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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May 09. 2024

월간 텃밭 보고서_2024년 4월

텃밭 해방기념일  

3월 말부터 텃밭을 정리하고 모종들을 사서 심었다. 상추, 토마토, 고추, 그리고 허브 종류별로 하나씩, 그리고 지난겨울부터 계속 함께 있어온 '파'.


처음에는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 오락가락해서 영 애들이 힘이 없었다. 거기다가 누군가가 와서 밤에 막 나오기 시작하는 잎들을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누군가가 절반이상 잎들을 갉아먹은 것이 보였다. 애들도 괴로움을 넘어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소멸되긴 싫어요 하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시카고 근처 살 때 상추를 심었더니 사슴들이 와서 싹 먹어치운 경험이 있다. 그때는 그 근처에 숲이 있어 사슴이 출몰하는 것이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주택가라 사슴이 나타날 여지가 없다. 


때마침 나는 그때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있었는데 앵무새 (mocking bird)를 죽이지 말아야 되는 이유로 

'청어치 (Bluejay)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많이 하므로 죽여도 좋지만  앵무새는 노래를 불러 사람을 즐겁게만 하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 '라고 나온다.


사실, 그 청어치가 우리 집 마당에 자주 출몰한다. 참 예쁜 새이다. 이 때는 그 예쁜 청어치를 이렇게 매도하는 게  좀 안타까웠다.  그런데 우리 집 텃밭에서 이런 잔혹한 사건이 나면서부터  괜히 그 청어치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청어치가 쪼아 먹는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이 새는 주로 곡식 씨앗, 그리고 벌레를 잡아먹지 채소를 쪼아 먹을 것 같지 않다고, 아마 토끼 같은 것이 그렇지 않겠냐는 의견을 주었다. 토끼? 전혀  본 적이 없는데.... 하기야 밤에 먹고 가는데 내가 어떻게 본담. 그래서 동요에도 있지 않는가? 새벽에 토끼가 (물만 먹고 갔지요). 주변사람들은 이 사건이 그냥 남의 일이다. 그냥 사서 먹으란다. 딸과 그 몰염치한 밤도둑이 청어치인지 토끼인지 맞힌 사람에게 10불을 주는 내기를 하였다.


우리 집 마당에 출몰한 청어치 (Bulejay) (좌)              펜스 (우)             


 허술하게 펜스를 텃밭을 둘러서 놓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강아지 멀리 가지 말라고 치어 놓았던 펜스를 그냥 둘렀다. 크기에 잘 맞지도 않고  짧아서 마지막 코너는 커버하지도 못한다. 다행히 토마토의 잎이 두꺼워서 그런지 토마토는 그 난리로부터 해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있는 토마토 안쪽으로 펜스를 치었더니 얼추 맞았다. 더구나 구멍도 커서 몸집이 작은 동물을 구멍으로 드나들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해 놓으면 일단 겁을 먹겠지 기대했다. 너무 심하게 썰린 잎들은 잘라내고 홀라당 다 먹어버린 차이브나 민트, 그리고 녹색상추는 그냥 뿌리째 뽑아버렸다. 


다음날 아침... 오! 식물들이 온전히, 적의 침범으로부터 자유롭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딸의 말이 맞았다. 정확히 토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같으면 그런 펜스는 소용없었을 테니까. 10불 빼앗겼지만 기뻤다. 그날로 모종을 몇 개 더 사 와서 심었다.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토끼( 일단 토끼로 믿기로 했다)로부터의 해방날을  4월 15일로 잡기로 했다. 그날, 기념으로 우리는 식물아이들의 명명식을 했다.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은 꽃 만 아니다. 식물도 그렇다. 심지어  낚시에 사용하는 지렁이에게도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을 보았다. 토마토는 토자 돌림으로 동서양 아울러서 지었다. 키 큰 순서대로 토순이, 토마스, 토랑이, 토니, 토식이. 벌써 토순이와 토마스는 열매를 몇 개 맺었다. 이상하게도 다 검은색에 가까운 토마토가 나왔다. 모종을 살 때는 분명 이름표에 빨간색 그림이 있었는데... 



고추는 7개나 된다. 멕시칸 고추, 피망, 꽈리고추 등등 다양하게 심었다. 앞에 정성스럽게 꽂아 논 이름표를 토끼가 다 흩트려버려서, 현재 잎모양만 보고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 이 아이들은 약간 예술의 향기가 나게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기는 왠지 씨가 어울린다   고호씨, 고갱 씨, 고향씨, 고뇌씨, 고민씨, 고롬씨, 골드씨. 쉽지 않았다. 그냥 고추 1, 고추 2 가 더 났다고 하는 반론도 있었지만, 얘네들만 차별대우를 할 수 없다. 고호씨와 고갱 씨가 꽃을 피우고 있다. 곧 열매가 달리겠지. 



그리고 상추는 적상추 두 개 녹상추 하나이다. 원래 잘 자라는 아이들이라 벌써 많이 뜯어먹었다. 녹상추가 두 개 더 있었는데 토끼가 다 뜯어먹었다. 더 사다 심으려 했는데 모종을 발견할 수 없어서 녹상추는 현재 '개점휴업' 느낌으로 키우고 있다. 이 아이들도 상자돌림으로 상록이 (녹상추), 상긋이 , 상상이 정도로. 그리고 나머지 허브들은 하나씩 밖에 없으므로 그  원래의 이름을 그냥 붙여서 부르기로 했다. 페퍼민트, 스페어민트, 스위트민트, 세이지, 바질, 로즈메리, 실란트로 등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순서대로, 바질, 상추, 세이지 , 카모마일, 파슬리, 로즈메리, 실란트로 (고수), 차이브, 민트종류 (어제 잔디를 깎은 잔디가 텃밭 쪽으로 튀어서 바닥이 지저분하다)


파는 정말 가성비 좋은 아이들이다. 미국에서 파가 비싸서 그냥 마트에서 산 쪽파의 흰 부분을 잘라서 심었는데 잘 자란다. 처음에 심은 때가 겨울이라 화분에 심었고 그 후로 계속 화분에서 키운다. 어쩌다 가는 한국 마트에서 대파도 사다가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자라지 않는다. 쪽파보다 약간 굵을 뿐 상당히 부드럽고, 길게 자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국마트에서 대파 비스므리한 리크(Leek)라는 것이  있어 파 심듯이 심었더니 잘 자란다.  예쁜 아이들. 이 아이들은 그냥 단체로 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하므로 그냥 묶어서 파, 리크로 부르기로 했다.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맞이한 4월 15일 독립기념일, 이를 기점으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발자취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록을 남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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