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훔치신 건 아니죠?
내가 근무하던 마트는 작은 마트였던 까닭에 전담 인원이 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캐셔 업무는 기본적으로 해야 했고, 물건 발주와 정리, 그 외 기타 서류 작업 및 창고 관리를 다 혼자 다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른 지점은 마트에서 면세유 업무를 보는데 우리 지점은 주유소가 있어서 면세유 업무는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덜(?) 다행인 점은 그 때문에 수탁업무를 내가 해야 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업무량이 다른 지점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그렇게 한가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일에 집중이 필요한 일은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나는 마트가 조용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그 틈이 오면 순식간에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날은 조용했다. 그 말은 내가 밀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귀한 날이라는 뜻이었다. 마트 내에는 손님이 두 명 있었는데,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물건을 고르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고객이 계산대 쪽으로 올 때 나도 움직이면 되니까.
할머니 손님이 먼저 계산했고, 중년의 남자 손님이 두 번째로 계산을 했다. 포스기로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있는데, 남자 손님이 내게 말했다.
“앞에 나간 할머니요.”
“..?”
“커피 훔치시던데 보셨어요.”
“.... 네?”
“상의 속에 넣으시더라고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가 목둘레선을 잡아당기며 그 안으로 무언가를 넣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타 지점 하나로마트에 근무하는 직원은 종종 자신의 ‘촉’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그런 촉’이 엄청 좋아서, 어떤 손님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그가 무엇을 훔쳤는지’ 안다고 했다. 지금껏 그가 잡아낸 도둑만 해도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도둑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는 쌀 포대를 업고 가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밖에 나간 걸 달려가 잡았는데, 계산하라고 하면 할 건데 자기를 도둑 취급하느냐고,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조합장에게 전화할 거라고 했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 별사람들이 다 있구나.’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했었다. 그런 일이 내게도 벌어질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생각했다. 지금껏 재고조사를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재고가 부족했던가…. 나는 그게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재고조사 때마다 내 돈을 물어놓기에 이르렀는데….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다행히 할머니는 멀리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바로 사무실 앞에 서서, 끌고 다니는 보행기에 물건을 넣는 중이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흠칫, 놀랐다. 저 모습에서 불안함이 느껴진다면, 내 과잉반응이겠지?
“... 없죠?”
나는 간절함을 담아서 물었다. 진짜 아니죠?
“없어. 없다고!”
할머니의 대답은 조금 이상했지만, 단호하고 강경했다. 그 태도에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면……. 정말 안 훔친 거일 수도 있지 않나? 아까 그 남자분이 잘못 본 걸 수도 있지 않나?
“저 어머니 믿어요? 제가 더 안 봐도 되는 거죠?”
“없다고!”
그래.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더 의심하기도 그렇지 않나? 만약 정말 할머니가 훔친 게 아니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 엄청난 민원 아닌가? 그래. 그 남자 손님이 잘못 본 걸 거야.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했다. 뭔가 가슴에 턱 걸린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허리가 90도에 가깝게 굽은 할머니는 그 덕분에 옷의 가슴팍 부분이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만약 저게 그냥 처진 게 아니라면……?
“할머니, 잠시만요. 셔츠 속 한번 봐도 돼요?”
“없다니까!”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할머니의 옷자락을 들쳤다. 그러자 할머니의 가슴에서 작은 커피믹스 상자 하나가 떨어졌다.
“....”
“아이고, 우리 영감한테는 말하지 마! 나 영감한테 죽어!”
할머니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나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진짜 훔쳤어? 그렇구나. 훔쳤구나……. 조금 전까지 아니라고 했는데…. 진짜 훔쳤던 거였어…. 약간 화도 났다.
나는 약간 정신이 나가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다급해 보였다. 시골의 특성상 나는 이 할머니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영감’이 누구인지도 안다. 그녀는 결코 도둑질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정답인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나는 떨어진 커피믹스를 주어들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 이제 다음부터는 여기 오지 마세요. 말 안 할 테니까…. 앞으로 여기 오지 마세요.”
“그래! 절대 말하면 안 돼!”
할머니는 신신당부하며 떠났다. 나는 조그마한 커피믹스처럼 몸을 웅크려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손님이 부르는 소리에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가 일을 했다.
할머니는 약속을 지켰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마트를 오지 않은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할머니에게 마트에 오지 말라고 한 것이 후회되었다. 시골 사람들에게 하나로마트는 정말 소중한 곳이다. 그런 마트를 내가 못 오게 했으니…. 별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할머니의 삶의 질이 나 때문에 떨어진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도둑질을 한 건 한 거고 삶의 질은 또 다른 부분이니까. 그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는 점은 그 할머니는 원래부터 우리 마트에 잘 오지 않던 분이었다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분인데…. 와서 그런 일을 벌였던 거고…….
두 번째는 나에 대한 생각이었다. 과연 그 ‘도둑’이 연약한 ‘할머니’가 아니었어도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당시 객관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 남자 손님의 증언만이 증거였다. 만약 그 ‘도둑’이 성인 남자였어도, 무섭게 생긴 사람이었어도,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어도, 내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손님의 셔츠를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나는 어쩌면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그런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남자 손님이 도둑질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그냥 매번 재고는 부족하구나, 재고 관리는 어렵다 하며 구시렁거리며 내 돈을 밀어 넣고 말았을 텐데. 그렇지만 그 남자 손님을 원망하고 싶진 않았다. 그도 오지랖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좋은 뜻으로 내게 사실을 전달한 걸 테니까. 무엇보다 도둑질은 용납돼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더 이상의 도둑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트를 떠나는 그날까지 재고조사 때마다 내 돈으로 모자란 재고를 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