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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n 12. 2024

주목받지 못했지만 주목받아야 할 앨범들 2

The Beach Boys - Holland (1973)

The Beach Boys - Holland (1973)


1970년대 초반 비치 보이스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밴드의 리더 브라이언은 스마일 앨범의 좌초 이후 계속된 정신건강 이슈와 더불어 계속된 마약복용은 점점 더 그를 무기력하게 몰아갔다. 거기에다 1965년, 브라이언의 칩거와 투어거부를 메우기 위해 가입한 브루스 존스턴은 1972년 밴드의 활발한 투어활동에 대한 피로감과 음악성의 차이 등을 이유로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브루스의 탈퇴는 밴드에게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작곡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면서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였다. 이에 대책을 강구하던 밴드는 칼 윌슨이 비치 보이스의 유럽투어 중 우연히 감명 깊게 들은 남아프리카의 밴드 The Flames 드러머 Ricky Faatar와 기타리스트 Blondie Chaplin을 백업멤버로서 영입하게 된다. 당시 밴드의 드러머 데니스 윌슨이 사고로 인해 드럼을 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영입된 멤버들인데 브루스 존스턴의 탈퇴까지 이어지자 정규멤버로서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은 비치 보이스에 합류하게 된다.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은 1972년 앨범 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부터 앨범작업에 참여했지만, 앨범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상업적 실패를 맛보게 된다.


반면, 앨범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던 비치 보이스였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종횡무진 활약을 하며 콘서트로서는 오히려 브라이언 시절보다 더욱 스케일도 커지고 그에 따라 수익도 증가했다. 이 당시 앨범의 부진에도 비치 보이스에게는 “Band of America"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시기로 멤버들의 연주력과 보컬 하모니는 절정에 이르렀다. 새로 가입한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 역시 금방 밴드에 녹아들며 보컬 하모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여러 곡들을 작곡하게 되며 중요한 멤버들이 되어갔다.


전작인 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는 전체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은 이도저도 않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사실 앨범의 평가는 부당한 면이 있었다. 졸작으로 간과하기에는 작곡가로서 브라이언이 건재함을 알린 You Need a Mess of Help To Stand Alone, Marcella와 같은 곡들은 분명 전성기를 넘어서지는 못 하지만 수작이상의 곡이었고, 앨범의 클로징을 담당한 데니스 윌슨의 아름다운 걸작 Cuddle Up은 마스터피스였다. 하지만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의 합류는 기존 팬들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비치 보이스라는 거대한 밴드에 영미권의 팬들에게는 생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뮤지션인 리키와 블론디는 뜬금없었고 브라이언 윌슨과 브루스 존스턴이라는 밴드의 중심인물들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 결과, 앨범은 빌보드 50위, UK 차트 25위라는 성적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언급했듯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은 대단한 연주자들이었고 비치 보이스는 앨범에서의 부진을 활발한 투어를 통해 극복해 나갔다. 처음에는 의문부호를 띄우던 팬들 역시 리키와 블론디의 역동적인 연주와 비치 보이스와의 시너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투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비치 보이스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생 비치 보이스의 앨범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Holland였다.

70s Beach Boys 왼쪽부터 칼 윌슨, 알 자딘, 리키 파타르, 데니스 윌슨, 블론디 채플린, 마이크 러브
70년대 비치 보이스의 라이브에서의 대단한 파워를 느껴볼 수 있는 라이브 명반 The Beach Boys In Concert

Holland는 여러모로 야심 찬 작품이었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블론디 채플린의 소울풀한 보컬이 인상적인 비치 보이스의 그루비 선샤인 팝 “Sail On, Sailor"가 항해의 시작을 알리고 Pet Sounds 시절의 사이키델릭 팝을 연상시키는 몽롱한 Steamboat가 이어진다. 이어서 프로그레시브적인 접근까지 보여주는 California Saga 3부작이 이 야심 찬 앨범의 A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바이닐을 뒤집어 B면은 상쾌한 멜로디와 사운드가 사랑스러운 The Trader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라이브 무대에서 길고 사이키델릭 한 키보드 솔로가 인상적인 곡으로 탈바꿈하는 사이키델릭 록 트랙 Leaving This Town이 지나가면 데니스 윌슨의 걸작 Only With You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리키와 블론디의 펑키한 연주가 돋보이는 Funky Pretty가 앨범을 흥겹게 마무리한다.


훌륭한 작품을 완성한 신생 비치 보이스의 앞길은 창창해 보였다. 원래부터 성공적이었던 활발한 투어는 앨범의 좋은 평가와 흥행에 힘입어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과 비치 보이스의 동행은 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 , Holland 단 두장으로 끝을 맺고 만다. 비치 보이스의 경영진(사실상 당시 밴드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을 가스라이팅하여 브라이언과 밴드를 조종하려 했던 정신과 주치의 유진 랜디)과의 불화에 따른 축출이나 마찬가지인 방식의 안 좋은 결말이었다. 하지만 리키 파타르와 블론디 채플린은 짧았지만 비치 보이스라는 세계적인 밴드에서의 인상적인 활동을 통해 음악계의 변두리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뮤지션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인지도와 명성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이후로 솔로와 각종 세션으로서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비치 보이스 역시 두 아티스트로 인해 라이브에서의 활력을 되찾았고 이후 브라이언과 브루스 존스턴이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인기밴드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여름, 짧았지만 끝이 안 좋았고, 하지만 결국 서로 윈윈이 되었던 혼란의 시기에 나온 비치 보이스의 역작 Holland가 당신의 귀를 거쳐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앨범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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