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고 Nov 28. 2023

딸과의 데이트


* 시시하고 장황한 얘기 주의! 

* 하지만 딸과의 데이트가 특별한 것은, 별 것 아닌 것들이 귀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주말은 자매끼리 곧잘 노는 날이지만, 지난 주말만은 둘째의 절친이 집으로 놀러 오기로 했고, 그러면 첫째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것 같기도 했기에, 아빠 나름의 아이디어로 첫째와 아빠 둘이서만 같이 나가면 어떨까 제안해 보았다. 그때 첫째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거 좋은 생각이네!"라고 얘기해서 기뻤다. 그 반응이 귀했다.


둘이서 첫 번째로 간 곳은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만두 맛집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만두 세 판을 시켜놓고 첫째가 늘 혼자서 먹어보고 싶어 했던 냉모밀을 같이 시켰다. 내가 시킨 가락국수와 아이의 냉모밀을 중간에 한번 바꿔서 먹어보면 어떠냐 했지만 모밀이 너무 맛있는지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나중에 아주 작은 모밀 덩어리를 가리키며 "딱 요만큼만!"이라고 제안하니 그제야 안심하고 모밀 그릇을 내어줬다. 막상 아빠가 후루룩후루룩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자기도 흐뭇해지나 보다. "맛있지?" 하면서 멋쩍게 웃는다. 그 웃음이 귀했다.


걸어서 또 가본 곳은 보드게임 카페였다. 보드게임 카페는 처음 이용하는 것이라 커플이서 어떤 게임을 하는지 전날부터 고민하고 검색도 해보았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할지 척척 잘도 정해서 가져왔다. 지금껏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하면, 아빠는 이길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져주는 것이 관례였다. 항상 애기처럼 대하던 아이가 보드게임에 있어서는 아빠를 완전히 압도했다. 특히 도형과 관련한 게임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연전연패당했다. 아이의 뇌는 단순한 작업에 어른보다 더 깊이 집중하는 것 같았다. 딸은 내가 질 것을 미리 알았단 듯이 "괜찮아, 아빠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학원 선생님도 나랑 해서 이긴 적이 없었어." 라며 위로랍시고 거만하게 얘기한다. 그 태도가 너무 웃겼다. 그래도 내가 더 잘하는 게임을 발견했다. 전략게임만큼은 아빠가 훨씬 나았다. 이번에는 아빠가 계속 이기자, 아이는 약이 올랐는지 그 게임을 사서 집에서 더 해보면 좋겠단다. 게임판이 단순해서 "그냥 네가 종이로 만들 수 있어!"라고 하니 "아하, 내가 만들면 되겠네!" 하면서 좋아한다. 딸의 이런 적극성과 승부욕이 대견하다. 그 욕망에는 좌절이나 분노가 없다. 이길 때까지 도전은 하지만 반대로 지는 것도 재밌어 보인다. 우리가 질 때마다 느낀 그 재미가 귀했다.


바로 다음 목표지로 가려고 하는데, 길에서 잉어빵을 팔고 있다. (붕어빵이 아니라고 딸이 강조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슬쩍 살펴보다가, "아빠 우리 잉어빵 같이 먹자."라고 작게 말한다.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다. 그다음 행선지가 카페였기 때문에 그냥 가자고 해도 될 상황이었지만 오늘은 데이트이니까, 그냥 사 보기로 한다. 비록 기대보다 작은 잉어빵이었지만, 나는 팥 들어간 것, 딸은 슈크림 들어간 것, 길거리에서 후후 불면서 잉어빵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아까 모밀이 생각나서 이번에도 "아빠랑 바꿔서 먹어볼까?" 하니 역시나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젓는다. 먹는 게 그렇게 행복한가 보다. 그런데 나는 못 먹었는데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이렇게 귀한 맛이 있다니!


이제 마지막으로 카공놀이(카페 공부)하러 갔다. 나는 책 읽기, 딸은 수학 문제집 풀기. 나는 까페라떼, 딸은 딸기스무디. 한 20분 열심히 문제를 풀더니 슬슬 자세가 늘어진다. 아빠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갖고 가도 되냐고 한다. 물론 그 안에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두어 페이지 풀고서 무슨 게임이야? 여기, 두 페이지 풀고 나면 폰 줄게."라고 하니, "아하, 그럼 두 페이지만 더 하면 폰을 가져가도 된단 말이지?" 하면서 속도를 올려 문제를 푼다. 그러면서 "역시 공부에는 보상이 중요해." 라면서 아는 척을 한다. 딸은 결국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3장 정도 풀었고, 나도 책의 서두까지는 읽었으니 이 정도면 카공놀이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데이트로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이 선례가 얼마나 소중한가?


딸은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아빠와 먹은 것, 놀은 것, 공부한 것을 자랑한다. 나도 살짝 으쓱해진다. 동생은 친구와 아직 놀고 있었고 곧 떠나려고 하는 중이다. 기분이 좋아진 언니는 동생과 동생 친구에게 모두 같이 잠깐이라도 놀자고 한다. 셋이서 어울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다들 이쁘다. 귀한 내 딸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서울의 봄] 을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