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감사하다.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어서
하루하루가
한 번 낙제하면 다시 치를 수 없는 시험 같은 것이면
사는 일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매일 실수해도 다시 고쳐 쓸 기회가 주어지는,
배울 것을 마칠 때까지는 끝나지도 않는
이 지루한 반복이
그래서 나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마음이 자랄수록 아이가 되는 것이라서.
성장이 크고 추상적인 것들에 다가가는
재미 없는 공부였다면
늙어가는 일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작은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은 기쁨에 몸이 울리는
제대로 나이 드는 일은 아이처럼 즐거워지는 일.
그래서 지금 나는
나이 드는 것도 행복하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내 탓이라서 다행이다.
모든 것이 그들의 잘못이면
더불어 사는 일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모든 것이 내게서 비롯된 일이라서
내가 바뀌면 바뀔 수 있는 것이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또 감사한 것은
삶이 높은 의식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것.
지금 이 모습대로
죽도록, 그 후로도 살아야 했다면
살아야 함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다행히도 삶은
높은 의식으로 사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여정이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모양이라도 감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것이 내게만 주어진 행운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불행한 세상에서 나만 행복했다면
그 행복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진정한 축복은
누구나 높은 의식 속에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있다는 것,
그런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것.
그 길을 먼저 알고 기다릴 수 있어서,
지켜보며 도울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 2011년, 생을 바라보는 제 시야과 관념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던 무렵, 그 기쁨을 담아 어느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다시 꺼내보며 그 날의 초심을 다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