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같은 작은 마트의 역할
내가 근무하는 지점은 시골 중에서도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여름이면 인근 계곡으로 놀러 오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간혹 전화로, 또는 방문해서, 묻는다.
“고기 사려고 하는데, 몇 시까지 영업하나요?”
“어쩌죠? 저희는 고기는 안 팔아요.”
“네? 그럼 과일은 파나요?”
“아뇨. 저희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도 안 팔아요.”
그럼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 놀라운 표정, 혹은 목소리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럼 어디로 가야 그것들을 구할 수 있냐는 말에 나는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읍내에 대형 마트가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부분은 그 정도 하면 알겠다고 대화를 종료하지만 또 가끔은 한마디를 덧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그런 것도 안 팔면 마트에서 뭘 파냐고, 그런 마트를 왜 운영하냐고.
이름만 마트지 실상은 옛날 슈퍼에서나 팔 법한 제품을 파는, 직원이 있을 때는 거의 없고, 뒤늦게 나타난 직원은 때로는 불친절하기까지 한 시골의 하나로 마트. 그런 마트는 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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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근무했던 하나로마트는 지점에 있는 작은 마트로, 진열대가 두 줄에 불과한, 웬만한 편의점보다 작은 크기의 마트였다. 고기와 야채 같은 것은 전혀 판매하지 않고, 굳이 판매하는 신선제품을 꼽으라면 계란(!)과 우유. 그리고 약간의 유제품, 그러니까 요구르트가 전부였다.(물론 치즈는 판매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런 구멍가게 같은 마트가 있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은 이 우유도 판매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당시 내가 일했던 지점은 소속 군에서도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 말은 거주자가 적다는 뜻이고 이것은 수요 자체가 적다는 뜻이다.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 특성상, 우유 업체들은 하나 같이 그 정도의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서 우리 지점까지 오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우유에 대한 수요는 분명하고 확실했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우리는 지리 상 조금 더 가까이 있는 타 군에 있는 업체를 겨우 설득해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업체도 우리에게 오는 것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마트에 물건이 완전히 떨어져서 온갖 욕을 다 먹고 나서야 겨우 들릴까 말까 했다. 우리는 그가 방문할 때마다 물건을 조금만 더 넣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물건을 넣었다가 유통기한이 지나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려 우리에게 따졌다. 맞는 말이었다. 항상 우유가 잘 팔리는 건 아니었으니까. 받은 우유가 하루 만에 동나는 날도 있었지만, 또 어느 주엔 일주일이 지나도 재고가 남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럴 때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를 처리해야 하는 건 담당자인 나, 혹은 직원들의 몫이었다.
그래도 우유는 양반이었다.
야채는 다들 직접 재배하시니 다행히 찾지 않았고 (수박이라도 가져다 놓으라는 강한 민원으로 한때 판매를 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당 민원인은 수박이 시원하지 않다고 사지 않으셨다. 하나도 안 팔려서(..) 직원들이 다 또 한 덩이씩 사갔다.) 고기는 근처에 정육점이 있어 어려웠다.(심지어 이 정육점 주인이 조합원이었다. 조합원이 먹고사는 길을 농협에서 막으려고 한다는 민원이...).
그러다 보니 우리가 판매할 수 있는 것은 과자랑 음료수, 오래 지나도 썩지 않는 가공품, 생필품 위주의 상품뿐이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마트의 매출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한 사람의 인건비를 투자할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으니 마트 담당은 다른 업무를 병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 사무실은 주유소 업무와 마트 업무를 병행한다. 때문에 마트에 앉아 있다가도 주유소에 차가 들어오면 달려 나간다. 주유가 끝날 때까지 마트에 손님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산을 위해 기다리던 손님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직원 때문에 화가 난다. 직원은 주유 중인데 빨리 들어와서 계산하라는 손님의 외침에 짜증이 난다. 기름 넣는 중에 어떻게 가냐고! 그러다 보면 결국 사무실에 도움을 외치게 되고, 창구 직원이 마트 계산을 하기 위해서 뛰어나간다. 일 보러 온 손님은 텅 빈 창구를 보고 당황한다.
손님은 불편하고, 직원도 힘들고, 수익은 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수익만 생각한다면 문을 닫는 편이 나은 곳도 많다. 일반 사기업이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협은 이런 사업을 왜 하는 것일까?
