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야

평범한 기적

by 새로

진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도, 불안도 모두 차단해야 한다. 대단한 일을 하고 값비싼 물건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짧은 행복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그리고 길게 느끼는 그런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지선 작 <꽤 괜찮은 해피엔딩> 중에서-

출처 : tvN유 퀴즈 온 더 블록

이지선 교수님처럼 강한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선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참 대단하고 훌륭하신 분이에요. 손해사정사로 근무를 하면서 다수의 안타까운 사고들을 담당했습니다. 많은 사연들 속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보통 다 비슷해요. 일상으로의 초대. 모두가 하나같이 바라고 그리워했던 것은 바로 평범했던 일상으로의 복귀였습니다. 큰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반복적이고 평범했던, 재미도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 일상으로 돌아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다.


40대 초반이었던 김 OO 씨는 회식 후 귀갓길에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왕복 4차선 이상의 도로였고, 야간이었으며, 길을 건너지 말아야 할 적색신호 횡단보도였어요. 과실을 적용할 때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적용된 사고였습니다. 보행자의 과실은 60~70% 수준입니다. (빨간 불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람에게는 신호위반이 적용되지 않아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팔다리의 골절은 고정술 등의 수술치료로 정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신경 손상은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치료 방법 또한 골절의 정복과 유합과정보다는 신경손상 및 회복의 예후에 집중해야 합니다.


김 OO 씨는 우측 하지 신경이 손상되면서 안타깝게도 정상적인 보행은 어려웠어요. 다리를 조금 절뚝이고 걸어야 합니다. 평생을 말이죠. 사고 당시 그 순간의 찰나, 장소, 후회 가득한 그 기억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통사고는 한순간에 모든 일상을 집어삼킵니다. 반복적이고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우리가 맞이하는 대부분의 기적은 일상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참 덥고 습도가 심했던 여름날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어떻게 알고 김 OO 씨의 배우자분께서 '가지급보험금'을 문의합니다. 가지급보험금은 최종적으로 합의금을 지급받기 전에 일부를 먼저 수령하는 가불금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김 OO 씨의 높은 과실 때문에 가불금 산정이 어려워요. 다친 사람은 김 OO 씨지만 , 오히려 과실이 많은 그 법률적으로 그는 피해자는 아닙니다. 법률적으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병원 치료비를 제외하고 받을 수 있는 합의금은 없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보험회사는 이미 김 OO 씨에게 1억 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급하고 있었어요. 약관 및 손해배상 기준으로 그에게 지급할 합의금은 0 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에요. 배우자를 만나 처음부터 자세히,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럴 때면 피해자는 늘 거의 같은 반응입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과실은 인정 못한다.'


현실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해하고, 이해당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게 되면 더 이상 이 힘든 싸움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 테니까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환경이 무너지고 삶이라는 게 팍팍해지면 판단력도 흐려지게 마련입니다. 어느 날 하루는 급히 전화를 걸어와 100만 원을 송금해 달라고 합니다. 병원에서 급하게 수술 결정이 났다고 하면서요. 비뇨기과 수술이었습니다. 갑자기 비뇨기과라니요. 답답했습니다.


전화로는 서로 감정만 상합니다. 우선 만나기로 하고, 자초지종을 들어봤어요. 새로운 수술 치료법이 생겼는데, 성기에 작은 기계를 삽입하여 발기 불능을 극복해 준다는 것입니다. 리모컨을 조작해서 버튼을 누르면, 발기한다. 뭐 그런 치료법이에요. 처음 들어보는 치료법이었는데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치료를 제안한 곳이 대학병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우선 원무과로 사실관계 확인을 합니다. 사실이었어요. 성공률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국내 첫 시술이기 때문에 성공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죠. 본래의 신성한 목적과는 별개로 이윤추구를 주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있기도 합니다. 이해는 합니다.


평상시라면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호갱 영업이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는 피해자에게는 생각과 판단이 다소 제한적일 수 있어요.(교통사고와 발기부전은 논외로 하고)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으면 심사평가원에서 급여 치료비로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다. 다리를 다친 교통사고 환자의 발기부전 수술 치료비를 건강보험공단이나 보험회사에서 부담할 수는 없겠지요. 결국 4개월 동안의 희망고문은 수술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의외의 이유였어요. 독일에서 수술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 OO 씨는 이제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사고 초기에 비하자면 큰 호전을 이루어냈어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는 집도, 차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평범했던 일상들은 이제 모습을 감춰버렸어요.


김 OO 씨는 대화 중에 쉽게 화를 냅니다. 그의 분노조절장애를 이해해요. 술이 없이는 이제 잠을 잘 수 없다며 괴로워하던 배우자분의 알코올의존증 역시 이해가 됩니다. 마음에 남는 아픔은 신체에 남는 후유증보다 더 깊은 상흔을 만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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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일상의 단조로움, 그리고 이 반복적인 패턴은 마치 공기처럼 모양도, 향도, 색도 없이 늘 우리 주변에 자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잘 자각하지 못해요. 그 존재가 떠나 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일상이라는 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과연 어떻게 장담할 수 있죠? 생일,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여러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만을 기대해야 할까요?


1년에 단 며칠만 행복할 작정이에요??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