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식은 살짝만 섞여도 고급이 될까?
나는 가끔 외식 메뉴에서 ‘트러플 간장’, ‘유자 소스’, ‘와사비 크림’ 같은 말을 보면 살짝 긴장한다.
이 음식값이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더 비쌀 것 같기 때문이다.
재료를 보면 어렵지 않다.
간장, 유자, 와사비.
다 일본 요리에서 흔하게 쓰이는 식재료들이다.
그런데 이 재료들이 다른 요리와 섞이면,
그 순간 뭔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한국 음식이 다른 문화와 만나면 '이색적'이 되지만,
일본 음식이 다른 문화와 만나면 '고급'이 된다.
왜일까?
일본 요리는 비우는 기술을 가진 요리다.
맛을 더하지 않고,
재료의 본질을 살리고,
접시에 공간을 남기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절제해서 담는다.
그것은 시각적으로든 미각적으로든
‘무엇인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여백은
다른 문화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일본 요리는 퓨전의 재료로 쓰일 때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슈트 안에 입은 하얀 셔츠처럼,
앞에 나서지 않아도 전체의 품격을 올려준다.
물론 이것은 일본 요리 자체의 탁월함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정갈함, 정교함, 신중함.
이 모든 키워드는 음식에도 고스란히 이식된다.
그래서 와사비 크림은
단순히 크림과 와사비의 조합이 아니라,
‘일본적인 정교함에 서양의 고급재료가 더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요리가 미학을 가지게 될 때,
그 음식은 단순한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문화 소비의 대상’이 된다.
일본 음식은 그 영역에 일찍 도달했다.
그리고 그만큼 퓨전의 조합에서도
상대적으로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왜 한국 음식은 '강하다'고 느껴지고,
일본 음식은 '고급스럽다'고 느껴질까?
이 질문의 답은
요리 자체보다는,
그 요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인식 구조 안에 있다.
퓨전은 단순한 섞기의 기술이 아니다.
이미지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맛보다 먼저 도달하는 것은 이미지이고,
맛보다 오래 남는 것도 이미지다.
그래서 퓨전 요리를 이야기하려면
입보다 눈과 기억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요리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요리가 불러오는 인상은 알고 있다.
그 인상이
왜 어떤 요리는 ‘흔해지고’,
어떤 요리는 ‘격상되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여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