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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May 02. 2023

미래 예측력, 고수와 하수 한 끗 차이

취재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한지 어언 9년째다. 대단한 특종을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눈이 띄게 뒤처지며 살진 않았지만, 이 직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면  모든 영역에서 고수를 가늠하는 기준은 결국 ‘미래 예측력’에 있다는 점이다.

      

본의 아니게 기자 생활 9년 동안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몸담은 곳은 정치부였다. 통상 일반인들은 정치부 하면 국회를 떠올리곤 하는데, 맞다. 거기서 5년 이상 연속으로 근무를 했다. 사실 정확하게 정치부 산하에는 대통령실, 국회, 외교부, 국방부, 총리실 등등 단순히 국회의원에 대한 취재 외에도 많은 부서들이 있다. 그럼에도 국회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슈 주도권 때문이라고 본다.

    

대통령실이나 정부 부처와 달리 국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 오가는 곳이다. 단순히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대통령실은 많아야 500명 안팎이고 총리실도 그 언저리 정도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닌 정보의 질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게 취재로 이어져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급 정보가 모인 곳에선 좀처럼 말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통상 취재원들이 입을 닫게 된다. 숫자가 적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역추적을 했을 때 발각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같다. 출세를 위해 권좌?에 오른 이들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기자에게 내밀한 정보를 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고급정보와 그 정보를 풀어줄 사람의 수가 많은 곳이 최상이겠지만 그런 출입처는 없다.      


고급정보가 있는 곳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이 적어서 당연히 정보가 새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반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의 정보의 질이 중급 또는 하급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알고, 옆집 아저씨도 알고, 길 가는 사람도 아는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이도저도 아니지만 저 2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만 해당되더라도 취재 기자에겐 감지덕지인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국회는 어떤 곳인가. 개인적인 경험으론 국회는 고급, 중급, 하급 정보가 중구난방으로 섞인 곳,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었다.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기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특종이 터질 수도, 물만 먹고 돌아다닐 수도 있는 곳이란 의미다. 단순 계산으로 국회의원 300명과 각각의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진들 10여 명. 이 숫자만 해도 3000명이다. 하루에 3000명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국정 이슈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곳에서 기사가 나오지 않을 리가 있나.      


그래서 정치부, 국회 정당팀에서 쓰는 기사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웠던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하급 정보를 바탕으로 아무 기사를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곳이지만, 각 잡고 특종을 터뜨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상상 이상의 발품과 정성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당연히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특종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런 기사의 경중과 패턴을 떠나 개인적으로 나는 고수의 자질 중 ‘미래 예측력’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왜? 거칠게 말하면 사후 해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주식이든 스포츠든 정치든 결국 모든 게 발생한 후의 해설은 해설일 뿐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해설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이미 저질러진 사실을 놓고 ‘이건 이래서 이렇다, 저래서 저렇다’라고 품평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정확한 진단에는 고도의 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해설’은 결코 ‘미래 전망’을 넘어설 수 없다.      


내일 나스닥 지수는 그래서 오를까 내릴까. 6개월, 1년 후의 삼성전자 주가는 8만 전자, 9 만전자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없을까. 내년 총선에서 여야 중 어느 당이 다수당을 차지할까. 과반 정당은 탄생할 수 있을까.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물론 어렵다. ‘지금 어떻게 내가 그걸 알겠냐’는 반문이 바로 튀어나온다. 맞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예상했다가 틀리면 명성에 엄청난 흠집이 나기 때문에, 영화 ‘타짜’로 비유하면 오함마에 손모가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스포츠든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월드컵 16강이 펼쳐지기도 전에 우승국을 예측하는 것. 공천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당선자를 미리 예상하는 것. 주식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오늘 삼성전자의 종가를 전망하는 것.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또 그걸 알고 싶고 미리 엿보고 싶은 게 또 인간 심리다.      


당연히 지속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매번 족족 맞춘다는 게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영역에 도전하고, 자신의 통찰을 바탕으로 손모가지를 거는 용기 있는 자만이 왕좌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때론 소 뒷발걸음으로 몇몇 미래를 맞춘 사례도 있지만, 반복되는 게임 속에서 ‘운빨과 실력’ 그 정도 구분 못할 정도로 업계 사람들이 미련하진 않다. 고수의 자리에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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