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연체
도서관에서 사채를 빌려주나요?
"선생님, 책을 빌려 가는 걸 뭐라고 해요?" 1학년 아이가 자동대출반납기 앞에서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응 대출이라고 해, 대출 시작 버튼을 누르고 바코드를 읽히면 돼." "아! " 대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이는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얼굴이 환해져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 책 다 보고 돌려줄 때는 반납 시작을 누르고 하면 돼, " "네~" 아이는 다음에 와서 다시 물을 것이다.
"선생님, 책을 돌려주는 걸 뭐라고 해요?"
코로나가 도서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공공도서관에나 있던 키오스크형 자동대출반납기가 학교마다 설치되었다. 그 덕에 내 일이 반으로 줄었다. 대신 같은 질문과 대답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헷갈려하는 ' 대출, 반납, 연체'는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다.
자동대출반납시스템을 사용하기 전, 사서가 직접 바코드 리더기로 도서의 대출, 반납을 해주었다. 마침 친구와 통화 중에 책을 들고 기다리던 아이에게 "대출하려고? 너 연체돼서 대출 못하겠다" 했더니, 무슨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말이 그렇게 살벌하냐며 되물었다.
얘들이 사채업자에게 돈 빌리는 것 같다는 친구 말에,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출: 책을 집으로 빌려 가는 것, 반납: 빌린 책을 돌려주는 것, 연체: 기간 내에 다 읽지 못해 날짜를 어긴 것, 검색: 도서관에 보고 싶은 책을 찾아보는 것, 사서: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람 수서: 책을 고르는 것. 나는 익숙하지만 아이들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1학년이 입학하고 한 달 뒤에 도서관 이용자 교육을 한다. PPT를 만들어 수업 들어오기 전 교실에서 선행학습을 한다. 도서관 사용 예절과 용어에 대한 설명이 주 내용이다. 첫 시간에 간단한 설명과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 '사서' 정도 기억한다. 아이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고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편은 지금도 사서와 수서를 헷갈려한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빌려 가는 것, 가져오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자동대출반납기 화면에 대출 시작, 반납 시작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한 학기 내내 같은 질문과 대답을 무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도서관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이 글을 계기로 이것저것 찾아봤더니 역시나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 중이었다. 일제의 잔재라고 하기에 우리는 해방 후에도 독립국의 면모를 포기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의 도서관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긴 역사를 가졌다. '경당'이 우리나라 최초의 도사관이다. 우리가 익숙한 도서관은 규장각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도서관의 역사가 짧지 않음에도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해 쓰고 있다니 놀랍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 쓰고 있는 용어도 도서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용어나 법률을 바꾸는데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 상용화된 용어를 굳이 바꿀 이유가 뭐 있어하겠지만,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이리 살벌해서야 되겠는가 싶다.
쉽고 부르기 편한 용어는 없을까?
AskUp에 물어봤다.
네,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용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쉽고 부르기 편한 용어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대출" 대신에 "책 빌리기 시작하기"라고 말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또한 "연체" 대신에 "기한을 넘겨 반납하기"라고 설명해 주면 어려움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좀 더 쉽고 부르기 편한 용어를 사용하면 초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1학년 아이가 자동대출반납기 앞에서 나를 부른다. "응, 집에 가져가 다 본 책이지? 반납 시작 누르고 반납하면 돼." 아이가 익숙해질 때까지 무한 반복 알려줄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