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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an 07. 2024

선배가 퇴사를 했다.


S는 회사 선배다. 그와는 같은 사무실에서 두 번 정도 근무를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처음 같이 근무했을 때는 나는 갓 입사해서 그만두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있을 때라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고, 두 번째 근무했을 때는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층에서 다른 부서로 일했기에 접점이 전혀 없었다. 서로 업무적인 요청이 있을 때만 사내 전화로 대화를 하는 그 정도의 관계였다.


그런데도 그는 내게 꽤 인상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는 크다. 정말 말 그대로 큰 사람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그래서 위압감이 ‘굉장하다’. (굉장하다는 s가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 웬만한 민원은 그가 앞으로 걸어 나와서 “무슨 일이냐”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다 된다. 비실비실한 인간의 대표 표본인 나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둘째, 그는 언제나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한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모두가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언제나 힘차게, 그것도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언제나 힘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인사하는 나와는 다르다.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인데…. 아무튼 그 커다란 덩치로 커다란 목소리로 그는 언제나 ‘파이팅’을 외친다.


“브라더, 오늘은 많이 먹었어?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해.”

셋째, 그는 내 식사를 염려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그는 어김없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하하하, 영혼 없이 웃으며 감사합니다, 혹은 네, 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사실 좀 의아했다. 직장인이 저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고? 그저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나와는 너무 달랐다. 다르니까 낯설었다. 그의 행동은 진심이라고 하기엔 오버스러웠고, 그러나 거짓이라고 하기엔 너무 꾸준했다. 


내가 그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것은 같은 지점에 근무하는 동기가 마련해 준 저녁 식사 자리에서였다. S를 알게 된 후, 전형적인 한국인답게 우리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엄청나게 해댔지만 단 한 번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내 옆자리 동기는 S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동기가 S와 통화를 하다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한 동기가 나에게 함께 먹을 먹겠냐고 제안했다. 그래! 언제까지 그 ‘언제’를 미룰 순 없지. 그렇게 몇 년 만에 S와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에 대한 그의 태도, 열정이 정말 놀라웠다. 

그는 주어진 일은 일단 해보겠다고 말한다고(말해야 한다고) 한다.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서 하되, 그 책임은 자신에게 업무를 넘긴 책임자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왕 일할 거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언제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고, 문제를 발견하면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가 책임자가 물으면 언제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를 보는 것은 마치 20대에 읽은 자기 개발서를 4D로 다시 보는 기분이었다. 아, 뜨거워!


물론 모든 이야기가 다 아름답기만은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반적인 직장인답게, 노후 이야기도 하고, 급여와 재테크 이야기도 했고, 다른 직원들 욕도 했다. 특히 일을 안/못하는 직원은 술자리의 최고 안주였다. 형편없는 직원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참 같이 떠들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걔들을 버리고 갈 순 없잖아. 안고 가야지.”


뭐라고? 내가 눈을 희번덕 떴다. 제가 왜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직에 있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려면 우리가 편하려면 그런 애들을 잘 가르쳐야 해. 그래야 우리 일도 넘겨주지.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잖아. 그 애들을 잘 가르쳐서 한몫하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편해지는 길이야.”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관점에 누군가 머리를 한 대 친 것 같았다. 정확히는 나를 뒤흔드는 느낌. 잊고 있었던 20대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나. 이제는 없는 나.


언젠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실망할 것이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걸 깨닫고 몹시 우울했다.


 겨우 이런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나?


나는 어째서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날 괴롭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하루를 사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이 싫지 않다.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그 힘겨운 시간 끝에 만들어진 것이 ‘이런’ 나니까. 좋은 싫든 받아 들어야지. 그리고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는 안다. 타고난 본성을 바꾸는 것은 정말 뿌리부터 바꿔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금껏 많이 힘들었는데, 또 힘들고 싶진 않았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그동안 배운 것이 있으니까, 내 감정은 살아 있으니까, 포기해 놓고서도 입에선 불평을 쏟아내는 거지. 과거 내가 욕하던 선배가 그러했듯이.... 아, 그렇구나. 나는 과거 선배들이 겪은 그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거구나. 나는 그냥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거구나.


