수롭지 않은 우연을 큰 사건인 것처럼 생각하고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혹은 나약한 심리상태의 표출일 수도 있겠다.
어떤 사건 하나를 대할 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바라보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문제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된다.
인간의 확증편향은 개개인별로 생각하는 가치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조직 단위나 국가 단위로 넓혀보면 ‘누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똑같은 이슈라도 중요도는 달라진다.
인간은 대부분 확증편향적 사고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을 우연으로 보지 않고 나에게 일어난 혹은 우리 조직과 우리 사회에 일어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케이스로 우연은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한다면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주 생각을 하게 되고 의식하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노력으로 이룬 것을 운이 좋았다거나 우연히 이루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우연은 곧 겸손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 수많은 ‘우연’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나기도 하고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다. 길을 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울 수도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확증편향이든 노력이든 우연이든 예상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삶을 분석하려 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