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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Sep 05. 2023

우리는 형제다

게임

  금요일이다. 호야 센터 스케줄이 바뀌어서 오래간만에 호야가 집에 일찍 들어왔다. 며칠 전 민이와 핑퐁게임을 했던 것이 좋았는지 호야가 민이를 따라다니며 계속 핑퐁게임을 하자고 한다. 핑퐁 게임은 보드게임의 일종인데 가운데 투명한 돔에 주사위가 들어가 있고 여기를 꾹 누르면 주사위를 던진 효과가 난다. 이 숫자대로 네 개의 말을 움직여서 말이 빨리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윷놀이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잡을 수도 있고 처음 말이 나갈 때는 반드시 점 6개가 있는 주사위 면이 나와야 한다. 하다 보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나름으로 긴장감 있는 게임이다. 이 보드게임은 호야가 일 학년 때 첫 번째로 다녔던 센터 선생님에게 받은 선물이다. 그때는 센터 수업 중 선생님과 보드게임을 하다가 호야가 지면 울기도 했다. 일 년 후 선생님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서 호야도 센터를 바꾸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호야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면서 주신 선물이다. 

  전날 호야와 민이가 핑퐁 게임을 다섯 판 했는데 민이가 4대 1로 졌다. 형에게 지는 걸 아주 싫어하는 민이는 고래고래 울면서 통곡했다. 그래서 그런지 형이 게임하자고 해도 흥, 안 해! 한다. 하지만 호야가 내가 한번 쉬어줄게 하자 마음을 바꾸었다. 둘이 오순도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긴다. 오래간만에 둘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물론 게임이 잘 안 되면 호야가 화를 내며 민이를 자꾸 때리는 바람에 내가 계속 신경을 쓰며 ‘폭력 금지’를 외친다. 지기 싫어하는 민이도 자꾸 속임수를 쓰니 나는 레이더를 끄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게임하자’도 종종 외쳐준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충동성이 강하다. 게임 전에 기분 나쁘다고 동생 때리면 안 돼, 때리면 게임 중지야, 이야기해도 별 소용이 없다. 호야는 보드게임을 할 때 승부욕이 아주 강한 편인데 눈치 빠른 동생이 이기게 되면 그 순간 분을 못 참고 동생을 퍽 때리곤 한다. 그래도 게임 전에는 항상 게임 규칙이 뭐지? ‘기분 나쁘다고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아요. 게임 잘했다고 다른 사람 약 올리지 않아요’를 아이들에게 상기시키기는 한다. 그런데 어떨 때는 호야가 동생에게 너무 무섭게 말해서 민이가 기분이 그만 팍 상해버리거나 울먹울먹 하기도 한다. 호야는 한마디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 기술이 부족해 보인다. 

  반면 게임하는 민이를 보면 전형적인 꾀돌이이다. 언젠가 아침에 미열이 나서 집에서 나와 단둘이 있던 날이었다. 민이가 핑퐁게임을 하자고 해서 게임을 하는데 주사위의 여섯 개 점이 있는 면을 나오게 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게 숙인다. 작은 주사위가 플라스틱 돔 안에 들어있어 옆면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옆면을 확인하고는 그쪽을 작은 손가락으로 누른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인데!’, 물론 내가 게임을 잘 못하고 승부에 관심이 없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방법을 생각했지?’ 난 손가락이 커서 민이 방법으로 눌러도 원하는 숫자가 잘 안 나오는데 아이는 손가락이 작아서 그런지 주사위 숫자를 맘대로 잘도 조정한다. 그러다가 내 말이 민이 말을 잡게 되었다. 내가 어쩌지, 민이 말을 잡아야겠는데, 하자 아이는 그 즉시 눈이 새빨개지면서 으앙, 울기 시작한다. 민이의 특기 중의 하나는 0.1초 만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래고래 우는 것이다. 내가 민이 속상해서 게임 못하겠네…. 했더니 아이가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주사위를 누른다. 

  호야가 옆에 있었으면 힘들어했겠다. 소리에 민감한 호야는 민이의 이런 앙탈, 짜증 소리를 못 견딘다. 다섯 살에 민이를 처음 만난 호야는 민이가 돌 쯤이 되어 활약을 시작하자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처음에는 호야의 커다란 눈이 더 커지면서 겁먹은 표정을 짓곤 했는데 이제는 ‘어이구, 또 시작이야.’ 이런 표정을 지으며 민이에게 어른 흉내를 내며 꾸중하기도 한다. 또는 호야도 너무 짜증이 나는 상황이 되면 민이를 때리거나 꼬집거나 때로는 물기도 한다.