시니컬해지는 건 얼마나 쉬운가. 불합리한 조직을 욕하고, 멍청한 동료를 욕하고, 나만 일해야 하는 상황을 비웃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열정을 유지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와의 대화 후, 나 자신이 달리 보였다. 그가 달리 보였다. 조금 더 일찍 그와 대화를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또 한 번 만나서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송별회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명예퇴직 공고가 뜨고, 그가 신청을 고민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었다. 누구나 퇴사는 고민하니까. 그리고 그가 처음 퇴사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퇴사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사직서를 3번이나 쓴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껏 다니고 있고. 현실적으로 퇴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그도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하고 싶겠지. 그런데 진짜 할 수 있겠어? 퇴사는 아무나 하나?


그러나 진짜 그가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조금 많이 놀랐다. 그는 선택한 것이다. 비슷하게 명퇴를 하는 사람들이 휴가를 내고 일찍 집에 들어간 것과 달리 그는 끝까지 자기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 그가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그가 고생한 걸 알아주겠어? 알아준다고 해도 며칠이나 고마워하겠어?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그는 퇴사 마지막 날, 인사차 우리 지점에 들렸다. 그는 조금 커 보이는 녹색 점퍼를 입고 왔다.


“동생들이 나가서 춥지 말라고 사줬어.”


라고 말하는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던가.


그렇게 그가 떠나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잊었다. 평소 그와 만나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를 떠올리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그가 근무하고 있었어도 나는 그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업무를 위해 전화해서 별생각 없이 “S 대리님 좀 바꿔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서야 그의 부재를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초, 일이 바빴다. 그런데 친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S의 퇴사 축하 파티를 할 건데 오지 않겠냐고. 나는 단숨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송별회는 간단한 의례로부터 시작했다. 국민의례는 생략되고, 내빈 축사가 이어지고…. 아니, 이거 너무 전문적인 거 아냐? 물 흐르듯 매끄러운 진행에 웃음과 건배사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S에게 건배사를 넘겼다. S는 극구 거절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요 며칠 사이, 이런 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그렇게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더니 결국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고 울었다. 그 커다란 덩치로 소리 내지 않고…. 그러나 그의 떨리는 몸짓과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오는 울음소리는 나와 직원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잠시 후, 겨우 감정을 추스른 그가 말을 이었다.


“말할 때마다 울음을 터뜨려요. 진짜 나가서 너무 좋은데. 저도 왜 우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하나도 안 슬픈데 말이죠.”


나는 그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자를 쓰고 왔던 그는 고깔모자를 쓰기 위해 모자를 벗은 상태였다. 그의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새삼스럽게 눈을 찔렀다. 원래 그가 이렇게 흰머리가 많았던가?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네.”

“열심히 했으니까 눈물이 나죠. 열심히 안 했으면 눈물 안 나죠.”


내 말에 그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나를 돌아보았다.


“너, 알아? 내가 열심히 한 거, 네가 알아?”


그 목소리가 어땠던가. 조금 화가 난 것 같기까지 했다. 따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진위를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여전히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난 그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그랑 같이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가 모든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인사했던 것, 모르는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말한 것, 회사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이들을 자기가 참석하는 모임이란 모임에는 다 데리고 다닌 것, 실적을 위해서 정말 부단하게 노력한 것은 안다.


내가 아는 그 영역에서, 그는 정말로 열심히 했다.


“알죠. 아니까 제가 여기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내 말에 그는 조금 울컥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그를 보며 나를 생각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건 내가 먼저였는데, 나는 결국 남은 것은 나구나. 언젠가 나도 저런 식으로 떠날 수 있을까? 마흔 전에 결정을 내리자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구나. 나는 정말로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떠날 때, 나는 몇 사람에게서 환송을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대리님은 몇 번이나 환송회를 했다고 했잖아요. 그만큼 아쉬운 사람들이 많은 거죠. 대리님이 열심히 한 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확신하는데, 만약 네가 퇴사하면 너에게 환송회를 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내가 있을 거야.”


하. 퇴사하고 자기 사업을 한다더니…. 어쩜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할까? 오늘의 대화에서 내내 그랬다. 그는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았다. 독사의 혀를 가진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올해 내 계획을 새삼 생각했다. 좀 더 다정해지기로 했지. 착한 사람이 되기로 했지. 예쁜 말을 쓰기로 했지…. 하아, 가능할까?


