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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Sep 19. 2023

파란 하늘 다음에는 꼭 소나기가 오더라

그날을 기약하며

  전화기 벨이 울린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나는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특히 근무 중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건 느낌이 좀 이상해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남자 목소리인데 한껏 높은음으로 말꼬리를 길게 뽑는다. 아, 아이 관련 전화구나. 그런데 누구지? 모르는 목소리이다. 때마침 무전기에서 나를 부른다. “죄송한데, 지금 근무 중이라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을 처리하고 나니 호야 합창단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무슨 일이지? 호야가 합창단에서 무슨 일이 있나?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통화 버튼을 눌러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전화하니 언제 통화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지금은 근무 중이라 곤란하다고 하고 오후에 전화하기로 했다.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일했다. 이날은 토요일 중에서도 제일 바쁜 토요일이었다. 직원들이 나를 쉴 새 없이 찾는다. 퇴근 후 트레이너에게 전화하니 선생님이 대뜸 ‘어머니, 밴드 공지 확인하셨나요? 하고 힐난조로 묻는다.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하며 어떤 밴드 공지를 말하는 거지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말한다. “오늘 지휘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다음 주에 있을 광복절 공연 노래를 외웠는지 확인하셨는데요, 호야가 가사를 하나도 못 외웠네요.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도 못했어요. 주말 동안 가사 외워서 노래 부르는 것 영상 찍어서 저에게 보내주세요. 지휘자 선생님이 확인하셔야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알겠다고 하고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었다. 순간 뒷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지난주에 합창단 밴드에 ‘이 노래 꼭 외워 오세요’ 라는 공지가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첨부파일에 악보는 없고 음원만 들어있어서 이걸 어떻게 외우라는 거지, 하고 지나갔었다. 호야가 노래는 빨리 익히니 합창단에서 불렀겠지, 생각했다. 다시 핸드폰의 밴드 앱을 열어 들어가서 꼼꼼히 살펴보니 악보가 올라와 있다. 아차, 내가 지난주에 정신이 없어서 놓쳤구나! 아이가 성장할수록 챙겨야 할 것은 많아지고 둘째도 챙겨야 하는데 호야는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하니 요즘 따라 펑크 나는 일이 많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분명히 노래 외워 오라고 신신당부했을 텐데 아이는 말 한마디 없었다. 답답하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나! 

  남편에게 주말에 호야 노래 연습시켜야 한다고 카톡을 보냈다. 다시 문제의 노래를 들어본다. 소프라노 음색이라 아이들이 부르기에는 음이 너무 높고 가사가 어렵다. 뮤지컬 영웅에 나오는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노래이다. 아무리 들어봐도 이건 아이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주말에 호야에게 노래 연습시켜야 하니 악보를 내려받고 프린트했다. 

 퇴근 후 저녁 먹고 호야에게 노래 연습하자고 했더니 아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호야는 토요일에는 철저히 놀려고 한다. 학교 숙제나 다른 과제가 있어도 토요일에는 절대로 안 한다. 하긴, 오전에 합창단 연습 다녀왔으니 힘들기도 하겠지. 하는 수 없이 노래가 귀에라도 익어야 할 듯해서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틀어 놓았다. 

  다음날에도 호야는 노래 연습은 계속 피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할 수 없이 오늘 노래 연습 안 하면 닌텐도 게임 못한다고 했다. 이런 식의 협박, 외적 강화는 안 좋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 꼭 영상을 찍어 선생님에게 보내야 한다. 아빠와 함께 노래 연습을 시작한 호야는 너무너무 하기 싫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아빠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보고 반주를 하는데 호야는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오리처럼 피아노와 벽 사이 공간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를 쳐들고 있다. 희미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호야 목소리가 들리기는 한다. 음, 이래서 되겠나 싶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남편도 신경질을 내며 선생님들이 곡 선택을 잘못한 거 아니냐고 한다. 가사를 보니 내가 보기에도 호야가 외우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는 이렇다. 


