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실버버그, <사랑에 빠진 이슈마엘>
미국 SF 문학의 황금기를 선도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스물 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휴고상의 신인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이후로 수많은 SF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 중 하나인 <사랑에 빠진 이슈마엘>은 인간을 사랑한 돌고래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음, 충격적이게도 여기에 등장하는 돌고래인 이슈마엘은 조련사인 리자베스와 사랑을....나눈다.
동족들 사이에서 저는 성적 매력이 출중하고 정서적 능력도 뛰어나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정신 나갈 만큼 이색적인 단편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돌고래 성적 매력의 기준에 대한 의문이다.
우선, 성적 매력(Sexual attraction)이란 개인적인 성적 욕구의 근거, 또는 성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적인 자질을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개인의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개인의 외양이나 몸짓, 목소리, 냄새, 그 외의 요인이 성적 매력이 될 수 있다. 장신구, 의상, 향수, 머리 모양은 취향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돌고래도 외양이나 몸짓, 목소리..?, 냄새 등의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따져서 성적 매력의 척도를 정하지 않을까.
<동심파괴> 돌고래는 여러 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순한 이미지와 달리, 수컷 여러 명이 암컷 하나를 둘러싸서 강간하는 경우가 꽤 있으며, 동성애의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이슈마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돌고래 이슈마엘은 어떻게 하다가, 왜, 인간인 리자베스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생물이 사랑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번식의 본능 때문이긴 한데, 여기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아마 '인정'이라는 것이 사랑의 시발점이 되었을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이슈마엘>의 화자인 이슈마엘은 상당히 똑똑하고 사람이나 다른 동물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까지 겸비하고 있는 걸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수족관에서 그는 그저 일하는 동물/ 노동자 로 여겨졌다. 그는 체념적 태도로 버텼으나, 아마 마음 언저리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자베스는 전임자와는 달리, 오자마자 이슈마엘을 고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었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처음으로 '돌고래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는 해소감과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리자베스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리자베스에게 자신이 비범한 돌고래임을 어필하는 게 근거이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가끔씩은 상대적으로 고등한 종족이 열등한 종족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말에 주목해보면, 돌고래 이슈마엘은 인간을 자신들의 종인 돌고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은 자신의 종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개인적인 나의 답은 그렇다, 이다.
우리 인간만 보더라도 자신이 가장 우등한 종인 줄 알고 산림을 파괴하고 토양,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도 오염시키고 있지 않는가. 그뿐이랴? 주거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동물들의 서식지를 빼앗고, 재미를 위해서 동물들을 사살하고, 지구온난화같은 범세계적인 문제까지 야기시켰다.
또한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과감히 내치는 모습이나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부도덕적 행동에 대해서는 환멸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만이 ~를 할 수 있다’라는 관용구나 ‘인간적’이라는 말, ‘금수만도 못한 자식’ 같은 인간최고주의가 묻어나는 어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공공연하게 사용한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 모든 동물은 자신의 종이 가장 고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자신의 종이 하등하다고 여기는 생물이 있을까.. 지능이 낮아 그를 판단할 수 없는 경지라면.. 아니 그 경지에도 자신에 대한, 자신의 종에 대한 자부심은 있을 것 같다.
*이슈마엘은 리자베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결국 차이고 만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