환송회를 끝나고 돌아가는 길, 나는 그를 생각했다. 그의 환송회를 너무 늦게 알아서, 나는 그에게 줄 선물을 챙기지 못했다. 편지를 쓸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오글거리는 것 같고, 우리가 그 정도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러나 다른 후배의 편지에 감동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어차피 마지막인데 그 정도 오글거림은 참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중 s는 요즘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회사 사람이 아니지. 술이 얼큰하게 취한 나는 그에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오, 브런치를 알고 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에 떠벌린 까닭에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다 편지를 쓴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밥 한번 먹자, 밥 한번 먹자는 말을 거의 5년간 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정말로 밥을 같이 먹은 건 겨우 3달 전이에요. (사실 확인을 위해서 다이어리를 확인했는데 사실입니다) 그때 대리님을 보고 ‘와, 20대의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는데…. 겨우 3달 사이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하시네요. 퇴사로 놀라게 할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그때 신규직원이었죠. 사업소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맨날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때 대리님은 그곳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계셨죠. 그날 출장을 마치고 대리님은 늦게 사무실에 돌아와, 울고 있던 저를 발견했죠. 저는 그런 대리님에게 울면서 당장 그만둘 거라고 했고, 대리님은 그런 저를 보며 ‘그래. 너는 그만둬도 잘할 것 같다. 하지만 나라면 당장 그만두기보다 회사에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겠다고 그만두겠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저는 그럼 제가 회사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게 뭔데요! 하고 되물었고(돌아보니 저는 과거에도 주둥이가 좀 그랬네요) 대리님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프린트?’라고 말씀하셨는데. ㅋㅋ혹시 기억하시나?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저는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그랬던 대리님은 퇴사했네요. 하. 인생이란 참 이상합니다. 하긴 이상한 건 세상만 이상한 건 아니죠. 우리 조직도 정말 이상하잖아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항상 고생하고, 놀고 있는 사람은 항상 놀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가 이루어지고…. 사실 저는 승진에 특별한 관심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와 다르다는 걸 알아요. C의 말처럼 회사에서도 흐름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적당한 순간이 오면 승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나이 들어서 앞에 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줄 수 있고….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승진에 관심이 없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저에게 책임자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자는 능력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고, 나아가 사람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게 없죠. 

  대리님은 제가 아는 그 어떤 사람 중에도 가장 사람들을 포용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가 모두 ‘죽일 놈’이라고 말하는 그 아이들도 대리님에겐 포용해야 하는 대상이었죠.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이런 사람이 있다니!

  우리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일을 하죠. 머리도 마음도 굳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대리님은 달랐죠.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제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어요. 대리님은 저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녹여버렸죠. 우리가 함께 근무했다면 어땠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러나 이제 대리님은 이제 이곳을 떠나죠. 아마 곧 대리님을 잊을 거에요. 지금에야 연락 계속 하자, 자주 보자, 이런 말을 하지만 살다 보면 그게 쉽지 않잖아요? 특히나 우리처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관계라면 더 그렇겠죠. 너무 매정한가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저 원래 이렇게 말하는 거. 대리님과 마주 보며 손을 흔들면서 저는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저는 집에서 쉬면서 올해 새롭게 세운 목표들을 곱씹고 있었어요. 올해 나는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었죠. 하지만 알다시피 이번 인사이동 정말 엉망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폭탄들을 우리 지점에 몰아줄 수 있죠? 하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으려면 신경 안 쓸 수도 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살아야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대리님 생각이 났어요. 그런 애들도 끌고 가야 한다고. 그게 궁극적으로는 내가 편한 길이라고 그렇게 말했었죠? ...하긴, 혼자 일하는 건 힘드니까, 일단 기회는 줘 봐야겠죠? 그러고 보니 할 거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죠. 그러고 보니 요즘에 업무도 좀 소홀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좀 더 신경을... 그러다 깨달았어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그래요. 나는 이미 대리님의 사상에 약간 물이 들어버린 거예요. 물론 완전히 물든 건 아니에요.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닌 거 아시잖아요.ㅋ 그러니까 살짝 발만 담근 정도? 하지만 그게 정말 크네요. 파란색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조금이라도 붉은색을 접하고 나니까….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네요.

  책임져요.

  어서 사업이 초대박이 나서 함께 할 직원을 구한다고 공고를 올려줘요. 제가 고민하는 노후 대비로 대리님 회사에 지원하는 걸 목표로 둘 수 있도록 말이죠. 대리님이라면 잘 하실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의 마음도 흔들었으니,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리님, 아니 대표님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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