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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May 17. 2024

선지해장국을 좋아합니다

“너는 관악산에서 걸음마를  떼었어. 얼마나 잘 걸었는데.”


 주말에 뵀던 엄마가 하신 말씀이에요.

 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등산을 다녔습니다. 서울대입구 쪽으로 올라 국기봉, 삼막사를 지나 안양으로 내려왔어요. 20년을 넘게 같은 길을 걸었는데,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에게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요.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몇 겹으로 옷을 껴입어야 했고요. 등산을 마치고는 늘 같은 식당을 찾았습니다. 선지해장국이라니요?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가 해장국을 좋아할 리 없지요.


 지금은 추억이 담겨있는 선지해장국을 좋아합니다. 단순 맛 때문만은 아니에요. 형과 나눠먹던 선지해장국을 처음으로 혼자서 다 먹었을 때는 제가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너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기억이 많아요.


 하루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비를 피하겠다고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후다닥 뛰었지만 신발까지 모두 젖고 말았지요, 감기가 걱정이 될 만도 한데, 너무 어이가 없어 왁자지껄 웃고 말았답니다. ’아 비를 맞아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구나 ‘ 그날의 기억은 마음이 건조해질 때면 느닷없이 떠올라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 줍니다. 산행 후에 내려오며 엄마 아빠와 함께 부르던 동요, 그리고 엄마와 맞잡은 손의 온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제게 머물러 있지요.


 동트기 전의 어둠 속 산을 오르는데도 꼬마는 겁도 없었어요. 어둠에 적응해 걷다 보면 산의 모습이 조금씩 보입니다. 머지않아 어둠을 가르는 황금빛이 온갖 초록을 드러내지요. 일요일이라도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하시는 따듯한 부정도 함께 합니다. 두 살 터울의 장난꾸러기 형도 늘 함께였지요.


 소복한 추억이 쌓여 있는 앨범 속에는 등산을 하고 있는 꼬마의 사진이 꽤 많습니다. 엄마의 말씀이 사실인가 봐요. 걸음마를 산에서 배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새벽 등산은 집의 고유 행사였어요. 사춘기 때에도 가족들과 등산은 함께 한 것을 보면 어린 꼬마도, 성장기의 소년도 가족과의 등산을 효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 아버지가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 해드린다는 속 깊은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저 멀리 산들은 기슭부터 봉우리까지 우거진 나무들로 뒤덮여 사랑스러운 숲을 이루고 있었고, 산을 가르는 골짜기들은 갖가지 모양으로 구불거리는가 하면, 유유자적 흐르는 냇물은 산들거리는 저녁 바람이 몰고 온 한 조각 꽃구름을 수면에 싣고서 속삭이는 갈대 사이를 미끄러지듯 흘러 내려가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중에서

 

 서울답지 않은 오월의 푸른 하늘입니다. 출근을 앞둔 시간이지만, 마음은 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에 가있어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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