  이천만 동포의 깊은 한숨을 대신하듯 불어오는 이 바람/잠자던 내 영혼/지친 나에게 스쳐가며 말하네

/이제는 떠나가야 할 시간/그것은 너의 길/험난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

머나먼 타국땅에서 하지만 그것은 내게 주어진 운명/잊을 수 없는 건

빼앗긴 조국 신음하는 우리의 부모 형제/우리가 가는 길/기약 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우리 후손 위해/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없겠지만/나 오늘 이 순간 후회 없이 살고 싶어/그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어깨 감싸며 말하네, 힘을 내자고/바람이여 도우소서/우리에게 힘을 주오

기약돼 있는 그날을 위해/자 우리들의 외침/세상이 들으리라

민족의 우는 뜨거운 열정/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위해     


  이 노래에서 악보에 표시된 부분 일부분 두 소절 정도만 부르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들과 같이 공연하는 무대이다. 하지만 노래 가사의 명사 중에 호야가 아는 말이 거의 없을 것 같다. 느린 학습자 아이들은 추상적인 개념 이해를 특히 힘들어한다. 호야는 문해력이 아주 부족하다. 아무리 노래라도 모르는 말이 잔뜩 들어있는 가사를 외우려니 힘들겠다 싶다. 호야는 아빠와 함께 노래를 스무 번 넘게 불렀지만, 가사를 외우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호야가 힘없이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어 트레이너에게 보냈다. 이게 최선이에요, 아이가 울먹거려서 더 이상 못 시키겠어요, 라며 카톡도 보냈다. 이러다가 호야가 그나마 좋아하는 노래도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자 지휘자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문자가 왔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면 차분한 대화가 힘들 것 같아 근무 끝나고 전화했다. 지휘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호야가 학교생활은 어떤가요?”라고 묻는다. 이건 무슨 질문이지 싶었지만, 나는 좀 느린 편이냐고 대답했다. 지휘자는 학업이 느리다는 이야기는 아니시죠? 이런다. 나는 학업도 느리고 또래 관계도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휘자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호야의 첫 공연 어떻게 봤냐고 묻는다. 첫 공연? 무대 위에서 몸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움직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호야가 열심히 했다고 느꼈다고 대답했다. 지휘자는 호야를 지도하는 데 공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들고 무대에서 움직임이 튀어 지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아주 세련되고 정중하게 한다. 아…. 올 게 왔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합창단 자모회 첫 모임을 가서 호야가 여기서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생각했다. 지휘자는 이번 광복절 공연은 너무 급하게 준비하게 된 거라 꼭 참석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공연까지는 이틀밖에 안 남았다. 그동안 호야가 이 노래를 외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지휘자에게 이번 공연은 빠지겠다고 했다. 

  긴 한숨이 나왔다. 나는 첫 공연 때 호야가 큰 실수가 없어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힘들었구나. 하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안무도 해야 하니 아이나 선생님이나 서로 많이 어려울 수도 있었겠다. 저녁에 집에 와서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은 가능하면 뒤꽁무니라도 잡고 계속 합창단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호야의 자존감을 위해 합창단을 시작한 거라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분명 장점이 있긴 한데 아이에게 너무 버거운 걸 요구하고 있나, 너무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언젠가 지인인 초등학교 선생님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어떤 느린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문제라고 했다. 아이는 단순 연산을 아주 빠르게 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학교생활을 비교적 행복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연산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수학에 특출 난 아이라고 믿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아이에게 들이대어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다. 호야는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행복한 아이인데 내가 너무 아이를 특별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나? 합창단을 그냥 탈퇴할까 아니면 지휘자에게 아이의 사정을 설명해야 하나? 

  여러 고민이 들어 골머리를 앓던 중 대모님 생각이 났다. 호야에게 처음으로 피아노를 가르친 분인데 호야도 가르쳐 봤고 음악전공자이니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모님에게 연락을 해보니 마침 그날 저녁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토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지 않고 집 앞 카페에서 대모님을 만났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히 호야 지도에 에너지가 많이 들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은 정형화된 틀에 맞추는 것이 호야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호야가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니 학교와 성당 말고는 좀 활동을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내가 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수업내용을 못 따라가니 자존감이 무너질까 봐 잘하는 걸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더니 그건 지역을 옮겨야 해결될 문제라고 한다.

