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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12. 2023

내 최초의 통증

두통과 복통

내 최초의 통증에 대한 기억은 두통과 복통이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맨날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집에서도 진통제와 소화제를 달고 살았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에게 매번 달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먹으면 나중에 큰 병 걸릴 때 내성이 생겨서 진통제가 듣지 않는다고 내게 참아보라고 할 정도로 어린 시절 나는 진통제를 먹어치웠다.


계속해서 배가 아프다는 나 때문에 엄마는 결국 나를 데리고 근처의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때 먹었던 하얗고 걸쭉했던 액체 약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토할 것 같은 맛이었다. 맛이 정말 없었다. 그런 약을 억지로 먹었던 이유는 그 약을 먹으면 대장의 움직임이 엑스레이에 찍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약을 마시고 조금이라도  약을 빨리 퍼뜨리게 하기 위해 온 병원을 뛰어다녔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내 장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했다. 장기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 장기는 때로는 더 빠르게, 때로는 움직이지도 않기도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배가 아픈 거라고 했다. 그 후,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복통으로 고생한 적은 없는 기억이다. 어쩌면 이유를 알아서 치료를 포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장기가 안 움직인다는데 어쩔 거야? 하는 마음)


어릴 때, 나는 배가 아프면 소화제를 먹었다. 배가 아프면 먹는 약이 소화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드시던 위산억제제(..)를 몰래 먹기도 했었다. 어린 마음에 아프니까 이것저것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제멋대로 약을 먹어서 지금 소화불량이 이렇게 심한가 싶기도 하다.


머리가 아플 때는 '뇌선'을 먹었다. 뇌선은 우리 외할머니가 드셨고, 우리 엄마가 드셨던, 그리고 현재도 드시고 있는, 두통약이다. 하얀 플라스틱 통에 담긴 가루약인데, 어떤 것은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약이 소복하게 담겨 숟가락으로 퍼먹는 형태였고, 또 어떤 것은 하얀 종이에 적당량이 담겨서 곱게 접혀있는 형태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두통 약하면 뇌선의 그 씁쓸한 향기와 맛이 입가에 맴돈다.


최근 동료들과 두통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뇌선이 너무 익숙해서 다른 사람들도 아프면 다 뇌선을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뇌선을 찾아보게 되었다. 뇌선은 간단히 말하면 강력한 진통제 x카페인이었다. 먹으면 진통 효과가 있어 안 아픈 데다가 카페인 때문에 힘이 빡! 난다. 아, 이러니까! 어른들이 빠질 수밖에 없구나!! 중독이 안 될 수밖에. 현재도 우리 엄마는 머리가 아프면 이 뇌선만 먹는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처음 인터넷을 접했다. 놀라운 인터넷의 세계에 나는 금방 빠져들었다. 그때는 야후(..)와 다음(..)이 주 검색엔진이었다. 나는 그때 두통과 관련된 내용을 엄청 검색했다. 덕분에 당시 아주 낯설었던 심리적 원인에 기인한 통증이라던가 허브 테라피 등을 접할 수 있었다. 허브로 치료를 한다는 말은 어린 마음에 엄청나게 흥미로웠다. 하지만 초창기였기 때문에 가격이 엄청 높아서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진 못했다. 또한 한의학적인 치료 방법도 알게 되었는데, 귀의 특정 부분에 침을 놓으면(혹은 뚫으면) 복통에 좋다고 해서 엄청 고민했었다.(물론 그 위치에 귀를 뚫진 못했다.) 


이 통증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지독한 허리 통증과 속아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면서는 이 두 가지 통증이 거의 완전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엄청난 두통이 나를 덮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말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덕분에 두통에 시달리던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던 거고.


도대체 머리는 왜 아픈 것일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 복통과 두통이, 아마 집안의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성으로 발현된 증상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동시에 어린아이 특유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걱정해 주니까.


아프다고 하면 부모님이 걱정을 해 주니까. 어디가 아프지? 왜 아프지? 하면서 마음을 써주니까.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아프다고 했었던 것 같다. 통증이 하필 복통과 두통이었던 것도 어릴 때 아는 고통이 그 두 가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사춘기를 지나며 그런 관심이 달가워지지 않으면서 그 통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지금은 왜 아픈 걸까? 이제 관심을 받고 싶진 않은데.. 도리어 관심을 안 가져주었으면 좋겠는데


가장 큰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거북목이다.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나날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거북이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고 있다. 나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지만, 내 목을 보는 필라테스 강사님의 얼굴은 나날이 흐려지고 있는 중이고.


두 번째는 숙취의 진화. 언제부턴가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날은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받는 날(?)이면 분위기 정도는 맞추었는데... 이제는 정말 금주를 결심해야 할 정도다.


그래. 두통에도 장점이 있다.. 금주를 결심하게 만드는 장점.... 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요즘은 강렬한 두통은 드물지만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머리 전체가 뜨거운 물수건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쥐어짜지는 것 같은, 가볍고 은근한 두통이 자주 온다. 약을 먹으면 좋겠지만... 과거 선생님들이 말하던 '내성'이라는 단어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차피 치료가 아닌 망각제. 계속 의지할 순 없으니까.


일단 가서 누워야겠다. 어찌 되었건 아픈 건 별로다. 안 아프고 살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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