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힘들었어
입원환자의 90% 이상을 교통사고로 채우는 병, 의원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초진으로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입원을 제안하지요. 검사 과정 또한 어떻게 다쳤는지, 어디를 다쳤는지는 잘 묻지 않아요. 원무과에서 상담을 미리 마치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공평하고 일관성이 있는 진료 의식인데, 그 꾸준함 또한 대단합니다. 입원 수속을 마친 환자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같은 식사와 같은 처방, 동일한 치료를 받아요.
일관성과 꾸준함으로 유명한 OO정형외과의원에서 피해자를 면담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대여섯 쯤 되는 사람들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요.
"안녕하세요. 김집사님."
"아이고. 바쁘신데 어떻게 여길 다 오셨어요. 고맙습니다. 박권사님"
교회 분들이신가 봐요. 안부를 시작으로 반가운 대화를 나누십니다. 어쩔 수 없이 옆으로 조용히 비켜나 어정쩡하게 쭈뼛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들어요.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대화에 끼어들어 피해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OOO님. 우선 진료받아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지금은 손님이 오셔서 말씀 나누기가 좀 어려울 거 같아서요. 합의금은 유선으로 다시 안내해 드릴게요."
대화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일행 한 분이 수고한다며 캔커피를 하나 건네요. 그렇게 병실을 탈출하지 못하고, 예배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교회는 중학생 때 드럼을 알려준다는 동네형의 말에 한 번 따라가 본 적이 있었어요. 참고로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돈 벌기 참 힘들어요. 참으로 불편하고 어정쩡하게 서있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제 얘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저들에게 믿음을 주소서. 주님께서 우리 젊은 보상직원에게 빛을 내려주시어 합의금을 많이 주게 하옵시고 합의서를 작성하는 펜을 든 손을 잡아주시어 떨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합의금은 100만 원이 아니고 300만 원이 나올 수 있게......"
합의금을 요청할 때까지 병실 안의 예배는 10분 정도 지속됐습니다. 청각 장애인과 종이에 금액을 적어가며 합의 과정을 진행하고, 태국 대사관 직원과 통역인을 두고 합의과정을 진행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합의금을 요청받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약관의 기준대로 산출된 합의금은 피해자와의 서면동의를 거쳐서 피해자 본인의 통장으로 송금됩니다. 이런 일련의 보험금 산정을 하는 사람을 손해사정사라고 부르고요. 합의금은 약관의 기준대로 산출됩니다. 종교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관은 주님께서 쓰신 건 아니에요.
이번 피해자는 점집을 운영하는 무속인이었습니다. 자동차의 파손이 없는 경미한 사고였고, 다행히 사람도 크게 다치지 않았던 사고였어요. 문제는 소득이었습니다.
점집도 세법 상 사업자등록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세금신고도 해야죠. 고객이 원하면 현금영수증도 발급해 줘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카드 결제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업종은 비과세 혜택도 있어요.
아무튼 이 보살님은 3억 원의 연봉을 주장하셨어요. 그런데 문재는 소득자료는 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소득자료가 없을 경우에는 합의금 산출에 영향이 있다고 안내를 드려야 했고, 그렇게 30여 분의 면담을 마무리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부적을 받았습니다.
노란색은 종이고, 빨간색은 글씨 같긴 한데.
이틀 안에 XXX만 원 합의금 송금이 안되면 나한테 큰 불행이 닥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짙은 눈썹이 참 인상적이시던 분이었는데 묻지도 않은 부적 내용을 참 잘도 알려주셨어요.
자기 합리화란 정신분석학에서 초자아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자아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안나 프로이트가 말했습니다.
선배도, 집사님도, 보살님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에요. 누군가의 아빠고 엄마일 것이며, 누군가의 친구이자 사촌일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없이 이 팍팍한 삶을 이어 나가기도 쉽지 않을 테죠. 그러니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에요. 이성적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방어기제 본능일 뿐이에요.
살다 보면 누군가가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로 나를 공격할 때가 있습니다. 먹다 버린 음식 같이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를 마구 뿌리곤 하죠. 물론 쓰레기를 타인에게 투척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자기 합리화라는 본능, 이 방어기제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 이유예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범죄니까요.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난다고 맞서 싸울 건 아닙니다. 본인은 가지고 있기 싫다고 남에게 버린 쓰레기인데. 그걸 굳이 내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피해야 합니다.
자기 합리화를 통해 이기적인 감정적 포만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겠어요. 이제부터는 내 감정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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