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사람이 되려다가 만만한 사람이 되버렸다

직장 내 가스라이팅

by 새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만만한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거절이 힘들고 불편해서, 친절하게 거절했더니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오늘은 조직에 만연한 회사 내 가스라이팅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조직 내에 만연하는 문화에 관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가스라이팅?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 '심리 지배'라고도 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가해자에게 점차 의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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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리는 참 밝습니다. 텐션이 아주 강한 후배예요. 출근부터 퇴근까지 유지되는 하이톤의 목소리와 큰 웃음소리는 안대리의 시그니처입니다.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직장 상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대리의 순응적인 자세와 한 옥타브 높은 웃음소리는 동료들 기분마저 좋아지게 만듭니다.


보통의 퇴근시간 즈음입니다. 넷이 넘으면 약간 부서 회식 같아서 싫어요. 사무실에 남은 몇 동료들끼리 번개를 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불편해요. 술 좋아하는 셋 넷이면 딱 좋습니다. 술이 한두 잔이 오가면서, 해가 뜨면 해가 지듯이 당연한 순서로 험담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뒷담화를 즐기세요.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가 말하던데요. 이럴 때는 또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보통의 직장인 저녁시간과 다름없는 잔잔한 저녁 술자리 었어요. 달랐던 건 울고 있는 안대리였습니다. 저세상 텐션을 가지고 있다는 안대리에게도 눈물이 있었어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회사일에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대리의 밝은 외면에 당연한 편견을 가졌던 모양이에요.


안대리도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고, 뒷담화도 할 줄 아는 보통의 직원이었습니다. 업무 시간과 퇴근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업무와 개인적인 요청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에 너무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고 있었어요.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부서장 박 부장님이 원인이었습니다. 틈틈이 업무 중에 안대리의 진급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3~4년 후 과장직대의 진급을 거론합니다. 과정관리는 필수예요. 적당한 칭찬을 반복해요. 안대리가 지치면 안 되니까요. 반복적인 칭찬과 지적은 모두 안대리를 위한 코칭과 배려로 포장됩니다. 그리고 이제 열매를 맺을 시간이에요. 사람들이 다수 모이는 회의와 식사, 회식 자리에서는 안대리에게 강제적인 존중과 존경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박 부장님은 저의 부서장이기도 했어요. 박 부장님과 거래처 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2차 자리가 끝나고 기분 좋게 취해있던 박 부장님은 습관적으로 폰을 누르고 안대리를 호출하더군요. 자정을 한 시간 앞둔 늦은 밤이었습니다. 말릴 새도 없이 통화가 이루어졌어요.


취해 있던 박 부장님 폰을 뺏듯이 건네받아, 안대리에게 나오지 말라고 재차 설명했지만, 폰을 통해 전해지는 설득력은 요원합니다. 설명과 설득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11시가 지난 늦은 시간임에도 안대리는 30분 만에 박 부장님 집 앞으로 도착했어요. 호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냥 맥주 한 잔 더 하자는 것이었어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안대리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죠.

부르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모두 익숙합니다. 안타까운 건 안대리의 행동이에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요. 상사의 지시가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꿀 발린 칭찬에 속아서 그렇게까지 본인을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그 꿀은 안대리를 위한 것이 아닌 박 부장님 본인을 위한 꿀이거든요. 아닐 때는 아니라고 해야 해요. 불합리한 처신의 반복이 거듭되면서 이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적응을 하게 됩니다. '적응'이 가장 위험해요. '순응'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네요.



이 글을 혹시 박 부장님이 읽었다면, 박 부장님은 과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까요? 최소한 그의 언행을 돌아보긴 할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고 오히려 화를 낼지 몰라요. 우리 스스로 방어해야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가해행위를 알지 못하거든요.


박 부장님은 보험회사의 보수적인 편견을 이겨내고 부장까지 진급한 여성 관리자입니다. 여성으로 받았을 편견과 불평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그 경험과 심리를 이용해서 여성 후배들의 가스라이팅이 더욱 수월했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가장 어려워하고, 무엇을 가장 바라고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원 대리 시절의 아킬레스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그것을 이용한 거예요. 후배를 위해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아킬레스건을 이용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맞는데 너무 치졸하고 야비한 방법이에요.


박 부장님 같은 자들이 즐겨 쓰는 무기는 ‘진급’입니다. 진급이라는 절실함을 이용해야 하거든요. 진심으로 후배를 위하는 마음과 행동이라면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성은 없어요. 스스로의 이기심을 위한 언행에 우리는 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대상자들이 진급시기가 아닌 경우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박 부장들은 '진급'이라는 미끼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위 진급빨이 먹히지 않으니까요. 그럴 때는 성과급과 특별상여라는 미끼를 사용해요. 마무리는 늘 한결같습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설마요.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요. 혼자도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누가 누구를 챙겨주겠습니까. 진급은 내가 열심히 일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미끼를 덥석 물지 않아도 돼요. 혹시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보세요. 나도 모른 채 안대리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안대리의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에요. 상사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능동적인 선택이라면요.


회사 내 가스라이팅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직책과 지위를 등에 업고서 하는 그들의 농담과 업무 외의 지시를 일반 직원들이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요. 박 부장의 가스라이팅도 처음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잔잔한 파도같이 처음은 가볍게 발목정도에 와닿겠지요. 이때 신발정도만 젖은 채로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참 다행이자만, 박 부장이 이를 그대로 둘리 없어요.


직장 내 가스라이팅이 무섭고 위험한 이유는 가해자가 행하는 가해 행위를 가해자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박 부장처럼요. 가해자들은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를 들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거든요.


착한 사람과 만만한 사람은 다릅니다. 회사 내 만연해있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멀리 있지 않아요. 그리고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평범한 우리 주변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그들입니다. 악랄한 의도를 가진 일부의 사람으로 특정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모두가 조심해야 합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말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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