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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Jul 19. 2023

물개를 만난 날

수영 배우기

 엄마 수영 배우고 싶어.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호야가 말했다. 그래? 수영장 가볼래? 얼마 전에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다. 초등학교에서 생존수영 수업을 하는데 그때 자유롭게 수영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에 자신감 차이가 크게 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바로 집 근처의 수영장을 알아보았다. 차량 운행도 하고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학원이라 호야가 수영을 배우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학생에 관한 정보를 쓰는 용지가 있어 호야의 특징을 상세하게 적었다. 선생님의 지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 수 있다고 적었다. 일단은 처음이니 적응하는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하기로 했다. 

 호야는 수영장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영 수업이 있는 유치원을 삼 년간 다녔다. 나는 전공의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아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는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휴가를 내서 소위 좋다는 유치원에 여러 군데 설명회도 가보고 나름대로 조사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유치원이 비교적 한 반 인원이 적고 학습보다는 체험을 중시하는 숲 유치원이었다. 무엇보다 이 유치원에는 수영장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대학원 다닐 때 교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처음 배웠는데 1년간 수영장을 쭉 다니면서 모든 영법을 배웠고 그때부터 수영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당시에 무미건조한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수영을 하는 것이 삶의 큰 활력소가 되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닐 때는 수영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속에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온몸에 힘을 다 빼고 물에 둥둥 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니 아이들에게도 수영을 가르쳐서 같이 수영하고 싶었다.

 하지만 호야는 유치원 다니면서 오늘은 수영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아이가 너무 싫어하는 날은 수영 수업을 빼달라고 유치원에 전화도 여러 번 했다. 호야는 유치원 삼 년을 다니고도 수영을 못했다. 그래도 물은 좋아했다. 여름에 물놀이 가면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에 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물을 즐겼다. 세 살 때 친정 식구와 안면도에 휴가를 갔는데 동생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는데 호야는 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여름휴가 기간 내내 나는 바다 물속에 한 번도 못 들어가고 아이를 업고 있었다. 이런 호야가 유치원 다니는 동안 물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디어 호야가 수영을 배우고 싶다니…. 옳다구나 싶었다. 수영장은 어린이 수영장이었는데 시설이 깨끗하고 좋았다. 수영장에 간 첫날은 별 무리 없이 수업에 참여했다. 나는 수영장이 환히 보이는 좌석에 앉아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생님은 강습은 짧게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같이 수업하는 아이는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물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다음 주에는 차를 주차하고 수영장에 가려는데 아이가 코피가 났다. 코피 난 채로 수영을 할 수 없어서 선생님께 연락하고 수업에 결석했다. 한 주 쉬고 다음 수영 수업에 갔다. 수업 도중 선생님이 앉은 자세로 얼굴을 물속에 넣고 숨쉬기를 가르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보기에 호야가 2초 정도 머리를 물속에 넣었던 것 같다. 수영 수업이 끝나고 호야가 별말이 없었는데 그다음 수업에 가려하니 호야가 잠수하기 싫다고, 수영하기 싫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언제 잠수했더라? 하며 의아해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번 수업 때문인 듯했다. 선생님도 참, 수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호야에게 이런 걸 시키다니…. 아이 특성에 대해 학생정보지에 기술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된 모양이었다. 아니면 혈기 왕성한 20대 수영선생님이니 아이 다루는 요령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하여간, 이후로 호야는 계속 수영장을 안 가겠다고 버텼다. 하는 수 없이 수영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수영장에 그만두겠다고 전화했다. 연락받은 수영장 대표 선생님이 전화하셨다. 아이가 수영 배우는 것을 많이 어려워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열 살인데 그렇냐고 하더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느린 아이가 새로운 거를 배우기는 역시 쉽지 않구나! 때마침 여름이었다. 몇 번 물놀이를 갔는데 그때마다 호야는 구명조끼를 입고 자기 나름대로 물놀이를 즐겼다. 민이도 물을 좋아했는데 유치원에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조금만 더 배우면 금방 수영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느린 아이는 운동 감각도 보통의 아이와 차이가 크게 나는구나. 민이가 자유자재로 수영하게 되면 형인 호야가 매우 속상할 것 같았다. 호야는 동생이 치고 올라오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느린아이 엄마끼리 하는 북클럽 모임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분이 본인 아이도 일반 수영장에서 배우기가 어려워 특수체육 전공한 선생님께 일대일로 수영을 배운다고 했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날로 특수교사를 구하는 웹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담당자가 연락이 왔는데 일단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는 수영장이 집 근처에 있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이런 요구는 처음인지 난감해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예전부터 눈여겨보았던 특수체육센터가 있었다. 웹사이트를 보니 수영은 안 가르치는 것 같다. 짬 나는 대로 인터넷 카페에도 들어가 특수체육, 수영으로 열심히 검색했다. 지방이라 그런지 내가 사는 지역의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며칠 동안 열심히 검색해서 드디어 수영을 가르치는 특수체육센터를 찾았다. 그곳에 바로 전화해서 상담 예약을 잡았다. 

