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1년 뒤의 하루가 더 큰가?

아씨 잘못 살았다

by 새로



늘 그렇듯. 너무나 익숙한 아침. 같은 시간, 같은 모습으로 시작되는 아침입니다. 출근시간보단 한 시간 먼저 사무실에 앉아 회사 전산에 로그인을 합니다. 새로 배당된 리스트를 확인하는데, 눈에 띄는 사고 건이 있어요. 사망 사고입니다.


차량 직진 중 횡단보도 건너던 보행자 접촉.


현장 사망건. 강서경찰서 xxx 02-2600-000


OO대학병원 응급실 후송


중상사고의 처리를 전담하던 저에게 사망 사고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합의금을 지급하고 사건 종결을 해야 하는 보통의 사고와 다를 바 없는 한 건의 교통사고일 뿐이에요. 저는 교통사고 보상부에서 근무하는 손해사정사였습니다.


평소와 같이 업무를 시작합니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가해자의 목소리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극에 달한 상태예요. 당연합니다. 사망사고인데요. 이번에는 피해자 차례예요. 우선 피해자 측 연락이 닿은 유족에게 담당자 안내 문자를 보냅니다. 경찰서에도 가봐야겠어요. 초동조사가 잘못되었다간 팀원을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팀장에게 또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합니다. 바쁜 날이에요.


며칠 후 유족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사망보험금 지급을 위한 필요 서류를 안내하고, 경찰 조사 등 향후 예상되는 절차를 알려드렸어요. 사연이 없는 교통사고란 것이 없겠지만, 이번 사고는 좀 특히 먹먹합니다.


사망한 피해자는 40세 가장입니다. 30명 정도가 근무하는 공장에 다니며 일상적인 야근을 반복하던, 보통의 평범한 가장이에요. 사고가 있었던 그날은 참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하던 길이었습니다. 반장으로 선출된 4학년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고 고마워서, 그날만큼은 조촐한 외식이라도 하자고 기분 좋은 약속을 하셨대요. 약속 장소는 돼지갈빗집이었습니다.


“아니 그 사람. 평소에도 그렇게 무뚝뚝하더니. 갈 때도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리네요.

인사할 시간이라도 줘야지 “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커피 두 잔과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앞에 두고 마주한 채 사고 접수지를 꺼내는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아빠의 부재를 현실로 일깨워주던 제 목소리를 기억할까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까요?

제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옆에 자리한 저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 그리고 이번에 반장이 된 그 아이겠지요. 분명 슬픔을 알 나이인데. 아픔을 알고 있을 나이일 텐데..

아직 표정에 그렇게 큰 슬픔은 보이지는 않습니다. 영화로 쓰기에도 너무 신파적인 소재 아닌가?


감히 그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습니다. 동정의 감정은 좋은 배려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럴 겨를조차 없습니다. 동정의 마음에 앞선 슬픔에 주눅 들 수밖에요. 갈빗집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니요.


업무로 만났던 수많은 사고 건들이 기억으로 자리하며 어깨를 짓누릅니다. 현실이라는 괴조(怪鳥)가 날아와 저를 마구 쪼아대기 시작해요. 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단지 참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현실을 저는 합의금으로 산출해야만 합니다. 제 선택은 아닐지라도, 현실에선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았던 것일까요. 회사를 위해 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요.

오늘을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오늘 교통사고로 사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서는 이가 있을까?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현실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교통사고를 포함한 많은 위험들이 우리 주변을 도사리고 있어요. 수년간 처리했던 사망 사고들 모두 일상 속에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영화 대사 같은 특별한 일상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죽음을 그려봅니다. 삶이 유한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유한의 끝 지점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더 이상 회사에 충성하며 살 수만은 없어요. 저는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보험회사 월급쟁이로 살고 있지만, 생각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는 대단히 유의미합니다. 이제 ’오늘‘ 을 살아요.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집 안에 있는 집기를 던지지 않습니다. 커피 향을 알아 갑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 대화소리에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 생겨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도망가지 않아요.


반면 취미가 제법 많아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즐길 거리가 꽤 많더군요. 하루 두 갑의 담배와 매일 마시는 술은 제 삶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본인이 삶에 지친 지도 모른 채, 회사와 업무로부터 오늘을 소모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들이 '오늘'을 자각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더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회사일로부터,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소모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인치고는 높은 급여와 빠른 진급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랜 시간을 버텼습니다. 인정을 받기 위해 치른 희생의 대가로 회사로부터 칭찬'을 받았을지는 모르겠어요. 이제야 보이는 지난날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의 현실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잠시 뜨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용인과 피사용인들의 이익은 정확히 대치되고 있지만요.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살 겁니다. 1년 뒤의 하루가 결코 오늘의 하루보다 크지 않습니다.


삶이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정답이 아닌 자신의 정답을.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