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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09. 2023

얼굴이 아프다.

내가 구안와사라고?

처음 내가 얼굴에 통증을 느낀 것은 입사하고 1년째 되었을 때였다.


출근 전, 양치질을 하는데 입술 아래쪽의 감각이 이상했다. 마치 치과 진료를 받을 때 마취를 했을 때와 비슷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특별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일을 했다. 하루종일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고 마감 시간이 되어서야,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틈이 생겼다. 나는 하루 종일 나를 신경 쓰게 한, 그 '마취한 것 같은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선배들 중 한 명이 몹시 놀랐다.


"그거 구안와사 증상 같은데?"


... 네? 

당시 나는 구안와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얼굴이 돌아간다는 추상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다. 선배는 그건 신경계통의 질병이라며 빨리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으면 났는다고도 했다.


당시 나는 젊다 못해 어렸고,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입이 돌아가는 이미지'는 내 머릿속을 무섭게 떠 다녔다. 결국 구안와사를 치료한다는 가까운 한의원에 방문해서 진료를 받았다.


한의원에서는 구안와사 초기 증상이 맞는 것 같다며, 내게 침을 주고 약을 주었다. 푹 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푹 쉬며, 약을 먹고, 진료를 계속 받자 얼굴의 그 낯선 감각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실내 자전거를 탔다. 그다지 열심히 타던 시기는 아니었는데, 얼굴 통증이 나아가고, 또 여름이 되다 보니 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한의원에서는 푹 쉬라고 했지만, 운동은 좋은 거니까! 그냥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다시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경련이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통증이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입술 주변이 떨렸다. 동시에 얼굴 한쪽에 통증까지 생겼다. 더 심해진 것이다.


내 행동을 후회하며 다시 한의원을 갔다. 한의사는 침을 놓으며 한약을 권했다. 생에 처음 내 돈을 주고 한약을 사 먹었다. 


"웬 한약?"


냉장고에 가득한 한약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한약을 지었다고 말했다. 구안와사가 왔다고 하면 엄마가 너무 걱정할 것 같았다. 마음고생을 시킬 바에는 차라리 불효녀가 되기로 했다.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았지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는 대학병원을 내방했다. 없는 휴가를 내서, 병원을 내방하고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담당 교수가 있는 날에 맞춰 다시 병원을 내방하길 몇 차례. 결과가 나왔다.


"증상이 너무 약해서 지금으로서는 원익을 파악할 수 없으니 더 심해지면 오세요."

"... 네?"


이게 말이야 소야? 그게 의사가 할 소리야? 아니, 그런 거라면 처음부터 그런 거라고 말하지! 내가 그런 소리나 듣기 위해 그동안 그 많은 시간과 돈을 썼는 줄 알아?


이후, 나는 한의원 치료와 휴식에 집중했다. 다행스럽게도 얼굴의 경련과 통증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몸이 안 좋으면 얼굴이 아팠다. 얼굴이, 피부 겉에 입은 상처로 인한 것이 아닌 이유로,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아플 때마다 고통보다 두려움이 더욱 컸다. 이러다가 정말 완전히 얼굴이 돌아가면 어쩌지? 후유장애가 오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시간의 힘은 나에게도 유효했다. 점점 고통의 강도는 약해지고 빈도도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나는 구안와사를 잊어갔다.


그런데 작년 가을, 다시 얼굴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10년 만에 재발이었다. 증상은 저번보다 더 심했다. 얼굴에 경련이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 예전에 진료받았던 한의원에 연락했다. 다행히 그곳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기에, 나는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침을 맞고 또 맞았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조급함이 찾아왔다. 지난번 대학병원에서의 분노는 잊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지난 10년 사이, 아버지가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나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갔던 대학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의 신경과를 찾았다. 의사는 혹시나 하면서도 mri를 권유했다. 검사비는 무서웠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나오는 건 없었다. 의사는 내게 인경안정제를 처방했다.


그러는 중간에 인사이동이 났다. 예상치 못한 인사에 스트레스가 폭발했고, 자연스럽게 얼굴은 더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 입술이 경련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알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알았다. 어느 순간, 입술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이 몰려든다. 어느 날 얼굴이 알루미늄 캔처럼 찌그러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가? 하는 것에 대한 짜증. 도대체 얼마나 스트레스를 안 받고, 컨디션 조절을 하고, 면역력을 높여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어째서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이 부실한 걸까?


작년 가을에 재발한 구안와사는 약 3개월 정도 나를 괴롭히고 다시 가라앉았다. 지금은 아주 드물게 안면이 찌릿할 때가 있지만, 대체로 정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구안와사를 잊고 살 순 없을 것 같다. 찾아보니, 구안와사는 재발이 잦다고 했다. 아마, 내가 그 말을 작년 여름에만 들었어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재발한 후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만에 재발했으니, 10년 뒤에, 혹은 5년 뒤에, 아니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은 더 모르겠는 구안와사.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은 아프지 않다는 점. 너무 많이 아프다 보니 이제는 '아픈 게' 보통 값이 되어버렸다. 안 아픈 날이 더 드물다. 그러니까, 안 아픈 지금을 감사하게 여기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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