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거리두기

유혹에 속고 나니 불혹이다

by 새로

시회에 조금씩 임금피크 얘기가 나오고, 정년 제도가 바뀌려고 하던 즈음입니다. 2010년이 지나서야 회사에 첫 정년 퇴직자가 나왔어요. 첫 퇴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탓에 몇 기념행사가 치러졌습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조합은 조합대로의 해석으로 각자의 의미를 찾는 동상이몽의 자리였어요. 부서의 막내였던 저는 선배님의 지인과 몇 임원 등이 참석한 자리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축하인사와 덕담이 오가고, 이제 하이라이트. 당사자가 무대의 중앙에 섰어요. 만감이 교차한 듯한 선배님은 감사와 그동안의 소회를 담은 퇴직사를 담담하게 읊퍼내셨습니다.


"회사 덕분에 아이들 잘 키웠고, 잘 큰 두 녀석들 다 결혼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회사에 참 고맙습니다."


거의 30년을 다니신 회사를 퇴직한다니, 얼마나 많은 감정이 교차할까요? 그의 젊음을 모두 소진한 것인데요. 그래서였을까요? 선배님의 소감 말씀은 어쩐지 안타깝게 들렸습니다.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5분 여의 말씀을 이어가면서 본인의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생략된 발표회였어요.



스물여섯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이제 40대가 되었습니다. 불혹(不惑)이지요. 저 역시 20대의 절반과 30대 전부를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니… 이런. 너무 안타깝습니다. 너무 회사를 위해 살았어요. 유혹에 속아 회사에 충성하는 사이 불혹의 나이가 됐습니다.


회사는 직원에게 꾸준하고 당연한 로열티를 요구합니다. 회사는 생각보다도 욕심과 질투가 많아요. 직원의 우선순위가 늘 회사이길 원합니다. 연소할 기름이 부족해 자동차가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이라는 기름으로 주유통을 채워요. 직원의 시선은 늘 회사를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 인정욕을 자극하는 부서장과 회사의 교묘하고 절륜한 칭찬들은 많은 직원들의 자발적 소모를 이끌어 냅니다. 수많은 김대리와 김 과장 김 부장들이 자신을 고급 휘발유라고 생각하면 살겠지만, 회사에서 볼 때는 고급 휘발유도, 경우도 모두 기름일 뿐입니다. 소모품이지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인 회사는 본래의 고유 목적에 부합하는 과정관리를 하는 것이에요.


반면 제 삶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많은 것을 모두 열거하더라도 그중에 '회사의 순이익'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즐겁게 놀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또 그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닐 뿐이지요. 이 차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회사와 직원은 원래부터가 서로의 목적이 달라요.




바쁘고 치열한 업무 속에서도 그 선배님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혼자만의 일기를 적었어요. 쓰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나 자신을 돌아보려고 했습니다. 많은 취미와 여행을 즐겼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나의 30대를 지배한 건 회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회사가 제 하루의 능동적 주체였던 것이죠. 그간의 노력이 무색합니다. 결국 회사에 의해 이리저리로 끌려다녔어요. 회사를 위해 너무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루, 한 주, 한 달이라는 작은 단위로는 제 삶의 형태를 주관적으로 살필 수 없습니다. 잠깐이라도 방심을 하는 사이 우리의 하루는 온통 업무로 가득 차버려요. 회사로부터 받는 칭찬. 그리고 동료로부터 얻게 되는 인정. 이것은 마약입니다. 객관화로 포장되어 있는 삶에서 주관적인 의지를 유지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인정욕이라는 녀석은 회사의 칭찬과 인정에 너무 쉽게 자극받아요. 이 자극들로부터 조금 단순해져야 합니다. 저 또한 칭찬과 인정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회사에 더욱 충성했어요. 회사에 충실한 김 부장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습니다.


샘이 많은 그들은 회사 밖에 존재하는 유의미함을 후배들과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오늘'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을 텐데, 늘 조직과 업무만을 강조해요. 그것은 직원이 회사 밖의 가치를 인식하면 안 된다는 그들의 의도적인 함구일 수도 있고, 실제로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무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회사에서 이뤄낸 성과는 대단한 것이에요. 남다른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다만 그들이 이뤄낸 것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 마지않는 최선의 가치라고 하는 그들의 착각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고, 회사의 업무와 함께 했던 저의 30대는 사라졌습니다.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면서 시야도, 생각의 크기도 늘었겠지요. 그런데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회사 생활에서 꼭 높은 고과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빠른 진급과 승진을 이루어냈다고 해서 제가 남들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최근 부서를 이동하면서 퇴직한 선배, 퇴직을 앞둔 선배들과 대화할 시간이 제법 많았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더 열심히 일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어요.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은 거대합니다. 개인의 삶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치와 기준이 존재해요. 그래서 더욱 우리는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르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밟아 나가고 있는 지금의 길에 잠깐씩 멈춰 설 필요가 있습니다. 목표와 과정을 혼동하여 뒤죽박죽이 된 채로 걷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급한 생각에 너무나 급하게 뛰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삶의 평가를 내가 아닌 다름 사람에게 맡기고 있는 건 아닌지. 어차피 답은 없습니다. 조금 잘못 왔다면 다시 방향을 잡으면 돼요. 회사를 통해 얻고 있는 급여와 복지, 그리고 사회적 위치는 분명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업무를 통한 성취감 또한 매우 유의미하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너무 우리 삶을 휘두르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냉정한 시간은 무정하게 지나갈 뿐, 돌아오지 않아요.


회사와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보통의 인간관계처럼 회사와도 적당한 거리를 둬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을 스스로에게 돌려줘야 해요. 무심한 시간에게 마음을 씁니다. 혹시 알아요? 그렇게라도 하면 무심하고 무정한 시간이라는 녀석이 제게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유혹에 속고 나니 불혹의 나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의 몇 %를 회사에 바치고 있는 것일까요? 당신에게 불혹은 몇 살입니까?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