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쏭쏭 Sep 09. 2023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내가 공감한 부분.

포인트는 음식이 아니라-

“언니, 언니! 그거 봤어요?”     


후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뭘 봤기에 저러나. 호기심이 생겨 물으니 ‘리틀포레스트’ 영화를 보았단다. 한때 일본 만화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원작의 존재와 한국에서 리메이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언니, 너무 좋았어요! 언니도 꼭 보세요!”     


영화를 추천하는 후배의 눈이 끝까지 초롱초롱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봤다고, 다들 좋은 평가를 했다던 그런 언론에서 평을 듣긴 했지만, 텍스트로 된 수많은 사람의 추천보다 눈앞 지인의 눈빛이 더 강렬했다. 그렇게 리틀 포레스트를 보게 되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오래된 영화인 만큼 보지는 않았어도 대충 어떤 식의 영화인지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 굳이 여기서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하지는 않겠다. 그저 영화는 시종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예쁘고 건강한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린 시절의 우정을 그려낸다.     


특히, 시골에서 바로 수확한 신선한 제철 농작물로 스스로 만든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는 이 영화의 백미다. 현대 사회의 대다수,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은 지금껏 주로 편리함과 간편함을 이유로 주로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선택해 왔다. 그것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 제일 똑똑한 박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들었으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단지, 멋이 없을 뿐.


영화에서 주인공은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든다. 우리가 편의점 음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없고, 요리실력이 없고, 그럴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모든 것을 가졌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대접한다. 이런 콘셉트이면 좋아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푹 빠지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감을 느끼며, 비판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뜯어보았다는 뜻이다. 재미없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도리어 재미있었다. 나의 재미 포인트는 다른 사람들과 살짝 달랐다는 점이지만.     


내가 가장 몰입했던 것은, 바로 ‘은숙’. 주인공의 여자 사람 친구다.     

나는 그녀가 입은 근무복을 보는 순간부터 그녀에게 반가움을 느꼈다. 아니, 저 옷은!! 영화상 구체적인 말은 없었지만(없었던 거로 기억하지만!), 그녀가 입은 옷은 내게 친숙한 ‘근무복’이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창구의 모습, 건물의 형태까지.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일하는 동네의 은행이 ‘농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만약 그것이 전부였다면, 나는 은숙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시골 은행의 모습은 다들 비슷비슷하니까. 게다가 시골의 대표적인 은행은 농협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러니까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농협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은숙을 보며 너무나 ‘농협 직원 같다’라고 생각한 점은, 그녀의 근무복이나 창구 정황 같은 객관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은숙이 커피를 타는 장면이었다.      


끝없이 커피를 타고 있는 그 모습에서 나는 은숙에게서 ‘같은 직원’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농협 직원이라면 모름지기 커피믹스를 잘 타야지.     


커피 자판기가 있지만 그래도 ‘정성’을 보이기 위해 커피를 탄다. 요즘은 커피를 드시지 않는 손님도 있고, 블랙커피를 드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메인은 커피믹스다. 언젠가 커피믹스의 커피가 채 녹지 않은 채 둥둥 떠 있던 커피를 타왔던 직원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홀짝였다. 그러나 그 커피를 마시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던 선배가 그를 보고 말했다.     


“너 조합원에게 이렇게 주면 욕 엄청 먹는다. 이게 뭐냐?”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농협에서 커피믹스의 역할을 알게 된 것은…. “어서 오세요”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커피 한 잔 드릴까요?”가 될 거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평생 농협의 조합원으로 지내왔다. 아버지가 조합원으로 있는 그 농협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러나 친하지는 않던 동기 A가 입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버지께 A가 내 동기라는 말을 하자, 아버지는     


“아, 그 가면 맨날 커피 마실 거냐고 묻는 애? 하하, 어찌나 커피를 권하던지.”     


라고 말했다. 그렇다. A도 끝없이 커피를 타고 있다. 덕분에 싹싹하고 친절한 이미지를 얻어가고 있었고. 커피믹스 한잔으로 그 이미지를 얻는 거라면 싸게 치는 거겠지?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컵에 물을 붓는다. 적어줘, 자판기 커피 정도로 만족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영화 내내 은숙의 모습을 좇았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따로 있기에 그녀의 비중은 적었지만, 그녀의 에피소드가 나올 때면 나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인지 작가인지 모르겠지만, 농협에 대해서 정말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단연 카타르시스의 최고봉은 은숙이 부장의 머리를 탬버린으로 내리쳤을 때였다.    

 

그래! 바로 저거지!     


아,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수하자며 굳이 손을 내밀더니 내 손바닥 안쪽을 긁어내리던 이. 가슴이랑 등판이 구분이 안 된다고 했던 이. 그렇게 울어서 접대는 못 데려가겠다던 이. 뽀뽀해 달라고 했던 이.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내게 몸을 비비던 이. 너는 결혼하지 말고 내 애인이나 하라는 이. 등등…. 그때마다 저렇게 탬버린(은 너무 약하니까 들 수만 있다면 계수기가 좋겠다)으로 대가리(!)를 내리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나 저런 순간이 되면 ‘어떻게 반응’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정색하는 것은 ‘너무 직장인답지 못한 것’ 같아서 ‘능숙하게’ 받아쳐 보았다. 그러자 그것은 자연스럽게 ‘농담’이 되어버렸다. 나는 단숨에 ‘그런 농담을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색’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답은 모르겠지만.     


아마, 저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탬버린을 휘두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 뒤가 엄청나게 복잡해지겠지? 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늙은 고인 물이 되었구나.     

아마 앞으로 내가 탬버린을 흔들 일은 점점 적어지겠지. 대신 탬버린을 들까 말까 고민하는 후배들을 보는 일은 더 많아지겠지. 나보다 더 똑똑하고 불합리함을 참지 못할 이들. 그리고 나보다 더 착하고 그러나 사회 경험은 적을, 그래서 나보다 훨씬 상처받기 쉬운….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짧지도 않은 직장 생활 중 내가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상처를 받으면 났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흉터가 남는다는 것. 흉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옅어질 뿐…. 흉터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미 흉터를 꽤 가졌다. 더 가질 생각은 없지만, 아마 가져도 티가 별로 나지 않겠지. 대신 깨끗한 피부를 가진, 흉터 없는 이들에게 그 흉터는 크게 티가 날 것이다. 그러니까 탬버린을 앞에 두고 고민하면서도, 탬버린을 쥐고 흔들면서도, 심지어 탬버린을 대가리(!) 내리치면서도 상처를 입겠지.   

  

인격적으로 훌륭한,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이라면 저 탬버린을 ‘스스로’ 쥐겠다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내가 ‘대신’ 탬버린을 흔들 생각이 없다. 그러기엔 나도 너무 소중한 것. 그러니까 내 역할은 그런 탬버린을 쥘 일이 없도록 중간에서 잘 막아서는 일. 처음부터 고민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처신하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그냥 탬버린을 두드리는 게 더 쉬운 일 같다. 하지만 쉬운 일만 하다간 실력이 늘지 않을 테니까…. 선배가 있는 건 어려운 일을 하라고 있는 거니까……. 하아. 언제나 신규직원처럼 살고 싶구나. 그러나 후배의 반짝이는 눈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리틀 포레스트를 추천한 후배를 생각하며, 선배는 이렇게 힘을 또 한 번 내어보는 것이다.


아이고, 무릎이야.

작가의 이전글 내 최초의 통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