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힘
일본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작품이 있다. 2014년 작품이니 이미 10년이 지난 작품으로 슬픈 스토리와 화려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명작으로 여겨지는 청춘음악 성장물이다. 주인공 아리마 코우세이는 천재 피아니스트로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영재였지만 역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학대와 같은 피아노 연습으로 인해 연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거기에 더해 불치병에 걸려 어머니가 사망하자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리는 정신적인 PTSD를 겪으며 음악과 멀어지던 찰나, 빛나는 첫사랑, 천방지축 자유로운 바이올리니스트 미야조노 카오리를 만나 사랑과 음악의 힘으로 PTSD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후반부 여자주인공 미야조노 카오리는 병명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가며 음악에 대한 정열마저 잃고 희망의 놓으려 하는 상황에 처한다. 주인공 아리마는 자신의 연주를 카오리에게 전화기 너머를 통해서라도 들려주어 다시 삶에 대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음악의 천재이지만 아직은 어린 중학생인 아리마는 카오리에게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에 두려워하면서 과연 자신의 연주가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과 그를 이끌어주는 어른들을 통해 껍질을 깨고 또 한 번 성장하며 아리마는 이렇게 되뇐다.
많은 사람들과 음을 공유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음이 닿았을 때, 그로 인해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음악은 언어를 뛰어넘을지도 몰라.
진정으로 그렇다. 음악은 그 자체로 언어와 국가, 인종, 성별을 따지지 않는 감정의 표현 방식이며, 범세계적인 소통방식이다. 예를 들어보자. 극과 스토리에 몰입한 연기자가 메서드 연기를 통해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느끼는 감정,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표출한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그 연기를 보며 함께 화가 나기도 하고 함께 눈물 흘리기도 한다. 또한 블루스 연주자가 자신의 슬픔과 회한을 노래로, 기타 연주로 표현할 때 종종 눈을 지그시 감는다던가, 황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듣는 이도 한껏 음악에 몰입하여 그 감정을 느끼고 연주자처럼 표정에 그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메서드 연기자의 연기와 블루스 연주자의 연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예술을 통한 감정의 공유이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술의 보편적 위대함이란 언어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온다. 설령 대사가 없는 마임이라도 혼이 담긴 연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언어가 다른 가사, 혹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 역시 사람에게 희로애락을 전달한다. 나는 인간에게 이러한 언어와 문화권, 성별과 인종을 넘어서는 보편의 소통 방법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유튜브의 발달을 통해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범람하지만 유튜브 세상에는 “리액션 영상”이라는 콘텐츠가 굉장히 많이 제작되고 있다. 말 그대로 유명한 곡이나 영상, 영화들에 대한 반응을 담아서 영상화하는 콘텐츠이다. 최근 에릭 클랩튼의 명곡 Tears In Heaven의 여러 리액션 영상을 보며, 댓글들을 읽으며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좋은 연주와 노래는 그 자체로 보편적이구나.”
국적, 성별, 연령, 인종, 문화권이 다른, 심지어는 이 곡에 얽힌 아들 코너 클랩튼의 허망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노래, 연주가 전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며칠간 찾아보았던 리액션 영상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세상을 넘어 AI와 광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사회에서도 전혀 빛바래지 않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가치이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빠른 유행 속에 그 속도만큼 빠르게 잊혀가는 음악들이 많은 이 시대에도 Good Music is Never Die라는 말은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닌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