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에 산다. 하지만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크게 다른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과학을 필두로 하는 물질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이나 종교계에서 주장해 온 관념적 혹은 영적 해석이다. 두 세계관은 같은 대상을 두고 어떻게 이런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결론도 상이하고, 접근방법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해석은 나름의 효용과 설명력을 지닌 채 굳건히 역사를 이어왔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만큼 이상하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이라는 전혀 다른 두 '나'가 합쳐져 내가 존재하는 듯한 이상한 실존적 사태.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순을 각각 육체와 영혼을 중심으로 포섭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통합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두 해석은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탐구의 전제
인체를 세포와 단백질 복합체로 보는 현대 생물학과 달리, 고대의 철학들은 대체로 인체가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쳤다. 우리만 해도, 개화기 전까지는 사람이 형(形, 형태)을 가진 부분과 형을 갖지 않는 기(氣), 지금으로 말하면 미세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고, 마음은 주로 기의 작용이라 여겼다. 유식불교에서도 ‘말나식’이나 ‘아뢰야식 ’ 같은 또 다른 심체(心體)를 설정하여 마음을 설명하려 했고, 플라톤 이후 서구에서도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이원적 존재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이 전통은 중세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용어와 세부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견해들의 공통점은 '마음'이 육체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실체라 여겼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육체 외에 마음을 존재하게 하는 무엇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물질과 다른 신비의 영역이라 주장되었기에, 과학이 발전하면서 '비물질적인 마음 혹은 영혼'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마음이 '뇌'의 작용에 따르는 부수적 기능이라 믿는다.
그런데 '점진적 뇌화'(뇌가 점점 더 중시되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다룬 표현)라는 말이 생길 만큼 확산되어 가는 일반의 믿음과 달리, 최근 학계에서는 오히려 '뇌가 곧 마음'이라는 주장이 힘을 잃어가는 추세다. 마음이 뇌라고 해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자역학 등으로 미시세계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물질'이되 '물질 같지 않은 물질인 에너지'로 마음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물리학자와 수학자들까지 나서서 마음과 생명의 비밀을 밝히려 애쓰는 모습이다.
이 글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나는 뇌가 아닌, 별도의 마음 기관이 존재함을 주장할 예정이다. 연재에 앞서 미리 입장을 요약한다면, 나는 인간이 다층적 존재라 여긴다. 즉, 우리가 물질적 육체 외에 마음의 몸인 의식체는 물론이고 죽음 이후에 지속되는 영혼 등 여러 존재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가정한다. 그러나 마음이나 영혼 또한 비물질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의 물질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유물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마음을 이루는 물질은 그 속성과 작용 방식에 있어서 육체를 이루는 물질과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영혼이 비물질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면, 과학의 발견을 영혼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영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또, 마음을 '뇌'로 한정하지 않고 별도의 실체로 인정하면 현재의 인간관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정신적‧영적 현상을 수용하는 새로운 인간관을 구축할 수 있다.
요약건대, 핵심은 영혼이나 마음을 물질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과학과 종교의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바로 그러한 작업을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무래도, 과학과 종교, 두 영역 모두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명상'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