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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May 01. 2024

우리들의 무대

함께 있다면

5주 동안의 토요일 출근을 마치고 남편과 군산 신시도 휴양림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전 개장한 그곳은 바다 주변의 아기자기 한 섬들로 인해 경치가 아름답다고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평일에도 여간해서 숙박을 잡기가 어려운 곳이다.

새벽 3시 50분 눈이 번쩍 뜨인 남편이 혹시나 하고 휴양림에 접속했다가 '무녀도' 라 표기된 숲 속의 집 하나가 취소된 것을 발견하고 얼른 예약을 하였다.

금요일 반차를 쓰고 회사를 나서는데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기분도 좋았지만 모처럼 집이 아닌 어딘가로 떠난다는 느낌에 마음이 마냥 설레었다.

3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우리는 대충 방 안을 둘러보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왔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며 고사리나 쑥 등을 따고 있었고 우리도 멀리 보이는 섬들을 배경 삼아 여기저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이전에 가본 휴양림과는 조금 다르게 신경 쓴 부분들이 있었던 건 커뮤니티 센터라든지 공연장 같은, 방문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소들이 제법 있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센터 2층에는 소파가 놓인 휴게공간으로 다수의 책들과 식물들이 편안한 휴식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그곳을 담당하는 선생님께서 책 한 권을 들고 들여다보는 나에게 " 가져가셔도 됩니다" 라며 말을 건넸다.

아이들을 동반한 몇몇의 가족들은 체험센터에 놓인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부모님들은 차 한잔을 마시며 조용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에는 제법 큰 고깃배 한 척이 느릿느릿 소음을 싣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을 나와 해변 근처 길을 따라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자 '해안도로'를 따라 도는 산책로가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난 관계로 내일 아침 산책코스로 정해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공연장 이 보였는데 특별한 날엔 어떤 공연도 하는가 보다.

갑자기 무대를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주 오래전 여름, 가족모임에서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려야 할 코스로 어느 휴양림에 들른 적이 있었다.

시원한 나무그늘을 골라 한참을 산책하던 중에 넓은 데크로 만들어진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큰 나무들 속에 자리한 한적한 그곳에 우리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모였고 그때 가족 중 누군가가 경쾌한 트로트 한곡을 틀었다.

흥이 많은 우리 가족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역시나 하나둘 몸을 흔들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형부를 비롯해 오빠 언니들 올케언니 등, 빠지지 않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그 무대를 장악했다.(물론 주위에 우리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각설이 공연을 몹시 좋아하는 형부는 언젠가 축제에 놀러 갔다가 현장의 노래공연 이벤트에 참여하여 마이크를 잡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으니 우리 가족에게 무대란 보이면 올라가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다.

지금이야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민폐 중에 민폐고 신고를 당할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공공장소에서의 경범죄 가 어디까지인가 를 인식하기가 조금 애매한 시대였다.

이제는 가족들 모두 지긋한 나이가 되어 힘이 빠졌으니 어디에서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가끔 형부집 마당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어깨춤을 추고 흥에 취하기는 한다.

나와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처갓집 모임에 참석한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가족들과 너무 다른 다양한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우리 가족들을 보고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 말에 백번 공감했다.

처음 시댁가족들이 모인 명절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시끌벅적한 우리 가족들과 확연히 다른 '조용한 가족'의 모습에 나에게 있어 그날은 명절의 개념을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암튼 말이 많고 행동이 빠른 우리 형제들이 나는 좋다.

너도 나도 급한 성격에 누구 하나 빼지 않고 솔선수범하여할 일들을 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향 탓에(나 빼고) 가만히만 있어도 누군가는 일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눈앞의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그때의 가족들 모습이 떠올라 울컥하고 잠깐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무대에 올라가 마음만은 어느 시절인 가의 흥겨웠던 추억을 되새김질할 가족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추억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젊은 날에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것들이 추억이란 이름과 함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기뻤던 순간, 슬펐던 그날, 함께했던 그 모든 날들에 추억은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들이 많아질 때 나는 새삼 나이를 느낀다.

나이만큼의 추억들이 가슴에 쌓이고 추억할 것들을 만들어갈 시간은 황망하게 줄어들고 있음이 안타깝다.

여름이 오면 우리 가족 중 누군가는 설레발을 쳐대며 "우리 가족모임에 초대합니다" 란 문구를 단톡방에 올릴 것이다.

그런 후에 공무원 출신인 오빠는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그럴듯한 여행계획표를 우리 형제들 숫자만큼 출력하여 만날 날을 기다릴 것이다.


                                                           아름다운 일몰 

방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발개진 노을이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튼을 활짝 젖히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찾아온 노을이 우리들의 얼굴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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