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ngdaeone Jun 01. 2023

일본 브랜드 가격정책의 비밀(하)

(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 9

(상)편에 이어


그렇다면, 일본의 도매 공급율은 왜 높은걸까? 해답은 일본 유통 구조에 있다. 일본은 편집 문화가 발달했다. 편집이란 여러가지 상품을 바잉해 포토폴리오 형태로 판매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많이들 알고 있는 beams가 1976년에 시작되었으니, 일본의 유통 산업에는 꽤나 오래전부터 편집의 DNA가 있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프렌차이즈만 나열해도, abc마트, beams, 저널스텐다드, 유나이티드 에로우스, 쉽스까지 다양하다.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편집과, 소규모 단독 편집매장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 백화점유통엔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문화가 있다. 특정 브랜드가 입점되어 있을 경우, 해당 브랜드를 다른 편집매장에서 소개하지 않는 것이다. 매출을 나눠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편집이 트랜드가 되면서 요새는 백화점에서도 간간히 중복 MD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건재한 규칙이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정규 입점된 브랜드라도 바로 옆 편집매장에서 소개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브랜드를 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타임/마인같은 컨템포러리 브랜드도 바로 옆 편집 매장에서 소개되는 것이 일상적이다.


이렇듯, 편집 문화가 발달하면 홀세일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격우위를 가져가야하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자체 유통망을 가진 경우, 직영점은 편집매장과 필연적으로 경쟁해야한다. 이 때 경쟁사보다 자신이 더 싼 가격에 재고를 떨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도매가를 높게 설정하여야 한다.


또, 브랜드의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서도 높은 도매가 책정이 필요하다. 브랜드는 가격 보존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한다. 잦은 가격 인하가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시즌 할인을 진행할 경우 고객의 입장에서는 정상가에 상품을 구입할 유인이 줄어든다. 편집매장은 반대다. 시즌 말미까지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경우, 완사입 가격에 맞춰 세일을 진행하면 비용 보존이 가능하다. 브랜드 이미지 실추야 자신들의 비용이 아니기에 할인을 망설일 이유도 없다.


 브랜드는 가격을 보존하고 싶어하고, 입점처는 가격 할인에 적극적이니 가치가 충돌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이 경우, 현실적인 이유로 가격 할인이 불가피하다. 많게는 수백개의 입점처를 가진 브랜드가 모든 스톡리스트를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당연하게도 상품가를 보존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사입 당시 계약사항에 세일 금액과 관련된 내용을 기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판매가 감시와 가격 조정에 들어가는 인적, 물적 비용을 생각하면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브랜드는 도매가를 높게 책정한다. 결국 높은 도매가는 이러한 시장논리에 의해 형성된다.


일본 브랜드에 대한 국내의 높은 가격 책정은 이렇게 형성된 내수시장의 도매가가 해외 시장에 적용된 결과다. 특히, 한국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굳이 낮은 도매가를 책정할 필요가 없다. 일본까지의 접근성이 좋다 보니, 현지에서 옷 몇 벌 사고, 음식 좀 먹고 돌아오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센스, mr.porter 등 영미권 편집샵에도 일본 브랜드가 입점해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판매가가 저렴한 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비즈빔과 캐피탈. 무지막지한 가격임에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이러한 게임상황에는 전제되는 가정이 있다. 일본의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에도 내수 브랜드를 소비할만큼 성숙한 소비 의식을 갖췄다는 사실과, 브랜드는 거기에 부응하는 멋진 디자인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본 브랜드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높은 도매 공급가 형성이 가능한 일본 패션 산업의 분위기가 부럽기도 하다.


오사카 지역을 대표하는 다섯개의 데님 하우스. 스튜디오 달치산, 에비수, 웨어하우스, 풀카운트, 드님. 오사카 파이브리는 별칭으로 불린다.

나는 일본의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 일본의 패션 산업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우리나라의 현대 패션 시장을 압도했다. 일일히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하우스 브랜드가 존재해왔고,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들도 수준급 감도를 보여준다.


왼쪽 위 다카다 겐조, 오른쪽 위 준야 와타나베, 왼쪽 아래 후미토 간료, 오른쪽 아래 준이치 아베. 모두 분카복장문화원 출신의 디자이너들이다.

세계 최고 패션 스쿨 중 하나인 분카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거름삼아 성장한 시장문화는 세계 패션신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다각화된 유통 구조는 창작자와 브랜드가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었다.


업계의 사람으로써 우리나라 내수 브랜드들의 현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다수의 패션 회사들이 코로나를 겪으며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갑자기 맞이한 변화로 인해 가격정책은 지켜지지 않았고, 손상된 브랜드 이미지는 매출 외연 축소로 이어졌다. 패션 시장의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벌어졌던 현상이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 도메스틱 브랜드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폭풍이 몰아쳐도 파도를 타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이덴티티를 가진 브랜드라면 높은 가격대에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렇게 브랜드는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는 소비층이 생겼고, 메인스트림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에 맞춰 유통도 발전하고 있다. (더현대서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렇게 변화하는 시장문화에 잘 편승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패션과 유통 산업은 대부분 일본의 전철을 밟아왔다. 백화점 유통의 특약매입, 오피스 상권 저층의 쇼핑센터, 다양한 형태의 로드샵까지 우리나라의 유통 형태는 대부분 일본에서 건너왔다. 이러한 발전의 역사를 증명하듯, 최근 편집 문화도 일본의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이엠샵은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마켓은 신세계를 중심으로 분점을 늘려가고 있다.

스컬프와 아이엠샵, 샌프란시스코 마켓은 분점을 늘리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에잇디비젼과, 바스카스토어, 비쥬얼 에이드 클럽 등 감도 높은 편집샵은 내수 브랜드의 구성률을 늘리고 있다. 자연히 완사입 공급율도 높아졌고 최근엔 소매가의 50%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뭐, 우리나라도 일본의 패션 산업만큼 건전하고 멋진 분위기를 곧이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정도다.


글을 쓰다 갑자기 생각나 찾아보게 된 19년 여름의 일본.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이상으로 일본 브랜드 가격의 비밀을 헤쳐보았다. 얼마 전 모 지인이 국내 편집매장의 비싼 가격정책에 분개하던 것을 본 것이 이 글의 발단이었다. 뭐 비싼 가격에 아쉬운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섭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니, 코로나도 끝났겠다 이참에 일본으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완결

이전 10화 일본 브랜드 가격정책의 비밀(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