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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Apr 15. 2023

첫경험

에세이


 남들 다 하는 경험을 유독 진하게 겪고 그로 인해 철학까지 했다면 창피한 일일까 아니면 자랑스러운 일일까. 자문의 형식을 취했지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창피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서두다.

 

 첫경험. 이건 절반 정도 성에 국한된 말이다. 하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벌어진 그 일로 평생을 우려먹을 순 없기에 사람들은 섹스 외의 분야로 의미를 넓혀 나간다. 20대 중반까지는 세상이 사실상 첫경험 투성이다. 사는 게 재밌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대충 사회적 책임이 생기는 시기 이후로 찾아오는 첫경험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굳이 찾아오는 성질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건강 관련 항목들. 한 번도 안 아팠던 부위가 아파온다. 신선하지 않고 재미도 없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아프다. 그 아픔을 방지하기 위해 겪는 과정마저도 아플 때가 있다.


 남들보다 늦게 위내시경이라는 첫경험을 했다. 그것이 수면과 비수면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어떤 계획이 있진 않았고 사전 질문지의 체크항목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관계로 데스크의 간호사로부터 “비수면으로 하실거죠?”라는 질문을 받았고 거기에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후에 처치실로 안내됐다.      

 어두운 조명, 가죽이 벗겨진 침대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날 맞이한 두 명의 프로는 날 따뜻하게 다독였다. 전형적인 소위 거사 직전의 공기였다. 불안이 빠른 속도로 가중됐다.

 그들은 날 모로 눕히고 내 입 앞에 부직포 같은 걸 깔았다. 느와르 범죄 영화에서 악당들이 사람을 고문할 때 피가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신문지를 까는 게 떠올랐다.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들은 신속했다. 내 입에도 구멍 난 천을 갖다 붙였고 이 상황을 공포라 이름 붙이기도 전에 은빛 섬광을 발하는 어떤 물체를 내 입에 삽입을 했고 그게 금속인지 뭔지 판단하기도 전에 거침없이 목구멍 너머로 쑤셔넣었다.

문제의 물체는 차갑고 길고 굵었다. 그것이 식도를 지나 위에 닿는 게 느껴졌다. 뱀이 자신보다 큰 동물을 삼킬 때 몸통이 부어오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뱀 입장에서 그건 음식이기라도 하지. 또 어떤 느와르 영화에서 조직이 배신자를 처리할 때 사람 입을 강제로 벌리고 시멘트 반죽을 부어서 바다에 빠뜨려 가라앉히는 제법 끔찍한 장면도 기억났다.      

 호흡곤란과 함께 공포가 극대화됐다. 난 저들이 혹 무슨 질문을 한다면 그게 무엇이라도 무조건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독립투사들이 일제에게 이런 식으로 당했구나. 독립투사 뿐 아니라 그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끔찍한 고문에 의해 자신을 상실했던 이름모를 수많은 희생자들이 주르륵 스쳐갔다.

 목구멍 끝부분에 침이 고였다. 내 몸에서 나온 물질에 심한 이물감을 느꼈다. 누운 상태로 입을 부자연스럽게 벌리고 있자니 계속 고여갔다. 목젖을 과장되게 출렁대며 간신히 두세 번 넘겼다. 그랬더니 제지가 들어왔다. “침 삼키지 마세요” 왜 안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서 그들을 올려다보고 눈으로 말을 걸었다. ‘지금 나 죽일 거 아니죠?’ 그들은 대답을 했다. “길게 심호흡 하세요.” 젠장 심호흡은 명상할 때나 하는 거고. 이건 고문이잖아. 라고 고문하는 자에게 말할 순 없었다. 이론상으로 식도와 기도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식도를 쑤시는 물체와 숨쉬는 것은 별개라야 했다. 하지만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래서 기분 좋은 개처럼 계속 헐떡거렸다. 그 소리는 ‘헥헥’이 아니라 ‘꺽꺽’이었다.     

 

잘 하고 있어요.     


칭찬을 받았다. 적어도 날 죽일 것 같지는 않아 와중에 조금 안심을 했다. 하지만 바로 뒤에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다.      


이제 절반 정도 남았어요.  

   

 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만큼 걸어가야 한단 뜻이구나. 그런 거였구나.

 맘에 안드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땐 누구나 판을 엎어버리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엔 그런 상상이 날 더 끔찍하게 만든다. 지금 “됐어 나 안해!”하며 벌떡 일어난다면, 그 일어나는 동작에서 나를 쑤시고 있던 이 흉기가 내 식도를 찢어버릴 것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참 재밌는 현상인 게, 감정센서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된 눈물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이 뭔가 북받침으로 연결되지 않고 건너뛴 것이다. 아.. 죽겠다. 근데 어라? 이건 뭐야. 눈물이 나네? 이런 식이다. 거참 오늘 별꼴 다 보는군. 근데 내가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다 됐습니다. 이제 식도만 더 볼께요.      


라는 말과 함께 그들은 식도를 쑤셔댔다. 다 됐다며? 라고 당연히 항의할 수 없었다. 참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어서 계속 참았다. 보통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들은 초중반에 걸쳐 고통이 상승하다가 극대화된 뒤 무념무상의 시간이 찾아온다. 적응이 되는 것이다. 그 멍한 힘으로 후반부를 버티다 보면 드디어 종말이 찾아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멍한 구간이 없었다. 계속 고통이었다. 그 길고 끔찍한 기계가 내 입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그들이 “끝났습니다” 할 때 “나도 알아!!”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건 남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킨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내시경이 끝난 내 몰골은 불쌍하게 모로 누운 자세에 눈은 눈물 범벅에 입은 침 범벅이었다, 간신히 두 팔을 짚고 상체만 일으켜 바위 위에 앉은 인어 자세를 취하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의료진은 내 데이터를 입력하며 빨리 안 나가고 뭐하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왔다.      

 난 비틀비틀 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런데 사실 비틀거릴 이유도, 난간을 잡을 이유도 없었다. 목구멍과 가슴이 얼얼한거지 하체가 얼얼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고 그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얼굴이 눈물 범벅인 중년 남자가 난간을 잡고 웃고 있는 광경을 보고 계단을 올라오던 사람들이 멈칫 했다. 난 웃음을 멈추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이후로 한동안 난 내 첫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성의를 다해 묘사했다. 그러나 아무도 성의있게 듣지 않았다. 남들 다 겪는 일을 얘는 왜 이렇게 열심히 겪었나 하는 의문의 눈초리였다. 쓸쓸했다. 어느덧 순간의 진정성 면에서 거의 극한이었던 내 피해자로서의 열정이 우습고 하찮아지는 시기가 와버렸다. 그 무렵 아직 그 경험 전의 누군가가 내게 선배로서의 소회를 물었다. 그는 마취가 싫은지 비용 때문인지 비수면 내시경을 결심한 상태였다. 난 별 거 아니라고 심드렁하게 말해줬다. 허세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시간이 하는 일이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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