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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Dec 10. 2024

가끔 있는 비일상이 좋은 점

파업을 하니 남편이 다정해졌다



"내일 태워다줄까 회사??"

이런 쏘스윗한 대사도 남편한테 내장되어 있었다니요?

네니요......

그는 극한의 효율충으로,

본인이 유튜브보다 터져서 먹고싶은 요리가 없으면

절대 밖에 나가 장을 볼일이 없는 남자다.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도,

잠깐 짬내어 나란히 걷는 아파트단지 산책도 힘들어하는 사람.

그런 녀석이 내게 데려다준다는 말을 했다.


연애 초반에 2달 바짝 아침에 자기 출근길에 나를 지하철 오산역에 데려다주던 기억이 나지만

그것은 2015년 3월.

머나먼 과거의 일이렸다.


겉과 속이 너무 같은 남편은 얼굴표정에 [가기싫어]와 [하기싫은데]가 너무도 잘 보이는 사람이라,

웬만하면 나는 그에게 부탁할 일은 최소화하는 편이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내가 하는 게 속편하니까)

마음은 남편 차에타서 도착할 때까지 곯아떨어지고 싶지만,

이 뚜벅이는 안다.


그 안락함에 발을 들이면 나는 의존형이 될거고

태워주다 안태워주면 괜히  서운해질거고

마음이라는 것은 요사스러워.


애초에 안타면 그만.


그 예쁜 마음만 고맙게 받고


"여보 안방이 거실보담 추워 나 나가면 거실에서 자봐. 승희가 준 담요 덮고 그위에 어머님이 주신거 덮어 .

극락이야."


남편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담배를 태우러 현관을 나와 같이 나서 바깥 흡연구역에서 나를 배웅해준다.


"복구 아빠랑 집 보고 있어라잉!?엄마 돈벌어 오께.!"

아나 모르나 니가 직장을 알겠냐 월급을 알겠냐...

귀여운 게 무기다.


음.

파업을 하니 남편이 스윗해지는 광경을 보게 되는군.

그러나 이번주부턴 이녀석도 한달간의  무급노동을 하러 (진단평가사교육이 있단다)가야 하기에


오늘과 내일의 소중한 백수데이를 지켜주고자 한다.

한시간이라도 더 뒹굴거리라고ㅡ.

허리 아파서 힘들어하고, 그럼에도 꾸역꾸역 낚시가고 게임하다 대판 싸우고 했어도,


자는 모습이 짠한 건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원래 내 이상형은 매일 다정한 남자였지만,

지금 100번 중에 3번 4번 다정한 현남편에게는

이상하게 고마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우리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짐에 다시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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