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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i Apr 19. 2024

세신

[세신 : 몸에 붙어 있는 때를 밂]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는 게 그렇게 무섭고 싫었다. 반강제적으로 목욕탕 배드에 눕혀놓고 엄청 아프고 잔인하게 내 몸을 뻑뻑 미는 엄마가 미웠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어느 정도 커서는 엄마가 함께 목욕탕을 가자고 하면 난 어떡해서든 핑계를 찾기 바빴다. “약속이 있어”, “생리 중이야” 등등 함께 목욕탕을 가도 이제는 그때처럼 반강제적으로 때를 밀릴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싫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난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때를 밀지 않았다. 때를 안 밀고 살 순 없는지 초록창에 검색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세신의 문화가 없는 나라도 있기에 세신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걸 알고 나서는 안도의 마음을 안고 세신을 안 하며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때를 미는 행위를 오늘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다. 다른 의미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묵은 때를 좀 털어내어 홀가분해지고 싶은 마음을 세신에 투영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몸에 때도 밀고, 마음에 묵은 때도 밀고 말이다.


어렵사리 용기 내서 속옷만 입고 있는 세신사(이건 국룰인 듯, 세신사들만 속옷을 입고 있다) 에게 세신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세신비와 락커키를 함께 빨래집게로 고정되게 걸어두면 순차적으로 차례가 올 거라고 알려주셨다.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마치 고기를 대하는 정육점 직원처럼 타인의 몸덩이를 굴려가며 세신을 해주는 모습이 내 차례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민망하고 긴장이 되었다. 1시간 반 웨이팅 끝에 차례가 돌아왔고 난 미끌거리는 배드에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데 참.. 이건 마사지샵과는 다른 차원의 날 것이었다. 날 것 그 자체의 벌거벗은 내 몸과 반말을 툭툭 던지며 노련한 센 언니 포스를 지닌 세신사와의 만남은 뭐랄까? 신선했다.


무방비 상태로 세신사의 손짓과 구령에 맞춰 몸을 고기 굽듯 돌려주어야 하는데 난 처음이라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바리 한 박자 느린 컴퓨터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갑자기 생뚱맞게 ‘난 지금 사포에 갈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라는 느낌을 생각했더니 갑자기 너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아니다, 이건 단순히 때밀이 타월일 뿐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니 신기하게 다시 참을 만 해지는 것이다. (근데 정말 사포로 갈리는 느낌이었다고!) 마침내 세신이 끝나고 미끌거리는 매트에서 조심히 내려와 감사하다고 수줍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마무리 샤워 후,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처음으로 한 자발적인 세신이었고.

나의 몸과 마음의 묵은 때들이 벗겨져 나간 하루였다.


세신 받고 나서 목욕탕을 나와 바깥공기를 쐼과 동시에

느낀 시원한 맛은.. 이래서 사람들이 때를 미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개운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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