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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Nov 09. 2024

취직 2주차, 다시 직장을 다녀보니 보이는 것들

경단녀에서 2주차 재취업 직장인의 일상은



2주전, 허리와 엉덩이 사이 근육이 끊어진 남편은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남편의 퇴사 사흘 전, 나는 7년만에 경단녀 히스토리를 접고 첫 출근을 했다.

집단상담선물은 4종 소금세트


50군데 넘게 이력서를 냈고,

그 중 7-8군데 면접을 봤고,

중간중간 직업상담사 2급 필기,실기시험을 7월과 10월에 각각 치렀고,

사회복지사 2급을 따기 위한 학점은행제의 첫 학기는 지난 달 말에 겨우 끝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서는 3번의 개인상담과 3번의 집단상담을 받으면서 쉬고 있는 동안 나의 마음상태를 단단하게 다지고 가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때로는 분노가 치미는 국회 싸움이나 갖가지 사회파렴치한들을 보고 있다가도,

정부가 세금을 올바르게 쓰고 있구나, 하는 순간들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차피 다시 취업해서 세금 잘 내게 하려고 근로의욕도 고취시키고 자신감도 키워주고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점심도 먹이고 정보도 주고, 취업면접 연습도 시켜주는 정성에 나는 생각보다 빨리 취업을 했다.


제일 좋아하는 건 나의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

가장 걱정하는 건 나의 친정엄마.


아직 오른팔의 근육염증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테니스엘보+골프엘포+관절염 콤보를 가지고 하루종일 컴퓨터와 전화를 붙들고 일하는 내 직장생활은 그리 순탄치는 않다. 아직 꼴랑 2주 일해서 뭘 얼마나 알겠는가.?


"그냥 조금 더 쉬다가 일하지.... 윤상이 허리 다치는 바람에 너 쉬지도 못하고 또 돈벌러 가네. 우리딸 고생만 하네 계속...."

엄마는 결혼 후 7년 내내 사위가 차린 가게가 녹록치 않게 운영되었고 결국은 폐업 수순을 밟게 된 것에 그다지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우리가 모은 잔고가 마이너스라는 사실에는 아주 많이 놀랐다.


"그래 이제 직장 다니고 하면 대출 내고 적금 모으는 거는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된거야?"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직도 갚을 대출이 집 대출 외에도 한참 남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남편 가게를 정리할 때 갚고도 남은 대출이 있지만, 엄마와 시댁에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둘이 해결할 거니까.


나의 20대 중후반의 직장인+자영업라이프는 30대 후반인 지금의 모습과 정확하게 반대를 이루었던 듯 하다.

뭐가 달라졌는지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1. 야근이 없어지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산다.


스물세살. 남은 대학 등록금을 위해 3학년 2학기 휴학을 하고 1년을 양재동 무역회사에서 일했을 때, 나는 100만원 알바비를 받고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일찍 퇴근하면 저녁 8시. 늦으면 새벽 1시까지도.

유럽과 미주를 상대로 한 중장비수출 담당인 내가 아르바이트생 신분에도 쓸데없이 큰 주인의식을 가졌던 게 문제였을까.

내 위는 자주 탈이 났고, 1년 반 후에 위경련을 몇 번 일으켜 응급실 신세를 진 후 나는 퇴사를 하고, 복학을 했다.

남편과 20대 후반에 차린 가게를 올해 3월까지 붙들고 있으면서, 혼자서는 영업접대도 서류작성도 못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새벽 4시까지 접대술을 마셨던 나.  때로는 1박으로 불려다니던 자동차업계 영업에 하루에 3번 4번 남을 위해 가게에서 밥을 차려대던 일상을 치울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새로 출근하는 수원의 작은 회사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매 끼 남이 해준 밥을 먹는다.

그 사실 하나로 너무 행복한 것은, 내가 경단녀이면서 두 집 살림을 해야 했던 서러움이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저녁 6시에 모두다 컴퓨터를 끄기 때문에 야근이 절대 없다.

2주밖에 안 된 나의 회사가 사랑스럽다.