나는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 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골의 작은 마트는 고령 어르신들의 인권과 생존권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르신들 중에서 운전이 가능한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다. 특히 고령으로 갈수록 그 운전 비중이 낮아지는데, 버스를 타고, 전동 의자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는 그분들에게 농협 마트는 그들의 이동 범위 안에서 유일하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내가 근무했던 모 지점은 농협 마트가 문을 닫으면 간장 하나를 사기 위해서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했다. 손가락만 몇 번 까딱이면 익일 배송, 나아가 새벽에 집 앞까지 물건을 배달해 주는 이 시대에 이런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우스운 것은 농협까지라도 나올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건강한 편이라는 점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조차 힘든 분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지점 중 일부는 그런 분들을 위해 ‘이동판매’를 한다. 이동판매란, 사무실 트럭에 마트 물건을 싣고 동네 곳곳에 다니는 것으로 마치 옛날의 만물상과 비슷하다. 싣고 가는 물건들은 담당자가 생각했을 때 그 시기에 제일 필요한 물건들, 제일 잘 나가는 물건들이 주가 된다.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선정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다. 게다가 모든 물건을 다 실을 수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협소한 상품들인데 더 협소하게 추려진다. 제발, 내 촉이 잘 맞기를!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아, 마을에 알려드립니다. 농협에서 이동판매가 왔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신지 나와서 확인해보시고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언제였더라. 차장님과 함께 이동판매를 나갔던 날이었다. 보통 이장님이 방송을 대신해 주시는데, 그날은 자신이 멀리 있다며 우리에게 직접 방송을 하라고 했다. 나와 차장님은 서로 하기 싫다고 투닥거렸고, 결국 진 내가 마을 회관으로 들어가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확성기로 울려 퍼지던 내 목소리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방송이 끝난 후의 모습은 매번 다르다. 조르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할머니들이 보이는 동네도 있고, 어떤 때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곳도 있다. 원하는 물건을 가져와서 원활하게 판매를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살만한 거는 하나도 안 들고 왔다고 욕만 먹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 이동판매는 우리 농협에서는 거의 하고 있지 않다. 우리 사무실은 아예 접었고, 옆 지점은 한 달에 한번 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하나는 매출이 너무 적다는 것. 두 번째는 이동판매를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무실의 공백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최소 인원으로 운영되는 지점의 상황에서 두 사람이나 빠지게 되면 남아있는 직원들이 몹시 힘들다. 세 번째는 우리의 업무 시간은 농업인들이 원하는 시간과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첫 번째 이유와 연결되는데, 조합원들이 이동판매를 오길 원하는 시간은 오전 6시 이전이나 오후 7시 이후인데 정당한 보상도 없이 그 시간에 출근하고 싶어 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나는 고령층의 인권을 위해 마트가 운영되어야 하는 만큼, 직원들의 인권도 그 과정에서 소중하게 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점점 고령화되는 사회를 생각해 볼 때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그 문제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나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겠지.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현장에 근무한 경험자로서, 그리고 고령화를 매일 체감하는 사람으로서, 그래도 꼭 내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문배달 시스템이 그 대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본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주일에 한번 주문을 받아서 그걸 집으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이동에 대한 불편함 없이 원하는 식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걸 취합하는 것이 문제다. 어플과 같은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정확하겠지만 휴대폰도 쓰기 어려워하시는 어른들에게는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농협에 전화를 걸어서 주문하는 것인데, 전화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엔 인력이 부족하고 오류 발생 가능성이 배우 높다. 이장님을 통한 취합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일을 선뜻하는 이장님들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이장님들이 고령인 경우도 아주 많다. 대금 회수도 문제다. 선결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금 회수가 굉장히 어렵다. 또한 여전히 물품의 다양성 확보는 어렵고.
결국 이를 위해서는 농협에서 손해를 각오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신념으로 해당 시스템을 구축, 혹은 전담 직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는 농협은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비용의 상승은 곧 수익의 감소, 즉, 배당의 감소로 이어진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배당이 왜 이 모양이야! 게다가 고령층만이 조합원은 아니다. 젊은 고객층, 혹은 이런 마트의 서비스가 필요 없는 조합원들에게 이런 행위는 결국 쓸데없는 짓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배당을 더 할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는 돈 쓴다고 하겠지.
독점의 시대다. 하나의 초대형 마트가 주변의 모든 소비자들을 깡그리 끌어모은다. 작은 마트는 점점 갈 곳이 없어진다. 자본주의 논리로 생각하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만 말하기엔 어쩐지 마음이 가볍지 않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어려워.