  ‘폭력금지’라고 호야에게 여러 번 이야기하고 혼을 내고 해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고민이 되어 언젠가 느린 학습자 관련 교육을 들으러 갔는데 아이의 폭력성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강사가 폭력, 성, 돈에 대해서는 아이가 싫어해도 상관없이 꼭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이의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느린 학습자 아이들은 형제자매와 똑같이 대해줘도 섭섭함을 많이 느낄 수 있으니 아이에게 비밀 사랑 싸인을 만들어 주라고 했다. 그날 와서 호야에게 엄마가 등 두 번 두드리면 호야 사랑한다는 말이야. 동생에게는 비밀이야 했다. 민이에게는 엄마가 네 손 잡으면 사랑한다는 말이야, 형에게는 비밀이야 했다. 

  일주일 중 금요일은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는 날이다. 저녁 간식 시간 때문이다. 결혼하면서부터 남편과 함께 주말 저녁이면 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이 자리에 합류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는 평소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니 이때라도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빠 엄마의 맥주 파티 자리에 아이들이 자기 음료수를 마시며 안주를 같이 먹는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아이들이 이 시간을 간식 먹으며 영상 보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주중에는 영상 노출 시간을 하루 삼십 분으로 제한하는데 (물론 안 지켜지는 날이 많다) 주말에는 한 시간 동안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건강에도 좋지 않고 주말에 아이들 자는 시간이 늦어지니 새벽 기상을 하는 나에게는 타격이 커서 이 시간을 줄이거나 없애고 싶은 마음이 많다.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이 너무 섭섭해할 것 같아서 참고 있다. 

  올해 봄부터 우리 집에서 금요일은 게임의 날이 되었다. 남편이 언젠가부터 아이들 조금 더 크면 닌텐도 게임을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작년에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대모님이 이사 가시면서 오래된 닌텐도 게임기를 주셨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게임에 입문했는데 주말마다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이 직장동료가 주었다며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를 집에 들고 왔다. 남편은 온 가족이 모여 게임을 하고 싶었는지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했지만 나는 영 별 흥미가 없었다. 민이가 엄마도 같이하자고 해서 어느 날은 같이 하려고 했더니 호야가 내가 하는 게 싫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호야는 내가 센터 일정을 관리하고 학습을 도와주니 아무래도 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놀 때는 아빠와 동생과 놀고 싶어 한다. 예전에 대모님과 피아노 레슨 받을 때도 대모님이 아빠와 같이 있을 때는 호야가 장난기가 줄줄 흐르는데 내가 같이 있을 때는 호야가 긴장을 많이 한다고 했다.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호야: “거기서 떨어지면 어떡해, 이 바보 멍충아!”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모양이다. 

민이: “형, 그 말 학교에서 배웠지, 학교는 공부하는 곳인데...”

호야: “넌 놀기만 하잖아.”

민이: “나도 유치원에서 공부한다고!”     


  남편과 나는 이때 주방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들리는 대화가 상당히 코믹하여 쿡쿡 웃었다. 호야와 민이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면 상당히 재미있다. 호야는 주로 입을 벌리고 있고 꼭 안경을 쓰고 한다. 민이는 한쪽 다리를 엉거주춤하게 들기도 하고 마치 온몸으로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보통 금요일 저녁에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이 게임 언제 하냐고 아빠를 조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편은 급하게 저녁을 먹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세계로 출근한다. 민이는 발 빠른 도둑 토끼인 톳텐을 하고 호야는 마리오, 아빠는 보통 루이지 캐릭터를 담당한다. 셋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니 각자의 성격의 잘 드러난다. 남편은 호야에게 ‘그렇게 하면 어떡해’와 ‘못해도 괜찮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셋이 팀으로 하다 보니 민이도 형이 못해서 해당판을 지면 많이 속상해한다. 처음에는 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큰소리가 많이 나서 듣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실컷 게임하고는 호야는 아빠와 동생이 자꾸 못한다고 타박을 하니 입이 나오고 기분이 나빠진 적이 많았다. 민이도 게임에 졌다면서 기분 나빠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호야도 게임에 조금씩 익숙해져서 중간에 캐릭터가 죽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언젠가는 남편이 없는 날 두 아이가 닌텐도 게임을 하는 게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나는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빨래를 넣으려서 거실을 지나가니 두 아이가 동시에 나를 절망적인 눈빛을 하고 쳐다본다. 호야가 내 눈치를 보면서 말한다. “아!, 루이지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나도 닌텐도 게임을 배워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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