2. 대접하던 일상에서, 대접받는 일상으로

우거지해장국과 잡채가 기가 막히던 구내식당 백반


늘 을이 되어 밥과 술을 제공하고 때로는 차를 대절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비위를 맞춰가며 다녔던 20대의 회사들과 7년의 가게생활과는 달리,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맛있는 밥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달달구리를 잔뜩 탕비실에 구비해놔준다. (정확하게는 대표님의 누나이신 팀장님이 채워주시는 거지만)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점심을 먹으며 말한 최고의 복지가 간식이라는 데에 동조하게 된 건, 일일이 맛있다고 했던 떡이나 인스턴트 밀키트나 수프 같은 것을 그때그때 사주시는 팀장님의 배려가 우리의 복지라는 걸, 1주일이 지나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초코,초코,그리고 초코가 있는 탕비실.

대기업이나 IT기업처럼 빵빵한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간식이 있다는 게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간식먹으며 나누는 스몰토크도 잘통해서 재미있는 건 덤.

원하는 과자 장바구니에 넣고 온라인으로 시킨 간식들



3. 위협받던 책상에서, 보호받는 책상을 쓰고 있다


남편 가게에서 내 책상은 언제나 딜러나 거래처 사람들의 단골 놀이터였다.

출력물을 뽑기 위해 내 노트북을 프린터를 자주 써야 하고, 그 안에서 나는 서류들을 지키느라 부던히도 애써가며 그들의 간식 또는 밥, 요청서류 작성을 하기 바빴다. 언제나 책상에 서류들은 조마조마하게 숨바꼭질을 하기 바빴고, 혹여 남편이 피곤할 때에나 남편 지인들이 놀러왔을 때에는 내 의자를 남편의 발받침으로 써야 했기에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2주간 출근을 한 지금 회사에서는 그토록 바라던 칸막이가 대표실 사이에 쳐져 있고, 팀장님이 옆 자리에서 인수인계와 도움을 주시지만 내 컴퓨터에 아예 관심이 없으시다.(내 할일만 잘하면 끝이고, 다음주에는 팀장님은 잠시 나를 가르치러 오셨던 내 옆자리를 떠나 본래의 팀장님 자리로 가신다)

듀얼모니터를 자유롭게 쓰고, 집에서조차 남편의 디스코드와 게임들로 온전히 가지지 못했던 내 "전용" 책상과 컴퓨터가 나를 기쁘게 만든다.



4. 미수금 걱정없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사장이 되어보면 안다. 직원이고 알바생일 때에는 그렇게 외치던 당연한 권리들이 사업주가 되는 순간 두려운 지출이 된다는 것을.

남편의 판단미스로 무리하게 직원을 2명이나 쓰면서 시원하게 억대의 지출을 하면서 사람쓰는 고통을 7년을 겪어보고 나면, 직장인으로서 착실하게 들어오는 통장의 월급이 너무 벅차고 감개무량해진다.

10월 28일부터 출근이라 고작 4일치 월급이 어제 들어왔지만, 나는 그 직장인의 그 지친 일상들이 얼마나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또 몇 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면 퇴사가 마려워질 지는 모르겠지만, 꾹꾹 눌러담긴 지하철 속 내 모습에 신물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사주신 컴포즈 아이스돌체라떼

일단은 이 사랑스러운 기분을 조금 오래오래 만끽하고 싶다.


첫주에 회전초밥을 얻어먹고, 그 다음 돈까스와 파스타도 얻어먹고 나니, 나도 이 회사에 무언가 도움이 많이 되는 직원이 되고싶은 마음에, 엄마가 사준 시장김과 고추짱아찌를 가지고 가서 나눴다.


"사람은 상대성인거야. 그러니 어딜 가서도 사람한테는 미움 사지 않게 예의있게 대하고 최선을 다해."

엄마가 나와의 통화에서 늘 하는 그 말을,

머리와 가슴에 새기고 되뇌이며 잠든다.

주말, 홀로 낚시여행을 떠난 남편이 오늘은 별로 보고싶지 않다.

가끔은,

이런 날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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