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간절한 지금 이 순간.
"코드 블루, 코드블루, 5층 소화기내과 중환자실 코드블루, 코드블루, "
새벽 1시경 8층 병동을 걷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멘트이다.
어제 낮에도 어린이 병동 중환자실에서 코드블루가 한번 떴으니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누군가에게 위급상황이 왔었다는 거다.
간단한 수술로 입원하게 된 남편의 보호자로 3박 4일 을 병원에서 보낸 나는 같은 우주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느 경계 (境界)에 의하여 이곳에서의 시간은 별도로 흘러간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이라는 분명한 명제가 이분법적 시간으로 단순히 나눠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삶의 희망 앞에서 누군가는 죽음의 기로 앞에서....
현재 내가 어디서 누구로 어떻게 살고 있든지 병원의 로고가 박힌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한결같아 보였다.
그 사람의 나이, 직업, 사는 곳, 경제력, 외적인 판단을 할 그 무엇도 -단지 나이가 적고 많음 정도만 유추해 볼 수 있는 - 환자복을 입은 상태에서 가늠해 보기란 불가능했다.
자신의 침대 끝에 매달린 환자카드에 적힌 간단한 정보 외에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나를 내보일 필요가 없는 그곳에서 주어지는 24시간은 고요하다가 때로는 갑자기 솟구치는 파고처럼 물밀듯 다가오다 마침내는 지독한 무력감에 지쳐 침상에 나를 눕히는 것으로 하루가 마감되기도 한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침밥을 받는 것으로 정식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코로나 이후로 모든 병실에서의 문병이 금지되고 상주할 수 있는 보호자도 한 사람으로 제한되었다.
비좁은 병실에서 많은 사람이 부대꼈던 예전에 비하면 공간확보에 여유가 있고 다인실에는 티브이도 없으니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다행히 의료대란이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에 입원했던 터라 큰 불편함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5인실의 창가 쪽으로 자리를 선택했는데 창문바로 아래 보호자가 침대 겸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간이용 의자가 한 개 놓여있었다.
그 외에 수납할 수 있는 붙박이 장이 옆 환자 침대와의 사이에 놓여있었고 개인용 냉장고가 있어서 간단한 음료나 과일 등을 넣어놓기에도 편리했다.
입원하는 날은 장마가 시작된 무렵이어서 날이 하루종일 흐렸다.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니 국립중앙도서관, jw메리어트 호텔, 삼성 래미안 아파트 (거의 다 그 아파트였다), 특히 고속터미널이 가까이 있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이 병원을 많이 이용할 듯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은 후 밤 12시 이후로 금식인 남편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살 요량으로 우산을 들고 병원을 나섰는데 약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병원 후문을 이용하여 길을 걷다가 육교를 건너 고속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살았는데도 터미널 내의 수많은 상점들에서 내가 찾는 빵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 상주하는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그곳에 역시나 미로처럼 사방으로 뒤섞인 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들어 빵 몇 개를 사들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때까지도 비는 멈출 기세 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바람에 날릴세라 우산을 꼭 움켜주고 육교를 건너 병원 정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119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진하는 것을 보니 마음 한편이 불안해져 다시 한참을 걸어 후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빗속에 빵이나 들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 이 순간에도, 생명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누군가의 발버둥은 이렇게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처럼 맹렬히 고군분투 할터인데, 빵을 든 나의 손이 갑자기 무기력 해지고 말았다.
수술 후 많이 걸어야 했던 남편을 부축하여 병동 여기저기를 걷다가 이 병동 19층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후원자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도서관의 이름을 그 이름으로 명명하였다는 게시글이 붙어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화, 목 시간을 정해놓고 열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퇴원하기 전에 꼭 한번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밥 먹고 운동하고 간호사들에 의해 혈압이나 혈당 주사 등 체크를 받는 패턴으로 이어지는 하루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밖에서의 시간보다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
정해진 루틴 안에 갇힌 고립된 시간이 정신적 사고보다 육체적 움직임을 더 필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병실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보니 앞 침대의 환자분은 어디가 아픈지 그 옆침대의 환자분은 조용조용한 간병자 분과 조곤조곤 친구처럼 대화를 자주 나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또 남편침대 옆 환자분의 덩치가 제법 큰 아들은 보호자용 침대를 펴지도 않은 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아버지가 부르면 재빨리 몸을 일으키곤 하였다.
부모자식 간에 정도 메말라가고 있는 세상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병실에서 만난 아들들은 그런 말들을 일축해 버리고도 남음이 있는 예쁜 모습들이었다.
새벽시간, 남편의 혈압을 체크하러 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와 보호자의 수면을 방해할까 플래시를 켜고 가만가만 자신의 할 일을 했다.
환자침대 위쪽으로 형광등이 두어 개 나란히 붙었있었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켜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환자들까지도 배려하는 모습이 보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환자, 보호자 모두가 병원이라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소중한 시간을 더 얻기 위해 그곳에서는 매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간절함이 그들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엄연한 현실이, 그래서 작은 기적이라도 꿈꾸는 것이, 당연히 용납되어야만 하는 그런 시간이 그곳에는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됐을 어느 한순간처럼 나 또한 그분들께 빠른 쾌유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