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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23. 2023

갈등 해결 만병 통치약 ‘가위 바위 보’

막상 아이들과 4 대 4, 내지는 5 대 5 미니 축구 경기를 하면서 의외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갈등 중재 문제였다. 규칙을 가르치거나 팀을 구성하고 경기를 운영하는 등 사안에 대해선 솔직히 머릿속에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럼에도 역시나 예측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난 일은 난이도가 높았다.      


성장기 아이들은 1살 차이에도 격차가 매우 컸다. 단순히 몸집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벌어진 상황을 인식하는 수준에서부터 달랐다. 그때그때 시간이 남는 아이들이 모이는 동네 축구의 특성상 연령대도 다양하게 모였다. 또래들끼리 놀이터에 모인다고 해서 다 같은 나이가 아니었다. 같은 나이면 그나마 동등한 위치에서 양자 간 갈등을 조율할 수 있어서 수월했다. 문제는 2~3살, 많게는 5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발생한 갈등은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공을 쫓다 보면 몸이 부딪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상대방과 몸싸움이 불가피하다. 프로 축구에서야 몸싸움은 어느 정도 허용된 규칙이고, 도를 넘을 경우엔 통상 심판의 제지가 따르기 때문에 큰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동네 축구는 달랐다. 일단 같은 또래 아이들끼리도 몸을 부딪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신경전이 발생하고, 그 신경전은 경기 내내 이어졌다.  

    

상대의 공을 뺏기 위해선 몸을 밀착한 채 밀어붙이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힘 대결 양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밀기도 하고, 심한 경우엔 서로 팔을 잡아당겨 넘어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어른인 내가 대체로 심판 역할을 맡긴 했지만, 모든 사안을 공정하게 다 판단하긴 역부족이었다.    

  

골키퍼 역할을 하느라 가까이서 내가 보지 못한 파울에 대해선 아이들이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사이에 끼어들면서 어떻게 판단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저 경기 운영을 빨리 하기 위해 어설픈 판정을 내리면 불공정하다며 소리쳤고, 그렇다고 비디오 판독도 없는 마당에 그 파울 하나 판정하겠다고 마냥 경기를 중단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세상사 운이라고 했던가. 가장 편리하면서도 아이들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가위, 바위, 보’를 자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겁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터득한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었다. 실제로 해보면 안다. 가위, 바위, 보 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 판정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최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판단하면 가장 좋다. 그게 안 될 경우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운이 맡기는 가위, 바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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