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띠다.
한동안 공황이 심해서 비행기는 물론이거니와 차운전도 할 수 없어 한겨울에도 솜장갑을 손잡이에 끼고 아이를 뒤에 태워 쉴 새 없이 아이 발달치료센터를 매일 같이 오고 갔었다. 아이는 완전무장으로 얼굴만 빼꼼히 찬바람을 맞아서일까? 두 번 크게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는 고비를 지나 이제 엄마의 자전거 실력을 믿어서일까? 그 차가운 바람에도 꿀잠을 자느라 센터에 도착해서도 자전거 뒷좌석에 널브러져 자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우리가 짠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너무 단잠에 빠진 모습에 치료시작 시간이 지나도 잠에서 깰 때까지 쉽사리 깨우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던 때가 기억난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이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었는데.. 어느새 난 이 아이와 각자의 짐을 짊어진 채..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기 시작, 24년 방콕-사이판-코타키나발루-제주-냐짱-후쿠오카-다낭-보라카이에서 계획했던 마지막 여행에 도달했다.
24년 한 해의 큰 테마는 여행인 것 같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자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로부터 한걸음 멀어져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의 알록달록한 천연색깔의 다양성을 느끼는 동시에 아이에겐 여행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게끔 가르쳐주고 싶었다.
어릴 때 흡연석과 비흡연석이 나뉘어진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갔었고, 국내 여행도 자주 다녔었는데 그건 나의 부모가 여행하는 인간이었고 어릴 적 다양한 세상을 맛보고 자란 것이 나에게는 큰 선물이었다는 걸 크고 나서 알아차렸다. 그걸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범우주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그냥 가져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 안에서 자유롭고 생소한 문화들을 겪으면서 이렇게 삶을 살아갈 수도 있구나, 세상엔 이렇다 할 정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알았다.
아이와 올해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를 타 본 덕분에 나와 아이는 알게 모르게 한 뼘 그 이상으로 마음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본다. 이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몸소 느끼며 알아가는 과정이었으며 어떠한 공부보다 뜻깊은 가르침이었다. 나와 아이와의 적절한 거리 유지, 둘이서 하루하루 꽁냥꽁냥 티격태격 좌충우돌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 조율하고 협력하고 화합하는 과정 등이 여행 안에는 고스란히 크게 묻혀가면서 시작과 끝을 갈무리하는 경험은 돌아보면 참으로 경이로울 수가 없다.
불안도가 높아 익숙하게 매번 가던 나라, 가던 도시만 갔었다. 새로운 나라와 도시의 여행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하던 까닭에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작게 꼬물거리던 손가락, 발가락을 가진 생명체가 어느덧 자라 알게 모르게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냥저냥마냥 젊을 때 혼자 다녔던 여행과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이건 마치 미혼과 비혼의 대화의 차이처럼,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처럼 혼자 여행하는 거와 친구나 연인과 여행하는 거와는 사뭇 다르다. 마냥 보호자일수도 없고, 마냥 친구 같을 수도 없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시소처럼 우린 그렇게 쉼 없이 균형을 맞춰가며 여행을 한다.
아이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려 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보다 내가 더 많고 다양한 깨달음과 알아차림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설레이고 있다.
마지막 10박 11일의 여행인 만큼 시작하기도 전에 결의가 전들 여행과는 다르다. 유종의 미를 잘 거둬 건강하고 안전하게 다녀오자며 공항버스를 타러 걸어가면서 살며시 아이에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