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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Dec 08. 2024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의 곁에 서다.

12월 07일,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서.

 내가 일하는 외국계 기업의 중국 지사로부터 세 명의 관리자가 방문하기로 되어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나를 포함한 한국 지사의 직원들은 그들과 동행하여 고객사 여러 곳을 방문할 계획인데,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경되고 조율을 하느라 토요일인 오늘도 사무실로 출근해 각 회의 자료를 손보고 출력해야 했다. 서림동 옥탑방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금요일 밤 먹다가 남은 통닭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김건희 특검법이 부결되고 여당 의원들이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토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마실까 싶었지만, 안주 삼을 통닭은 이미 남아있지가 않았다. 양치를 하면서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날이 너무 쌀쌀한데. 망설임과 고민은 통닭과 무 절임 조각이 섞인 치약거품과 함께 세면대에 뱉어버렸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외투를 걸치고, 검은색 모자를 눌러썼다. 무엇을 챙겨야 할까.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되는대로 나는 궐련형 전자담배와 유선 이어폰, 소설 한 권을 외투의 양쪽 주머니에 나누어 넣었다. 웃바람을 맞아 차갑게 굳은 워커에 두 발을 쑤셔 넣느라 고생깨나 했다. 자취방의 건물에는 승강기가 없으므로, 워커 소리가 계단실을 울리지 않게 조심성 좋게 내려와 건물 밖을 나섰다. 어째서인지 머릿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이 로맹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와 포개어졌다가 흩어졌다. 그는 칠 층에 살았고 내 옥탑방은 육 층이니, 내가 녀석보다는 운이 좋다.


 바싹 마른 공기가 차다. 높은 언덕배기, 서림동의 산바람은 유독 쌀쌀하다. 자취방 옆 건물 일층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들어가 마스크를 찾는다. 추위도 막을 겸, 얼굴도 가릴 겸. 그래, 마스크가 필요하다. 검은색이어야만 한다-직감의 속삭임에 따라 마스크를 집어든다. 한 장만 사면 될 일이지만, 일곱 들이 묶음으로만 판매가 된다. 안녕하세요-인사와 함께 계산대에 제품을 올리자 편의점 직원이 말한다. 삼천 원입니다. 원 플러스 원입니다. 하나 더 가져오세요. 얼결에 열네 장의 마스크를 사서 편의점을 나선다.


 신림선 지하철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 걸린다. 이어폰을 꽂고 뉴스를 들으며 걷느라 걸음이 지루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니 내 폐에서 나온 공기가 얼굴을 데워서 춥지 않았다. 서울대벤처타운역에서 샛강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소설책의 모퉁이를 튕기며 생각했다. 혼자서 가는 사람들이 많을까. 나처럼 동료 없이 의사당대로를 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냥 돌아갈까.


 샛강역에서 지하철을 내릴 때, 나는 표지판을 볼 필요도 없었고 스마트폰 지도 앱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따라서 걸었다. 조금씩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뉴스가 주변의 소리에 파묻혀 음량을 올려야 했다. 걷고 걷고 걸으며 나아가는 동안, 몇 차례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낮부터 추위와 싸웠던 집회 참가자들이 턱을 달그락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마주했다. 나와 나란히 걷던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희가 맡을게요. 어디서 구했는지,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흔들며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칠 년 전과 달리 촛불에도 변화와 개성이 스몄구나, 나는 생각했다. 돌아가는 이들은 움츠린 목을 풀고 여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주변의 모두가 약속한 듯 외쳤다.

"탄핵하라! 탄핵하라! 탄핵하라!"


집에서 혼자 나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명, 동료애였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열세 장의 새 마스크를 꺼내 주변의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게 뭐라고, 몇몇은 당분이 많이 포함된 간식을 답례로 주었고, 나는 감사히 받았다.


 국회의사당에 가까워지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록달록한 응원봉이 보였다. 그다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깃발이었다. 내가 군중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던 깃발은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의 것이었다. 목 아래의 살이 보기 좋게 접힌 흰고양이의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그려놓은 깃발이었다. 그곳에는 집회의 무거운 목적을 상쇄하고 유머의 힘으로 행동을 공고히 하는 힘을 지닌 깃발이 셀 수 없이 많았다.


 00시 48분까지 표결을 대기하겠다는 국회발 뉴스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고, 현장의 집회주체는 긴 시간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유쾌하게 준비된 단체 체조를 시범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여당 의원들에게 표결을 요구하며,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를 목이 쉬도록 외쳤다. 전광판에 여당 의원들이 드디어 의원총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는 속보가 큰 글자로 쓰였을 때, 나는 그즈음 이미 쉰 목소리로 외쳤다. 나온다, 국힘당이 나온다, 나온다, 국힘당이 나온다. 왕복 8차선 의사당대로가 그 위를 딛고선 사람들의 안도와 기쁨에 겨운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얼마지 않아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을 향한 무의미한 기다림을 포기하고 표결을 21시 20분으로 단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집회에는 일순간 침묵이 뿌려졌다. 곳곳에서 응원봉과 전기 촛불을 내려놓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직감했다. 그래, 늦었구나. 국힘당이 국회로 날아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구나. 이윽고 국회의장은 투표 불성립을 읊조리며 의사봉을 세 차례 내리쳤다. 탄핵 소추안은 자동 폐기되었다. 탄식이었다.


 주최 측과 우리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어깨가 아프도록 들고 있던 깃발이 내려가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머리높이 아래로 숨었다. 내가 응원봉 대신 손에 말아 들고 있던 소설책, 소년이 온다 역시 주머니로 속으로 들어갔다.


 각자가 집으로 혹은 술집을 향해 돌아가는 길, 사람들은 계속해서 외쳤다. 누군가가 선창을 하면, 주변의 모두가 수 시간 동안 익힌 박자와 음정으로 후창을 했다. 터덜터덜 걷던 중에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지하철을 타면서도 이어졌다. 모두가 서로를 독려했다.


 고생하셨다고, 수고하셨다고. 다시 만나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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