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 애쉬버리 지구는 전 세계 히피즘과 사이키델릭 문화의 중심지였다. 해당 지역에는 미국전역의 히피들이 모여들어 정치, 사회, 예술, 반전에 대해 급진적인 작품들과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레이트풀 데드는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쉬버리 지구의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였다. 그들 이외에는 제퍼슨 에어플레인,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 빅 브라더 앤 홀딩컴퍼니가 꼽히고 이 네 밴드를 묶어서 샌프란시스코 4대 사이키델릭 밴드로 여긴다. 그들은 실제로 헤이트 애쉬버리에서 집을 구해 거주하면서 매일 아티스트들과 히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바로 여기, 그레이트풀 데드의 결성초기 히피의 성지 헤이트 애쉬버리에서 그들의 혁신적인 마케팅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레이트풀 데드는 결성 초기부터 헤이트 애쉬버리에 공동주택을 임대하여 거주하면서 활동하였다. 헤이트 스트리트 710번지 일명 그레이트풀 데드 하우스(Grateful Dead House)는 히피즘의 기치아래 언제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그레이트풀 데드 하우스에는 미술가, 소설가, 음악가 등 모든 종류의 아티스트들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히피들이 매일같이 자유롭게 방문하여 서로의 영감을 나누고 교감하는 장소였다. 그레이트풀 데드는 24시간 아무 때나 기분 내키는 대로 잼연주를 펼쳤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교감하였다. 이 당시 데드와 함께 교류하며 자유롭고 긴밀한 교감을 나눈 사람들이 그들의 코어팬, 일명 데드헤즈 (Dead Heads)의 기반이 되었다. 이들의 관계는 전통적인 스타와 팬의 관계와는 전혀 달랐다. 매일 방문하거나 심지어는 같이 살기도 하면서 매우 깊은 공감을 나눈 관계로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라기 보단 친구나 형제에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히피즘이 점점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고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면서 그 흐름을 대표하는 그레이트풀 데드 역시 미전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게 되지만 초기 그레이트풀 데드 하우스에서 교감을 쌓은 팬들은 데드헤즈의 중추가 되어 밴드와 함께 끝까지 함께 했다. 후술 하겠지만 여기서 기억해 둘 부분은 그레이트풀 데드와 데드헤즈의 관계는 전통적인 스타와 팬의 관계와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레이트풀 데드 음악의 진면목은 잼 연주에 있었다. 모든 공연에 트랙리스트가 겹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결코 같은 방식과 진행으로 연주하는 법은 없었다. 모든 곡은 각 공연의 분위기, 팬들과 멤버들의 시너지에 의해 즉흥적으로 다르게 연주된다. 팬들은 자연히 다음 공연의 연주를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대표곡인 Truckin' , Dark Star, china Cat Sunflower 같은 곡들이 다음 공연에는 또 어떻게 연주될 것인지 밴드는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통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팬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공연의 티켓을 구매하게 된다.
그들의 공연은 압도적인 즉흥연주와 더불어 압도적인 횟수를 자랑한다. 1965년 결성된 이후 1995년 리더 제리 가르시아의 사망으로 인한 활동중단까지 30년 동안 공식적인 공연 횟수만 2300회로 집계되었다. 계산해 보자면, 30년 동안 4일에 한번씩 매주 공연을 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들의 공연이 더욱 대단한 점은 그들은 서너 곡 연주하는 짧은 공연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잼 연주를 즐기는 밴드의 특성상 2300회에 달하는 공연의 대부분이 2시간을 넘기는 공연이었고, 대여섯 시간은 우습게 넘기는 초장시간 공연도 매우 흔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올라오면 끝도 없이 잼을 이어나가며 한 곡을 한 시간 이상을 이어가는 경우도 잦았다고 하니, 얼마나 이들이 공연과 연주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의 공연은 충성스러운 데드헤즈는 물론 매 공연마다 그들의 연주에 호기심과 호감을 느낀 새로운 팬들이 계속해서 유입되었다. 과연 SNS나 인터넷도 없던 6,70년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레이트풀 데드는 매주 대규모 공연을 하면서도 보통이라면 자신들의 공연과 연주를 불법녹음, 배포하는 행위를 금지할 텐데, 데드헤즈들에게 마음껏 녹음을 하고 수익목적이 아니라면 마음껏 공유하고 퍼트리라고 오히려 녹음과 배포를 독려하게 된다. 그 결과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가장 부틀렉(불법녹음) 앨범이 많은 아티스트가 되었고 그들의 2300여 회에 달하는 대부분의 공연이 녹음이 되었다. 데드헤즈들은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무료로 녹음한 테이프 등을 배포하고 이 테이프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자 그들의 연주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낀 새로운 사람들이 매 공연마다 데드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고 공연장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네트워크가 전무한 시대에 현대의 아티스트들이 SNS와 틱톡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마케팅을 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데드의 연주가 담긴 테이프가 지인에 지인을 넘어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하지만 공연에 처음 참여한 팬들은 또다시 흥미로운 상황에 빠진다. 내가 테이프로 듣고 좋았던 곡을 들으러 공연장을 찾았는데, 그 곡이 연주는 되었지만 내가 들었던 곡과 길이도, 연주도 전부 다르다는 것. 이는 새로운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팬들은 그 길로 충성스러운 팬이 되어 다음 공연의 티켓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