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차례야
'근로자'라는 단어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직원은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부지런한 근(勤)과 일할 로(勞)로 구성된 단어예요. 그래서 저 같은 월급쟁이에게는 부지런히 일을 하겠다는 의미의 단어인 '근로자' 보다는 일할 노(勞), 움직일 동(動)으로 구성된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합합니다.
보통은 즐겁게 놀고 부지런하게 일합니다. 지난 20년.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았던 제 삶도 마찬가지였어요.
회사를 위해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지런히 놀고 즐겁게 일합니다. 오늘을 살아야 하거든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없는 곳이 무릇 여기뿐이겠어요?
보상팀 손해사정사로 마주한 교통사고 처리 현실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보상 현실을 백분의 일이라도 알았다면.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알았다면 절대 손해사정사 자격증은 취득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은 그룹을 지어 생활합니다. 그룹에는 교육 수준, 문화, 나잇값, 거주 환경 등이 많은 평균값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고는 다릅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해요. 평균값이란 것이 없습니다. 실제 만났던 피해자 중에는 '자연인'도 있었으니까요. (자연인도 소금은 필요하다.)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건달 간부, 자영업자, 연예인, 종교인, 사기꾼, 노숙자, 교사, 공무원, 작가 등 피해자들의 직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을 망라합니다. 그 평균값이 존재하지 않는 범위 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의 사회 통념상 상식은 하나둘씩 무너졌습니다. 자기 합리화로 무장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반복되면서 지쳐가는 것이에요.
교통사고를 당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로또에 당첨이라도 된 듯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저와의 대화 시간은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중요한 협상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더 받아야 했고, 회사를 대표해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저는 약관의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당연한 다툼이죠. 그런데 저를 더 힘들게 것은 회사의 동료들입니다.
부서를 옮겼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만나도 되지 않고, 유족들을 만나지 않아도 돼요. 돈을 매개체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이제는 좀 살 거 같았습니다. 오래가진 못했어요. 스트레스는 줄지 않아요.
원인이 있었습니다. 비합리와 비효율, 비상식이 주류가 되어 있는 조직문화 탓이에요. 부서를 옮겨봐야 결국 같은 회사 사람들입니다. 공장에 다니는 친구는 공장장을 욕하고. 법인 영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 친구는 부서의 파트장을 욕합니다. 간호사로 일하는 후배는 이상한(?) 의사 때문에 결국 병원을 옮겨요. 배구 프로선수인 후배 녀석은 팀 코치와의 갈등으로 배구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공포의 나르시시스트들이 바로 그들이에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합니다. 업종, 구성원의 지적 수준, 업무환경과는 무관해요. 그들은 사회 곳곳, 도처에 깔려있습니다. 오늘이 힘든 건 결국 사람 때문입니다.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어요. 회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해요. 내 삶을 완성해야 합니다. 월급루팡을 하자는 건 아니에요.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이 필요합니다. 조직 내의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꿔야 해요. 그들에게 소모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받는 인정이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에요. 저는 놀기 위해 출근을 합니다. 놀자니 돈이 필요해서요. 반면 회사의 존재 이유는 기업의 이윤 추구입니다. 그들의 목적이 공익 추구, 이익의 재분배 일리 없지요. 회사와 직원의 목적이 상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충된 목적으로 만난 관계에서 워라밸을 만들 수 있겠어요. “내 삶의 목표는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다. 또는 “고위 임원이 되는 것이다.”라는 워크와 라이프의 일치가 없는 이상 워라밸은 불가능합니다.
이직 시기를 놓친 사람. 퇴직을 결정하기에 부족한 용기와 현실 여건. 현실과 타협으로 최소한 현재의 급여는 유지해야 하는 사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보통의 우리들.
가장 보통의 하루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도 오늘을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소모당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많은 방법들이 있어요. 독서, 여행, 서예, 등산, 산악 조깅, 야구, 농구, 축구, PS5 게임, 프라모델 수집, 캠핑, 자전거 국토종주, 수영, 기타 연주, 드럼연주 등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꼭 전문가처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지요. 이제 나의 하루에서 일을 조금 덜어내야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즐거울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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