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아줌마네 집에는 네 사람이 산다.
팔순이 되시는 어진 아줌마의 친정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어진 아줌마와 딸이다.
어진네는 아직도 이장님이 있는 동네에 산다는 점만 빼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가족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족이다. 그런데 이 가족에게는 다른 집에 흔하다는 몇 가지가 없다. 이 가족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이 집에 없는 것 첫 번째는 부부싸움하는 소리다. 이 집 부부는 만난 후 한 번도 다투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것은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덕분이다. 누군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을 찾는 안목도 지혜라 할 수는 있겠으나, 이 또한 일방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으니 '부부의 연'에는 행운이 좀 따라주어야 한다.
이 집에 없는 것 두 번째는 사춘기 딸의 방문 닫는 소리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의 방문은 사춘기 시절 내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열려 있었다. 또 방문을 닫아야 할 때도 뒷손을 대고 닫기 때문에 문소리가 날 일이 없다(가끔 바람에 문이 닫히기는 한다).
부모에게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은 이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딸은 간혹 TV에 방영되는 다른 집 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한테 왜 저래?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라며 자기가 오히려 격분한다. 딸아이의 게임 아이디 비번이 '부모님감사합니다'인데, 아이디를 빌리려던 친구가 그 사실을 알고, 천연기념물 바라보듯 쳐다보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할 때면, 존대를 하는 딸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자식에게서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해 받는 행복은 값비싼 물건이 주는 행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가족 이야기를? 혹시 지금 자랑 중인가요?'
그렇다. 자랑하려고 작정을 했다. 세상에는 예절과 품위 같은 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방송과 SNS에 등장하는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은 보기에 안스러울 정도다. 능력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모욕하고, 자식의 무례를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라 잘못 알아서 자식을 점점 더 난폭하고 비사회적인 사람으로 키워간다.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님을 알리고 싶어졌다.
부모를 향해 매서운 말을 쏟아내고 방문을 닫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또 모든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잘못 자란 아이들이 하는 행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