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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Sep 26. 2023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나 홀로 남미여행-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공항 캡슐호텔에서 나왔다. 라파즈에서 리마로 돌아가는 비행 편은 다행히 직항이 있었다.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페루 리마, 리마에서 미국 애틀랜타, 애틀랜타에서 세인트루이스까지 총 세 번의 비행이 예정되어 있는 하루였다.


  리마 공항에서 기념품 구경을 하다 남은 잔돈으로 페루가 적혀있는 작은 잔 하나를 샀다. 사면서 이럴 거면 볼리비아에서도 하나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후로 방문 국가들마다 샷 잔 크기의 컵을 모으고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볼리비아에 간다면 부디 하나만 사서 나에게 팔아주길…

남미여행 4컷요약

  어쨌거나 마침내 나는 남미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왔다.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자 나는 이제 다 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 미국 올 때도 자주 이용할 만큼 규모가 매우 큰 공항이어서 세인트루이스로 가기 위해 국내선 항공 터미널로 이동했다.


  탑승구에 도착해 앉아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툭치며 말을 걸었다. 마침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대학교 친구였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던 중, 스피커에서 델타 항공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항공사 측에서 초과예약을 받았는데 오늘 비행기 정원보다 사람이 많이 와서 다음 비행기를 타고 갈 사람 8명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탑승 정원보다 많은 손님을 예약받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갔지만 ‘노쇼’ 상황을 감안해 미국에서는 꽤나 자주 있는 일이란다.


  그래도 대가 없는 봉사는 아니었다. 델타 항공에서는 400불 바우처와 호텔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다음 비행기가 다음 날 오전이었기 때문이다. 수업도 있고 우선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딱히 방송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사람이 선뜻 모집되지 않았는지, 항공사 측은 보상 비용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600, 700, 800불까지. 둘  다 처음에는 귓등으로 흘려보냈는데, 보상이 올라가자 조금씩 솔깃해졌다. 800불이면 환율을 고려해 한국 돈으로 백만 원이 넘는 돈 아닌가.

  

  남미로 가는 편도 비행기 값 정도를 바로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점차 마음이 기울어졌다. 생각해 보니 둘 다 오후 수업이고, 호텔도 제공해 주는데 백만 원이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체력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남미와 시차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우리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고 곧 이메일로 1000달러 바우처를 받았다. 돈을 더 받게 된 이유는 마지막 신청자가 보상 비용이 1000불일 때 결정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그만큼 받게 된 것이었다. 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이 좀 길었지만 그래도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심정이었다.

당시 게이트와 친구와 호텔에서 시킨 맥도날드

  그렇게 하여 계획에 전혀 없던 애틀랜타에서의 1박을 하고, 다음 날 오전 비행기를 타서 세인트루이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으로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까지 예측불허했던 이번 여행. 페루와 볼리비아만 찍고 돌아왔기에 나는 넓디넓은 남아메리카 대륙을 맛보기 정도만 해봤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짧은 배낭여행은 나에게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특히나 혼자 했던 여행이었기에 더욱 잊지 못할 것 같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고 때로는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글거리는 많기에 나머지 내용들은 내 메모장에 간직하도록 하겠다. 남미, 반드시 돌아오리라.


(여행을 다니며 틈틈이 여행기와 내 생각들을 메모했지만, 글 작성을 미루고 미루다 어느새 반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사이 나는 또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떠돌다, 지금은 잠시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있다. 짧지 않은 이 기간이 내 몸과 마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도 꾸준히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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