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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21. 2023

몸싸움 격돌 축구, '규칙'의 학습장

아무리 동네 축구라고 해도 기본적인 룰은 있다. 정식 그라운드가 아니라서 그리 넓진 않았지만 페널티 킥은 물론 스로인, 프리킥 등 웬만한 규칙은 원칙대로 적용해서 경기를 진행했다. 공간이 좁고 참여하는 인원이 팀당 4~5명에 불과해 오프사이드 같은 복잡한 규칙만 배제했다. 사실 동네 놀이터에서 애들과 공놀이 수준으로 시작한 간이 축구 경기라서 대강 하면 될 줄 알았다. 실상 경기를 운영해 본 결과는 내 예상과 판이하게 달랐다.  

    

가장 놀랐던 점은 6~7세 또는 초등학교 1~2학년이라도 해도 기본적으로 ‘공정’ 가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단 점이었다. 축구 경기의 규칙을 모르고 시작한 경우라면 몰라도, 이를 터득한 이후엔 규칙의 일관된 적용에 대해 상당히 깐깐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단순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편이 이겨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공정한 룰에 대한 적용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핸들링 반칙의 경우, 무조건 팔에 닿으면 파울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지만 실제 축구에선 해당 선수의 의도까지 고려해 판정을 내린다. 다시 말해서 팔로 공을 막은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팔에 맞은 경우엔 다른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 규칙을 잘 모르는 상태에선 좁은 공간에서 수 많은 핸들링 파울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경기 운영이 안될 정도로 서로 조금만 팔에 스쳐도 아이들끼리 서로 상대편을 향해 “핸들링!”이라고 외치는 통에 이건 축구를 하는 건지 농성을 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는 경기를 보고 극약 처방을 꺼내들었다.  

    

“팔에 공이 맞았다고 해서 무조건 핸들링 파울이 아니다. 해당 선수의 의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제대로 된 룰을 가르쳐주면 이런 혼란도 단번에 해결될 줄 알았다. 솔직히 경기 운영의 편의성을 위해 알려준 것일 뿐, 축구 룰 교육에 대한 신념이나 의지가 있어서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제대로 된 핸드링 파울 규칙을 인식한 이후, 아이들은 말을 들을 것 같으면서도 듣지 않았다. 이 규칙의 가장 큰 맹점인 ‘해당 선수의 고의성’에 대해 아이들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걸 말로 조리 있게 표현하는 데 서투를 뿐, 사실상 정확한 지적들이 이어졌다.

      

“방금 핸들링 파울을 한 친구가 고의성이 있는지 없는지 아저씨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을 땐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심판도 아니고, 심판이라고 할지언정, 공인?된 심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굳이 날 신뢰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경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진행됐고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전파하면서 즐겁게 축구를 했다.


아이들조차 공정이라는 가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은 분쟁이 발생해도,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성의껏 설명을 해주면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정 가치에 부합하는지 예민하게 문제 제기를 하되, 사안이 납득이 되면 이를 빠르게 인정하고 집단의 가치(축구 경기 운영)를 위해 한발 양보하는 모습.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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