  나도 사실은 지역을 옮기고 싶은데 문제는 남편이 끄떡도 안 한다. 남편은 중고등학교는 소위 학군지, 가정환경이 좋은 지역에서 다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내가 관련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본인 친구 중 누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소위 험한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주변 아이들이 너무 거칠어 힘들어했다고 이야기한다. 대모님에게 남편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 의견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대모님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하는 이야기가 내가 호야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본인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뭔가 반응을 적절히 안 해주거나 사랑이 부족하여 아이들과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거 같다고 했다. 내가 얼마 전에 발달센터에서 호야가 학령기 아동 언어 평가를 받았는데 모든 영역에서 하위 0.1 퍼센타일, 어휘 수준이 5~6세 수준이었다. 그동안 발달센터도 계속 다녔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 호야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랬더니 대모님은 언어평가가 하위이든 상위이든 아무 의미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그 순간 참, 이 사람은 나를 잘 모르지,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럭저럭 마무리되고 아이들을 불러 대모님과 같이 치킨을 먹고 기분 좋게 모임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며칠간 계속 대모님과 한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모님이 언젠가는 나를 보고 농담조로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 또 언제는 “얘가 공부는 잘하잖아.” 이렇게 살짝 비아냥거렸던 것도 생각났다. 사교성이 좋고 아는 사람도 많은 대모님은 나를 본인의 그룹으로 확 끌어당기고 싶은데 내가 영 뻣뻣하니 좀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호야 합창단 사건을 괜히 대모님에게 의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큰 고민 없이 툭 던진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괴롭지? 어차피 어찌할지는 나와 남편과 의논해서 정할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대모님도 호야가 ‘느린 학습자’라고 하니 내가 유난을 떤다고 속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엄마의 애정이 부족하여 아이가 정상 발달 경로를 벗어났다니 역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구나. 실망이다. 대모님을 믿었었는데! 대모님은 말 펀치가 좀 센 스타일이라 내가 과대망상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자폐의 모든 것에 대한 역사’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폐증은 엄마가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미처 느끼지 못한 사이에 뭔가 잘못한 순간, 아기에게 심한 정신적 외상을 가해 스스로 지어낸 현실 속에서 영원히 숨게 만든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했다.” 

“아이들은 '정상'으로 태어났지만, 그 뒤로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다름 아닌 엄마에 의해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가정이었다.” 

 “엄마도 문제의 일부이며, 자녀가 나아지려면 엄마 역시 교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모님의 엄마로서의 나에 대한 의견, ‘엄마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과 1950년대에 자폐증에 대한 오해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두 견해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느린 학습자 부모 모임에서 만난 어떤 엄마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너무 이상해요. 그런데 시부모님과 남편은 네가 너무 예민해, 기다리면 다 괜찮아져,라고 말해요. 너무 답답해요. 아이가 나아져도 내 공은 하나도 없어요. 많이 우울해요.”     

  도대체 왜 이런 식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가? 이 기저 원인을 파헤치고 싶다.     

  문제의 광복절 공연 당일은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를 가서 실컷 놀았다. 호야는 뭐가 이상했는지, 나 왜 공연 안 해? 하고 묻는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외워 오라고 하는 노래가 있으면 알아서 외우던가, 아니면 집에 와서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해야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그 노래가 너무 어려워서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호야는 공연 대신 물놀이를 하니 신난 듯했다.      

  광복절 공연 영상을 보니 합창단 아이들은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뮤지컬 배우들이 앞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르는 거라 호야가 참석해도 큰 문제를 없었을 것 같은데 지휘자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연습하는 내내 호야가 계속 눈에 거슬렸겠지.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나던 일단 지휘자와 이야기를 해보자. 단단히 마음먹고 지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야는 느린 학습자이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알게 되어 계속 발달센터 다니고 있다, 학업은 매우 부족하고 노래를 좋아해서 합창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학기 초마다 담임선생님에게 수시 상담을 요청해서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휘자 반응이 의외였다. “어머님 당연히 요구하셔야 합니다” 지휘자가 말했다. 이 한마디를 듣고 불안으로 요동치던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지휘자는 먼저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저는 20년 동안 합창단을 이끌면서 호야 같은 아이도 많이 보았고 성격적인 문제가 심각한 아이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어머님은 결과가 중요합니까, 과정이 중요합니까? 

  나는 합창단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은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휘자는 어머님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셨으니까 앞으로 호야가 많이 힘들어하는 무대에는 세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호야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는 그렇게 우호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후유, 이렇게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다. 앞으로 큰 산을 여러개 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쉬쉬하며 조용히 합창단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당당히 현재 상황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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