 상담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원장 선생님을 만났는데 바우처가 있냐고 했다. 내가 경계선이라 애매해서요 했더니 원장 선생님이 처음이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렇네요 하신다. 이런 아이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기 때문에 많이 주눅 들어 있지요 하신다. 동네수영장에 몇 번 갔는데 잠수 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더니 원장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어보신다. “여기는 억지로 잠수시키지 않을 거야. 네가 하기 힘들면 힘들어요. 이야기할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잠수 안 하는 게 확실한지 연신 확인한다. 아이도 수영을 배우고는 싶은지 반응이 순응적이다. 마침 강습이 빈 시간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호야는 일대일로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그 후로 수요일은 과외활동과 대중교통의 날이 되었다. 수요일은 학교가 다른 날보다 일찍 1시에 마치는데 1시 20분에 센터 수업이 있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차에 태워서 센터로 간다. 작년에는 센터 수업이 1시라서 호야가 급식도 못 먹고 학교에서 나와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아이가 급식을 안 먹고 나오면 눈치가 보이는지 급식 먹고 싶다고, 급식 당번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서 시간을 늦추었다. 이십 분이라도 늦추니 나도 도시락 준비 안 해도 되고 좀 낫다. 

 센터 수업 후에는 지상철을 20분 정도 타고 장구 학원으로 간다. 차를 타고 가면 저녁 귀가 시간이 더 빠를 텐데 장구 학원은 그동안 계속 지상철을 타고 다녀서 아이가 양보를 안 한다. 차를 센터 주차장에 계속 세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아이가 국어 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운전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차를 집에 세워두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센터로 간다. 

 장구를 마치고 수영장을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좀 복잡했다.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한 번은 갈아타야 한다. 나는 힘들었지만 아이는 안 타본 노선을 이용하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집에 오는 경로는 시내 당일 여행코스라고 해도 되겠다. 수영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간다. 지하철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환승역에서 지상철로 갈아탄다. 지상철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면 집으로 온다. 차로 운전하면 30분 걸리는 거리를 이렇게 오니 집까지 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기진맥진인데 아이는 즐거워하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저녁 먹으러 갈 때 오 분 정도 걷는 길이 있었다. 길가에 큰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고 저녁노을이 지는 시간이라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이 길을 아이와 손을 잡고 걸었다. 오늘 수영 수업은 어땠어? 물어보면 아이는 좋았다고 대답했다. 어떤 날은 나 수영선생님에게 칭찬받았어. 하고 기분 좋아했다. 

 수영선생님은 처음에 아이가 발차기 힘이 좋은데 왜 머리를 물속에 넣지 않느냐고 의아해했다. 나는 발차기는 유치원에서 3년간 수영을 배워서 그럴 거라고 했다. 머리를 물속에 넣기 싫어하는 거는 최근에 동네수영장에서 잠수 공포증이 생겨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선생님은 장난감을 물속에 던져서 아이가 줍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했다. 수영 수업하면서 아이는 점차 물에 익숙해졌다. 삼 개월쯤 지나자 드디어 아이가 아무 거리낌 없이 물속에 머리를 넣고 수영장 바닥에 있는 장난감도 주워올 수 있었다. 

 선생님은 호야가 물속에 잘 들어가는데 ‘잠수’라는 말을 하면 못 들어간다고 했다. 호야에게는 사람이든지 경험이든지 첫인상이 아주 중요하다. 첫인상에서 아이는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해, 싫어해 결정하고는 그 생각을 거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잠수’도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가 강박적인 성향과 고집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전문가와 상담하니 이런 점이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한 느린 학습자들의 특성이라고 했다. 

 호야가 특수체육센터에서 수영한 지 삼 개월째부터 영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발차기 힘이 좋아서 진도가 쭉쭉 나갈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호야는 팔과 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면서 호흡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쨌든 수영을 좋아했다. 같은 시간대에 수영 배우는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이 아이와도 점차 친해졌다. 선생님은 호야가 처음에 왔을 때 모습과는 달리 수영 시간에 굉장히 활달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구 개월 정도 지나자 선생님이 자유형이 거의 완성단계라고 했다. 마침 학교에서 생존수영을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생존수영은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나는 생존수영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받자 일대일 수영 수업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야에게 잠수 공포가 생긴 상태에서 생존수영 수업을 했다면 일주일 내내 물에도 못 들어가고 많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호야는 학교에서 수업을 조금만 하고 수영장에 간다는 게 몹시 기대되는지 생존수영 한 주 전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잠수’를 해야 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생존수영 전주에 호야가 장염이 걸려 학교를 나흘간 결석했다. 집에서 쉬는데 어느 날은 호야가 컴퓨터로 EBS 사이트에 들어가서 생존수영 동영상을 한참 동안 보기도 했다. 

 호야는 ‘잠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생존수영 첫날에는 오늘만 수영 수업에 가고 내일은 안 간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처음부터 ‘잠수’를 시키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줬다. 첫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기분이 아주 들떠 있었다. 저녁에 수학 연산 문제를 풀 때도 아이의 기분이 좋고 자신감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호야는 3학년이 되니 학교가 예전보다 더 재미없는지 아침마다 등교 시간이 되면 졸린다며 누워있으려 한다. 그러면서 민이는 왜 자고 있어? 왜 유치원은 늦게 가? 이런다. 그런 아이를 이십 분 이상 달래고 안아주고 해야 겨우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런데 생존수영 기간에는 등교를 이십 분 일찍 해야 하는데도 아이가 스스로 벌떡 잘 일어난다. 어느 날은 내가 아침에 온라인 회의가 있어 시간을 깜박했는데 아이가 먼저 내게 와서 엄마 준비할까? 이런다. 오, 놀라운데…. 생존수영 기간에 아이 모습을 보니 평소에 호야가 학교 가는 걸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싶었다. 5일간의 생존수영 기간이 무사히 끝났다. 호야는 요즘도 생존수영 또 언제 해? 묻는다. 

 세 살 때 친청 식구와 여름휴가 때 간 안면도 바닷가에서 이모가 장난친다고 튜브에 태워 바닷물에 들어가니 자지러지게 울던 호야가 생각난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느리지만 호야는 오늘도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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