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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18. 2023

아이는 세상을 모른다. 그러나 어른도 모른다.


아이는 인생을 살아본 경험이 극히 짧아서 통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취급하곤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경험의 연속이고, 이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많을수록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만 세상을 모를까. 많은 세월을 살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나 자신을 포함해 어른들도 세상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을 살펴보면 체력적인 한계로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면서 스스로 위안하는 부모들이 상당히 많다. 나 자신도 그런 부모 중 한 명이었다. ‘어차피 핸드폰이든 유튜브든 IT 시대에는 접할 수밖에 없는데 잠깐 보여주는 것도 크게 나쁠 건 없지 않나’라는 마음으로 허용하는 게 대다수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럼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성장기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보여주는 게 ‘창문을 모두 닫은 작은 방에서 담배 5개비를 피우는 어른 옆에 있는 어린 아이의 상황’과 흡사하다면 어떨까. 아마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 아이를 방치하는 데 동의하는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담배 연기로 인해 아이의 폐를 비롯한 신체가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란 예상은 전문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튜브는 허용하는 걸까. 담배 연기와 유튜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어른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유튜브 등 영상 매체가 성장기 어린아이들의 뇌에 얼마나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쉽게 그런 행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무지의 영역은 이렇게 무섭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직관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낭떠러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큰 개 등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요소들은 쉽게 피할 수 있지만 학습이 필요한 장애물들은 생각보다 걸러내기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나 방사능 오염, 식중독 위험 식품 등은 상당 부분 지식이 있어야만 위험도를 인지할 수 있다. 특히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전자 기기나 영상 매체가 우리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순효과와 역효과를 구분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불’과 같다랄까. 합리적인 방법으로 지혜롭게 활용하면 음식을 만들고 난방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거주지를 통째로 태우고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게 바로 불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 역시 일방적으로 악영향만 있는 요소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는 이들은 애당초 지혜롭게 이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 자체를 배워본 적이 없다. 물론 가르치는 곳도 없다. 음모론적 시각일지 몰라도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이 굳이 아이들의 뇌 발달에 유튜브가 미치는 영향과 적정한 사용법을 가르칠 요인이 있을까. 플랫폼 기업들 입장에선 당연히 수익을 거두는 게 가장 우선순위다. 이유를 불문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유튜브를 시청할수록 수익이 커지는데 굳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용자들에게 자제하는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없는 셈이다. 무지의 영역은 아무도 채워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은 고도로 발달하고 일반 어른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이상 유튜브 중독 현상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는 세상을 모른다고 하지만 어른들 역시 세상을 잘 모르고 있던 셈이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단순히 지식이 더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과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에 대한 자아 성찰이 우선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끊었지만 한때는 담배를 많이 피웠던 나도 돌이켜보면 ‘무지’에서 비롯된 선택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과 위험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면 아마 더 빨리 금연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영상 매체에 노출될 경우 뇌 발달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다들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악영향의 실질적인 정도에 대해선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또한 별도 서적과 공부를 통해 그동안 아이에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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