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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Sep 19. 2024

명절이 한바탕 지나가고

우리의 쓸모가 정 배달꾼이었을지도



이혼한 가족이 있으면 결혼한 자녀들은 아마

원가족을 명절에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일일 것이다.


연끊은 아빠를 빼고


큰엄마 큰아빠집을 먼저 들르고 1박

엄마집을 다음날 가서 1박

그 다음날 시댁을 가서 1박.


그러고나서야 우리는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9년째 그걸 하지만 남편도 나도 가기전엔 귀찮고 짜증나는 교통체증에 힘들다고 토로는 해도

어른들한테는 티내지 않는다.

그 명절에 생신 몇번이

이제는 훌쩍 커버리고 떠나 살고 있는 아들딸들 얼굴을 보는

몇 안되는 날인 걸 잘 알고 있기에.


게다가 이번에는 역대급으로 엄마가 싸준 야채와 식품들을 시댁에 전달해드린 명절이었다.


그저께 엄마네서 청양고추를 한 10kg넘게 받아왔다.
"아삭이고추랑 청양고추 밭에서 다 딴거야. 이거 많이 다 가져가서 시어머니랑 시누네도 드리고, 장미랑도 나눠먹고, 나눠줄 사람 있음 주고. 이거 가지도."
".....엄마 이게 다 뭐야??"
"이모가 준 계란 이것도 두판."


나는 분명히 명절에 각 집에 줄 선물들

-과즐 1박스씩과 용돈봉투, 시댁에 드릴 영양제까지만 가볍게 가져가자 했더니 

그것도 세집에 시누네랑 시외할머니도 있어서,

마지막 시댁에 짐을 모두 내렸을 때는

바리바리 다 드려서 이제 가볍게 가야지!했더니

큰아빠집에서 엄마네 갈 때 큰아빠가
마늘 반접
대파5단

탕 6kg


호박 여러개를 잔뜩 주셔서 실패.

포도 6송이까지

큰엄빠가 주신 걸 차곡차곡 싣고

엄마집에 갖다놓으니 엄마는 더 얹어서 주고있다.


엄마 옆가게 사장님의 밭에서 나는
매번 나물이니 상추 깻잎 호박잎은 엄마 장사에 쓰고
우리도 꼽사리껴서 얻어먹고.

엄마 보고 간다며 들러 전등도 갈아주신 이모와 이모부를 오전에 만나 자장면  사드릴때 탕수육을 하나 시켜서 옆가게 사장님을 챙겨드리고 올라오길 잘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호박이 하도 많이 남아 다가져가네 덜 가져가네 하는데 자장면 배달부아저씨는 호박이 필요하다셔서 엄마가 몇봉지 챙겨드렸다. 아저씨가 아이고 노났네 하시며 웃으며 가시는 게 따뜻한 시골인심이 넘치는 동네구나 싶다.


설탕이랑 마늘은 엄마가 쓰고
이미 까놓은 엄마네 마늘에 직접 딴 고추에 호박에 가지에 건물주가 명절선물로 준 세탁세제에 아버님 어머님 회좋아한다고 떠놓은 시장 광어회와 낙지4마리에 새우를 더 얹어서. 엄마가 새로 먹기 시작했다는 산양유초유단백질 한통에 무말랭이반찬에 시장김까지.

차가 포화될 수밖에 없는 이 상황.

.......엄마?

"뭐여 그냥 고추만 주지 왜. 우리 차 실을 데 없당께."
"아이 잔말말고 다 실어가. 사면 다 돈이야. 그리고 이것도."




구이용 삼겹살 고기 4kg에 씻은쌀 3kg까지 차에 싣고나니
내가 탈 자리마저 위협이다.
"아 어머님네도 쌀있어!!뭘 쌀까지 주냐!!!"
"이것아 이 쌀은 여기 좋은데서 나는 좋은 쌀이여!!엄마가 아침에 씻어놓은거 저녁에 이걸로 밥지어서 드시라 해."
엄만 왜 몸무게도 조금 나가면서 손이 저렇게 큰걸까.

시댁가서 혼날 것 같아 걱정하며 아파트에 차를 대고 짐내리고 있으니 시부모님이 저 위에서 보시다 놀라서 내려오셨다.
"야 니네 우리집 이사오니?"
어머님이 얘네좀 봐 하는 얼굴이신데
"저도 몰라요 제가 산거 아니에요."
하고 일단 엘리베이터 가득 채워 한짐 날랐다.

건물주가 주고간 세제, 이모가준 계란 두판, 엄마가 준 대파4단, 청양고추10kg, 아삭이 5kg, 고기4kg, 쌀 3kg, 시장김 14봉지....
많긴 많다.
저녁한끼를 엄마가 사돈어른 드리라 사주신 산낙지로 낙지탕탕이와 찐새우와 광어회, 새우머리버터구이와 새우라면까지 먹고 끝내니 설거지거리도 안나오고 시부모님도 간만에 회를 맛있게 드셨다며 좋아하시니 나도 남편도 기분이 좋다.

"청양고추 매워 못먹어."
"어머님 언니네는 좀 챙겨줘요. 그리고 할머니들이랑 이거 가지랑 호박이랑 배는 나눠드시고~"
어머님은 언니 생각하다 할머니 얘기를 하니까 청양고추도 더 담아두신다.
"저희 둘이라 어차피 이거 다 가져가면 버려요. 어머님이 나눠드셔요 강화할머니네도 주고 이거는 오전할머니 오후할머니 드려도 되고."

어머님이 요양보호로 일하시러 가시는 아파트 두 할머니들이 그렇게 어머님을 예뻐하셔서 친딸 챙겨주시듯이 과일이고 과자고 좋은 건 다 챙겨주신단다.

그러니 나도 그 할머니들 드리라고 엄마것 좀 더 나눠드리는 게 아깝지가 않은 것 같다.


나눠먹는게 더 맛있다고 맨날 시골어른들이 그러더니 진짜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신기하다.


돌아오는 날 어머님은 나랑 고추 가지 호박 대파 마늘 쌀 계란을 나누시고는 이제 또 어머님의 돼지갈비와 잡채와 강화쌀과 빵과 식혜와 도가니탕, 나물반찬,사과 배를 나눠주셔서 가지고 다시 차가 포화된 신기한 경험을 돌아왔다.



이 오가는 정.

직접 먼 거리를 돌아 이들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큰엄마 큰아빠

엄마

시부모님

엄마식당의 건물주

이모와 이모부

자장면배달집 아저씨

시어머니의 요양할머니들

내동생과 시댁


까지 다 이어지는 이 정들이

어쩌면 나와 내 남편의 힘든 고향길 방문 여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따뜻해서

행복하다.


혼자 살면 편하고 좋은 점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조금은 불편하고, 가끔은 귀찮고 짜증날 수도 있는 그 과정에만 있는 그것.

우리가 살며 팍팍해질 수록 느끼지 못하고 사는 따뜻한 것.

어쩌면 평생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그립고 가끔은 버겁기도 한 그것.

그것을 우리는

정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수많은 시간을

이 정 덕분에 따뜻하게 살아온 듯 하다.


이 많은 정 나누고 살기에 팍팍해지지 않게,

매일매일 최소한의 온도는 지키고 살고싶고,

그렇게 살고 싶어

오늘도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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