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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Oct 17. 2024

시월의 어느 어지러운 날

많이 먹고 기운 차리자.

계절이 바뀌는 것이 이어 달리기에서 두 선수가 바통터치하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죽을 둥 살 둥 달리면서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같은 팀 선수와의  바통터치 직전에는 달리는 속도도 조절해야 하고 다른 선수와의 부딪힘도 경계해야 하는 등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신경 쓸게 참으로 많은 것처럼 한 계절을 맞는다는 것 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항상 따라붙는 꽃샘추위가 그렇고 타는듯한 여름햇빛을 힘들게 이겨냈다 싶을 때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큰 태풍이 그렇다.

가을은 또 어떠한가.

 짧디 짧은 가을은  시간과는 반비례하게 고독, 외로움, 허무함, 인생무상함, 같은 것들이 쓸쓸함의 대명사로 집합되어 한꺼번에 몰려드니 적당히 치고 빠지고의 마음 관리를 제대로 해내야만 앞으로 들이닥칠 겨울의 한파에 움츠려들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기력이 떨어져 항상 환절기 때 환자가 많은 것만 보아도 한 계절이 간다는 것은 단순히 덥고 춥고의 문제만은 아닌듯하다.

며칠 전 소파에 누워있다가 탁 일어났는데 어랏, 현기증이 순간 핑 하고 오면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그대로 서있었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쉬는 날 그림을 두어 시간 그리고 일어났는데 그때도,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가도 휘청.... 뭔가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




이석증.

이 단어를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이다.

잠깐동안 함께 일했던 언니가 이석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처음에는 이유도 몰랐다-그런 병이 있구나 생각했다.

몇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나왔는데도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 언니를 보면서 그때는 참 희한한 병도 있구나 했었다.


그리고 결혼하고 몇 년 후 시댁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따다가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을 때에도 더위 탓이지 그것이 달팽이관 문제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그때는 누웠다 일어날 때마다 어지러워서 잠자려고 눕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기이하게 생긴 헤드폰 같은 것을 머리에 두르고 화면에 보이는 점을 따라 눈을 위아래위아래 어느 걸 그룹의 노래 가사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눈동자를 돌리고 가상현실 속에서 게임하는 듯한 행동을 한참 하고 난 뒤 이석증 이란 진단을 받았다.


열대야 일수, 몇 년 만의 무더위, 9월인데 35도, 갱신에 갱신을 더했던 저런 단어들만 봐도 올여름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숨 막히는 더위에도 한번 빼먹지 않고 근력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했는데 또 환절기에 몸이 삐걱대기 시작하니 하기 싫어도 나이는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우울해졌다.




이렇게 조금 늦게 시작된 올해의 가을... 그럼에도 나는 가을을 참 좋아한다.

왜 가을이 좋은지 정확한 이유는 없다.

강렬한 햇살아래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던 세상이 서서히 브라운 톤으로 변해가기 시작할 때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온 은은한 가을빛이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런 햇살을 받으며 내 마음이 조금씩 따스해져 갈 때 나는 여름 내내 더위로 흐물거려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비로소 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의 안부를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하고, 더위 핑계로 미뤄졌던 누군가와의 밥 약속도 지켜야 하고, 내년 봄으로 미뤄진 산골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위해 그림도 열심히 그려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그런데 가을은 왜 이렇게도 짧단 말인가.


며칠을 견디다가 결국 병원에 내원하여 어지럼증 약을 타왔다.

심하지는 않다고 말했더니 후레시 같은 빛으로 양쪽 귀를 비춰보던 의사 선생님은 '염증은 없네요'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력이 떨어지면 그럴 수 있다고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줬다.

나오려다 말고 돌아서서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죠?' 했더니 아니란다 다행히도.


어제점심도 오늘 아침도 고기반찬으로 식탁을 차렸다.

기력이 없어서 어지러웠다면 무언가를 먹어서 기력을 차려야 하고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다면 빨리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데 역시 글쓰기도 쉽진 않아서 고민이 많아지려는 순간, 노트북을 덮는다.

이제야 말로 아무 생각없이 내가 좋아하는 골프경기를 시청하면서 힐링타임 할 때이다.

참고로 난 골프는 하지 않고 보는 것만 즐긴다 그래도 누가 누가 잘하는지 다 알고 경기의 룰도 거의 통달했다.

좋아하니까 그냥 알게 되었던 것처럼 내 마음도 그냥 그렇게 가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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